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에 속하는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진면모 보여주는 두 편의 소설
헤밍웨이·피츠제럴드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다는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소설 두권이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웨스트가 자동차 사고로 서른일곱의 나이에 죽기 전 해에 쓴 <메뚜기의 하루>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반(反)할리우드 소설이며, 이보다 앞선 1932년작 <미스 론리하트>는 피폐한 현대인의 초상을 서늘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에 대한 높은 평가는 이들 작품이 왜 이제서야 우리에게 다가왔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미국 문학평론가 스탠리 에드거 하이먼은 <미스 론리하트>를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와 함께 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로 평가했다. 또한 랜덤하우스 산하의 모던 라이브러리 편집위원회가 뽑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100선’에선 <미스 론리하트>를 73위로 선정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가 이보다 한 단계 아래인 74위다.
뒤늦게 주목받는 미국의 어두운 초상들
웨스트가 당대에는 영미 문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호평을 받는 배경에 대해서는 작가와 작품의 성향으로 미뤄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는 1930년대 경제공황기에 주로 작품활동을 하며 단 네편의 소설을 남겼다. 그나마 1933년 발표한 <미스 론리하트>는 출판사의 도산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그해 할리우드로 가서 컬럼비아스튜디오의 계약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의 여정은 R.K.O와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으로 이어진다. 1920년대 중반 파리에서 로스트제너레이션 작가들과 교류를 나누고 피츠제럴드와 각별한 친분을 나눴지만, 무명의 유대인 작가 처지에 영화로 빠진 ‘외도’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무척 어둡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차가운 해부, 도덕적·윤리적 완성도가 높다고 공인받을 만한 인간의 초라한 실체를 비웃는 듯한 태도는 아무래도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서술방식은 지금 봐도 세련되게 느껴질 만큼 시간을 앞질러 현대적이다.
<미스 론리하트>는 ‘미스 론리하트’란 필명으로 뉴욕의 한 신문에서 독자 상담란을 담당하는 기자가 파멸을 맞는 순간에 조금씩 다가가는 이야기다. 어린애를 강간하고 아내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폭력적 현실과, 생존을 위협하는 극도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군상들이 그에게 하루에도 수십통씩 편지를 써댄다.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미스 론리하트는 공허한 수사뿐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속물은 아니다. 그도 희망을 잃어버린 대중의 좌절과 자신도 예외가 아닌 세속적 욕망에 진절머리를 친다. 회의에 빠져 있지만 한 가닥 믿는 건 있다. 스스로 ‘그리스도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말할 정도로 신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아직껏 놓지 않았다. 미스 론리하트는 여자가 아니다. 그는 약혼자 베티가 있지만, 자신의 데스크인 쉬라이크의 아내를 정부처럼 두고 있다. 누구와도 섹스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름과 실체의 본성이 다른 것처럼 자기분열적인 미스 론리하트를 통렬히 공박하는 건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쉬라이크다. 미스 론리하트의 상담과 조언을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한 판촉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장본인이지만, 그 위선성을 까발리는 것도 그다. 괴로워하는 론리하트에게 도피책으로 예술과 자살과 마약을 조롱하듯 열거한 뒤 결정타를 날린다. “이봐 친구, 나는 물론 흙, 남태평양, 쾌락주의, 예술, 자살, 마약 따위가 우리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는 낙타를 삼키고도 그걸 소화해 화장실에서 아무 문제 없이 똥을 쌀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피책이야. 교회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건 비웃는 말이다. 론리하트를 가리켜 ‘영혼의 무솔리니’라고 결론지으니까 말이다. 출구 없이 방황하던 론리하트는 선의와 정의를 베풀어준 인간에 의해 ‘순교’당한다.
