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상적으로 많이 쓰지만 정확한 의미가 모호한 용어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도 한 예다. 흔히 디지털은 숫자판, 아날로그는 계기판에 표시되는 것이라고 구별한다. 또는 계기판을 쓰더라도 똑똑 끊어지는 방식으로 표시되면 디지틀이라고 한다. 바늘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이에 속한다. 이에 따라 보통 “아날로그는 연속적, 디지털은 불연속적 또는 단속적(斷續的)”이라고 이해한다. 이 구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본질적 차이점은 따로 있다.
아날로그는 “수를 간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analog는 ‘닮음·비유’란 뜻의 그리스어 analogia에서 나왔다. 곧 아날로그는 ‘수 다루기의 흉내내기’란 뜻이다. 아날로그식 도구의 대표적 예는 ‘계산자’다. 지금은 ‘휴대용 계산기’에 밀려 볼 수 없다. 하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이공계통 종사자들이 오늘날 계산기를 쓰듯 애용했다. 계산자에는 여러 눈금이 매겨져 있다. 이 눈금이 숫자의 역할을 한다. ‘2+3=5’라는 계산을 할 때 눈금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결과를 얻는다. 여기에 실제의 계산은 없다. 계산을 흉내내는 ‘눈금 맞추기’와 ‘눈금 읽기’만 있다.
디지털은 “수를 직접 다루는 방식”이다(digit은 ‘숫자’를 뜻한다). 디지털식 기계의 대표적 예는 컴퓨터다. ‘2+3=5’라는 계산을 할 때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에서 ‘2’란 수와 ‘3’이란 수를 ‘직접’ 더한다. ‘눈금’과 같은 중간매체는 없다. 답을 내놓을 때도 ‘5’란 수를 ‘직접’ 보여준다.
두 방식을 합친 장치도 많다. 가게에서 보는 ‘숫자로 표시되는 저울’이 그 예다. 그것을 보통 ‘디지털 저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의 디지털은 ‘숫자판’에 대한 얘기일 뿐이다. 저울 안에는 스프링과 압력 센서 등의 기계부품이 들어 있다. 물건을 올리면 스프링이 눌린다. 그 눌림을 센서가 감지해 전기신호를 낸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물리적 현상으로 아날로그적 과정이다. 이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 숫자판에 나타내는 과정은 디지털이다.
아날로그의 연속성과 디지털의 단속성은 각각의 본질에서 나오는 2차적 특성이다. 1/3, 즉 0.333…이란 수를 보자. 계산자나 재래식 저울의 눈금 위에는 이 수가 분명히 있다. 얼마나 정밀하게 읽을 것인지는 다음의 문제다. 실제로는 모든 수가 다 있다. 따라서 연속적이다. 그러나 컴퓨터에는 1/3과 비슷한 수만 있을 뿐 정확히 1/3이란 수는 없다. 수 자체를 다룬다는 본질상 ‘디지털에서의 수’는 ‘자릿수법으로 나타낸 수’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1/3은 0.333…, 루트3은 1.732…로 써야 한다. 그러나 연산 및 표시장치의 한계 때문에 어디선가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수들은 단속적으로 존재한다.
디지털과 이진법을 구별해야 한다. 이 혼란은 디지털 기계의 간판 격인 컴퓨터가 ‘ON/OFF’로 상징되는 이진법을 쓰기 때문에 나타날 뿐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실제로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은 십진법을 사용했다(바로 다음의 컴퓨터부터 이진법을 채용했다). 디지털을 만능시해서도 안 된다. 디지털에 장점이 많기는 하지만 아날로그가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디지털은 계산이고, 아날로그는 측정이다”. 장점에 따라 적절히 쓸 뿐 본질적 우열은 없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디지털과 이진법을 구별해야 한다. 이 혼란은 디지털 기계의 간판 격인 컴퓨터가 ‘ON/OFF’로 상징되는 이진법을 쓰기 때문에 나타날 뿐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실제로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은 십진법을 사용했다(바로 다음의 컴퓨터부터 이진법을 채용했다). 디지털을 만능시해서도 안 된다. 디지털에 장점이 많기는 하지만 아날로그가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디지털은 계산이고, 아날로그는 측정이다”. 장점에 따라 적절히 쓸 뿐 본질적 우열은 없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