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양아치’ 장선우 감독이 장편 만화영화 <바리공주> 제작에 박재동 화백을 꼬신 사연
장선우(48) 감독과 박재동(48) 화백이 한 여자에게 반했다. 불락국(佛樂國)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바리공주. 그럼에도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너머로 감로수를 찾아 떠나는 여자. 부모를 살리고, 불락국을 소생시키고, 마침내 보살이 되는 무조(巫祖).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 무가(巫歌)를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제작기간 2년 동안 40억원을 들여 만들 <바리공주>. 장선우 감독과 박재동 화백이 공동연출한다. 장 감독은 기획과 시나리오를 맡고, 박 화백은 캐릭터와 제작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박 화백은 96년부터 만화영화 <오돌또기>를 추진해오고 있어 애초에는 장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결국 <바리공주>와 <오돌또기>를 병행하기로 했다. 도대체 바리공주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이 있었는지, 그에게 빠진 동갑내기 두 남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안겨보니까 좋던데?
장: 난 사실 박 감독 구제한 거예요. 그렇게 모범생처럼 언제 만화영화 만들래. 그냥, 나같이 양아치처럼 해야지. 감춰져 있던 본성을 일깨워준 거야. 알고보니까 양아치더라구. 나 안 만났으면 지금도 이 사람은….
박 : …한참 열심히 <오돌또기> 만들고 있었겠지. (웃음) 장 : 모범답안지 만드느라고 지금도 또 얼마나 고생하겠어. 바리공주를 은근히 사모하고 있었으면서. 박 : 몇년 전, 장 감독 집에 갔을 때, 그때 바리공주 이야기를 처음 했단 말야. 나도 그때 <바리공주>를 하고 싶었어. 그래 내가 속으로 “나한테 같이하잔 이야기를 할 텐데” 하고 생각을 한 거야. 그때 장 감독이 <바리공주>를 택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 스토리가 매력적이잖아. 부모가 자기를 버렸는데 부모를 구한단 말야.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찾는 여자. 여성의 인생과 해방이 같이 담긴 이야기. 그런 정신성이 <뮬란>이나 이런 작품과는 상대가 안 되게 큰 거지. 장 : <뮬란>하고 비교하면 김새지. 박 : 아니 이 양반이 정신없는 사람 같은데 핵심을 탁 잡네 싶었지. 프로포즈가 왜 안 오나 생각했지만, 만약 하면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지 했어. <오돌또기> 때문에 고민하던 상황이니까. 그런데 그때 내 정황만 슬쩍 물어보고 기다리데? 사람 꼬시는 데 고수야. 장 : 처음에 헷갈리게 해놓고. 박 : 그래 꿍심이 정말 없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4월 총선 무렵 다시 제의하고, 또 하고. 나는 고민중인데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거야. 내것 네것이 어딨냐, 뭘 먼저 하느냐가 뭐 중요하냐, 그러질 않나. 장 : 뭘, 다 자기 거잖아. (웃음) 박 : 근데, 보통 거절을 하면 그렇군요 하고 물러나는데, 거절하면 잡고, 거절하면 잡고 사람을 주무르는 거야. 아, 슬슬 녹데. 장 : 이 자는 이걸 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거든. 박 : 거기에 내가 당한 거 같아. 장 : 그건 진심이야. 박 : 그 진심이 딱 오더라고. 여자든 남자든 진심 앞에서는 무너지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탁 무너졌는데 이거 괜찮네, 싶더라고. 우리도 헤메고 있는데, <오돌또기>와 <바리공주>를 서로 노하우 공유하면서 만들면 잘되겠다, 품에 안기니까 좋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장 : 그래 안겨보면 안다니까. (웃음) 선의 세계, 현실과 환상을 묶는 비주얼
박 : 예산도 보장되어 있으니 돈 걱정 안 하고 일할 수 있고, 실크로드에 답사도 가게 되고, 괜찮네, 싶더라고.