<메뚜기의 하루>는 뜻밖에도 대중을 향해 매서운 펜을 든다. 꿈을 좇아 할리우드에 모여든 하루살이 인생들이 실은 죽으러 모여든 불나방 같은 존재라고 적나라하게 기술해간다. 시스템 자체도 문제지만 시스템에 희망을 갖고 허우적거리는 존재도 그에게는 혐오스러웠는가 보다. 예일대 미대 출신으로 내셔널영화사의 디자이너로 채용돼 할리우드로 온 토드를 중심으로 언젠가 스타가 돼보겠다고 버둥대는 매력적인 삼류 여배우 페이, 자폐적 성향으로 평생 돈만 모아온 호머 등이 배치돼 있다. 토드는 ‘불타는 로스앤젤레스’라는 대작을 그리는 중인데, 소설 말미에 그림의 구도와 맞아떨어지는 놀라운 ‘군중 신’이 몇쪽에 걸쳐 펼쳐진다. 스타들이 참석하는 시사회장 앞에 모여든 군중들이 폭동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한다.
1930년대 미국의 실상 유감없이 묘사
“이제는 가족 단위의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군중의 일부가 되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군중들 사이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은 수줍고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일단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 거만하고 사나운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들을 별탈 없는 호사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들은 야만적이었고 또 사나웠다. 중년이거나 노인인 사람들이 특히 더했는데 그것은 권태와 실망감 때문이었다.”
소설가인 피츠제럴드도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인상적인 장면들” 가운데 “영화 시사회장 앞에 메뚜기떼 같이 몰려든 병적인 군중들 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웨스트는 군중이 병적으로 사나워진 까닭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그들은 권태를 점점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고 분기탱천했고, 매일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러 갔다. 두 매체는 린치·살인·성범죄·혁명·기적·전쟁 등을 제공했다. 이런 정보를 날마다 제공받은 나머지 그들은 세련된 사람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오렌지는 그들의 피곤한 혓바닥에 자극을 주지 못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미스 론리하트>, <메뚜기의 하루>. 너새네이얼 위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마음산책 펴냄.
<미스 론리하트>는 ‘미스 론리하트’란 필명으로 뉴욕의 한 신문에서 독자 상담란을 담당하는 기자가 파멸을 맞는 순간에 조금씩 다가가는 이야기다. 어린애를 강간하고 아내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폭력적 현실과, 생존을 위협하는 극도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군상들이 그에게 하루에도 수십통씩 편지를 써댄다.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미스 론리하트는 공허한 수사뿐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속물은 아니다. 그도 희망을 잃어버린 대중의 좌절과 자신도 예외가 아닌 세속적 욕망에 진절머리를 친다. 회의에 빠져 있지만 한 가닥 믿는 건 있다. 스스로 ‘그리스도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말할 정도로 신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아직껏 놓지 않았다. 미스 론리하트는 여자가 아니다. 그는 약혼자 베티가 있지만, 자신의 데스크인 쉬라이크의 아내를 정부처럼 두고 있다. 누구와도 섹스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름과 실체의 본성이 다른 것처럼 자기분열적인 미스 론리하트를 통렬히 공박하는 건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쉬라이크다. 미스 론리하트의 상담과 조언을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한 판촉행사의 하나로 마련한 장본인이지만, 그 위선성을 까발리는 것도 그다. 괴로워하는 론리하트에게 도피책으로 예술과 자살과 마약을 조롱하듯 열거한 뒤 결정타를 날린다. “이봐 친구, 나는 물론 흙, 남태평양, 쾌락주의, 예술, 자살, 마약 따위가 우리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는 낙타를 삼키고도 그걸 소화해 화장실에서 아무 문제 없이 똥을 쌀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피책이야. 교회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건 비웃는 말이다. 론리하트를 가리켜 ‘영혼의 무솔리니’라고 결론지으니까 말이다. 출구 없이 방황하던 론리하트는 선의와 정의를 베풀어준 인간에 의해 ‘순교’당한다.

사진/ 웨스트는 1930년대에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일했다. 그 경험을 <메뚜기의 하루>에서 생생하게 다뤘다. (씨네21 이혜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