장 : 처음엔 나도 걱정 좀 했어. 바라보는 방식도 서술 방식도 다르니까. 내가 일필휘지 해놓은 스토리를 의심하질 않나.
박 : 자기는 뭐 선정(禪定)에 들어서 썼다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했다고 보는데. (웃음)
장 : 말했잖아. 선정과 비몽사몽은 같은 거라고. (웃음) 나도 걱정이야. 이 무지한 중생을 끌고, 저 높은 선정의 경지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뭐 그릇이, 법기(法器)가 돼 있으니까. 그래서 같이 선방(禪房)도 갔는데. 앉아서 졸데?
박 : 서로 졸면서, 쳐다보고 안심했지. 아주 예쁜 선방에, 예쁜 스님이 해주시는 예쁜 공양음식을 먹고, 예쁜 자세로 앉아서 예쁘게 졸았지.
장 : 음… 도는 못 트겠지만, 선(禪)이 얼마나 예쁜 건지는 알겠어. 목욕탕가면 왜 흔들리는 물이 있고 잔잔한 물이 있잖아. 잔잔하고 맑은 물이라야 상이 비치지. 이 영화를 관통하려면 그런 ‘맑음’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 : 그런 ‘맑음’이 바리의 이미지지. 우리에게 참 다행인 건, 전체적으로 양아치적 시각이 일치한다는 거야. (웃음) 나는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입장이고, 장 감독은 컨셉을 던져주는 입장이라 제작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도 장 감독이 그림이나 컨셉을 읽어가는 관점이 나하고 잘 맞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되는 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어.
장 : 그림 스케일이 큰 장면이 몇 있지. 나는 마지막에 바리가 물을 떠갖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큰 모래강, 그 강의 이미지도 지금 안 잡혀요. 가벼운 깃털조차 뜨지 않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그런 강이거든요. 그런데 꼭 건너야만 하는 강이고. 또 부처가 삼천제자와 수호신들을 끌고 바리의 깨달음을 인가해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장엄한 광경, 또 왕국이 되살아나는 이미지, 이거 하나 묘사하는 것도 큰 작업이겠죠.
박 : 자기는 이미지만 던져놓고 싹 도망가려고. (웃음)
장 : 버려진 아이가 왕국을 살린다 부모를 살린다, 그러다 끝내는 인간이 신이 된다, 그런 이야기니까, 꿈과 현실을 하나로 묶는 그런 비주얼이 필요하거든요. 영화를 보고나서 관객이 자기 죄도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힘을 잉태한 비주얼. 그림에 마음이 느껴지는 거요. 왜 저번에 박 감독이 그런 이야기했잖아. 병풍을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산 구석에 작은 정자만 있어서 실망했다는.
박 : 견성한 스님이 주신 그림 말이지.
장 : 그런데 그게 실제로 사람이 들어가서 놀다 올 수 있는 그림이었던 거지. 그림은 그런 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 그래야지.
장 : 그건 개인의 창조적 역량만 가지곤 안 된다고 봐요. 장인적인 마음과 여러 사람의 환상이 함께 모여야 가능할 거다 싶어요. 그래서 인터넷에 바리방(www.bari.co.kr)을 연 거고.
박 : 인터넷 바리방. 첨에 나는 장 감독이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했지만, 어린이가 그린 바리라든지 참신한 게 들어오더라고. 내가 생각한 스타일의 바리가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전혀 다른 바리도 있는 거거든. 그걸로 내 세계가 확장이 되는 거고. 부수적으로는 사람들이 <바리공주>에 관심을 가져서 이 이야기를 자기화할 수 있으니까.
장 : 원래 <바리데기>도 한 사람의 저작물이 아니잖아. 설화가 오랫동안 구전되면서 변화해온 거지. 그걸 현대로 옮겨놓은 게 인터넷인 거고. 바리공주 자체도 우리를 통해 새롭게 현대에 환생하는 거니까.
박 : 장 감독은 바리에서 선불교적인 것을 많이 강조하면서, 선이라는 정신이 새로운 세기의 대안적인 제시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나도 그걸 수용할 수 있는 관객층은 어느 정도 되어있다고 봐. 서구에서나 아시아에서나 통용될 수 있다는 거지.
장 : 어차피 나는 애니메이션을 계속할 거 아니고, 난 당신한테 대한민국 만화영화 앞날이 달려 있다고 봐. 그러니까 이게 뜀틀이다, 발판이다 생각하고, 이걸 밟고 뛰셔요, 하는 입장이야.
박 : 아까하고 말이 다르네? 자기가 날 구제했다더니. (웃음)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구도여행
구제하고 구제받으면서 바리공주에 대한 연모를 불태우는 두 남자는, 오는 10월2일 실크로드로 바리공주를 찾으러 떠난다. 서천서역국을 지나 저승으로 향하는 그의 여행로를 따라, 베이징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티베트와 인도에 이르는 34일간의 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화는 물론이고, 동양 미술의 아름다움을 애니메이션에 녹여내기 위해서다. “대학 시절부터 바리데기에 매료되었다”는 장 감독과 ‘은근히 바리공주를 사모해온’ 박 화백이 실크로드에서 잡아낼 그의 발자취는, 장 감독의 시나리오와 박 화백의 그림을 통해 2002년 관객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박 : …한참 열심히 <오돌또기> 만들고 있었겠지. (웃음) 장 : 모범답안지 만드느라고 지금도 또 얼마나 고생하겠어. 바리공주를 은근히 사모하고 있었으면서. 박 : 몇년 전, 장 감독 집에 갔을 때, 그때 바리공주 이야기를 처음 했단 말야. 나도 그때 <바리공주>를 하고 싶었어. 그래 내가 속으로 “나한테 같이하잔 이야기를 할 텐데” 하고 생각을 한 거야. 그때 장 감독이 <바리공주>를 택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 스토리가 매력적이잖아. 부모가 자기를 버렸는데 부모를 구한단 말야.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찾는 여자. 여성의 인생과 해방이 같이 담긴 이야기. 그런 정신성이 <뮬란>이나 이런 작품과는 상대가 안 되게 큰 거지. 장 : <뮬란>하고 비교하면 김새지. 박 : 아니 이 양반이 정신없는 사람 같은데 핵심을 탁 잡네 싶었지. 프로포즈가 왜 안 오나 생각했지만, 만약 하면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지 했어. <오돌또기> 때문에 고민하던 상황이니까. 그런데 그때 내 정황만 슬쩍 물어보고 기다리데? 사람 꼬시는 데 고수야. 장 : 처음에 헷갈리게 해놓고. 박 : 그래 꿍심이 정말 없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4월 총선 무렵 다시 제의하고, 또 하고. 나는 고민중인데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거야. 내것 네것이 어딨냐, 뭘 먼저 하느냐가 뭐 중요하냐, 그러질 않나. 장 : 뭘, 다 자기 거잖아. (웃음) 박 : 근데, 보통 거절을 하면 그렇군요 하고 물러나는데, 거절하면 잡고, 거절하면 잡고 사람을 주무르는 거야. 아, 슬슬 녹데. 장 : 이 자는 이걸 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거든. 박 : 거기에 내가 당한 거 같아. 장 : 그건 진심이야. 박 : 그 진심이 딱 오더라고. 여자든 남자든 진심 앞에서는 무너지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탁 무너졌는데 이거 괜찮네, 싶더라고. 우리도 헤메고 있는데, <오돌또기>와 <바리공주>를 서로 노하우 공유하면서 만들면 잘되겠다, 품에 안기니까 좋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장 : 그래 안겨보면 안다니까. (웃음) 선의 세계, 현실과 환상을 묶는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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