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고통에도 천재성 지닌 이상천재들… 우뇌 활동 바탕으로 특정 분야서 재능 발휘
얼마 전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70대 할아버지가 관심을 모은 일이 있다. 세 차례에 걸쳐 뇌간에 생긴 손톱 크기만한 양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 ‘중국어 천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사례는 유례가 없지만 자폐아나 지진아, 치매환자 가운데 특이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이른바 이상천재(idiot savant)들로 ‘바보 천재’, ‘우수한 백치’라 불리기도 한다. 보통 정신발육 지체아는 지능이 낮아 정신 전반의 발육이 항구적인 지체를 나타낸다. 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일반인으로선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정신적 장애가 천재성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영화 <레인맨>에서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더스틴 호프먼이 역을 맡은 레이몽 배빗은 자폐증이 있었지만 “1,234,567,890은 무엇에 무엇을 곱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곧바로 “137,174,210에 9를 곱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계산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일이다. 자폐증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싫어하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간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정신질환인 셈이다. 천재의 대명사로 통하는 발명왕 에디슨도 어린 시절 언어 학습에 심각한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다. 경미한 자폐 증세를 바탕으로 1093종의 특허권을 획득했다면 오해일까.
그림 그리기, 음악 연주 등 탁월
대개 자폐증 환자 10명 가운데 1명꼴로 ‘우수한 백치’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천재 증후군에 따라 천재적 능력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제한된 능력이며 주로 우뇌반구와 관련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능력과 대인지능은 떨어지지만 그림 그리기, 음악 연주, 계산 능력 등 특정 분야에서만 천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예술가들의 창조성을 극대화한 것도 우뇌반구의 놀라운 발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뇌반구는 예술적이고 시각적인 능력이나 운동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때론 기계조작 능력이나 공각지각 능력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좌뇌반구는 순차적·논리적·상징적 능력을 좌우한다. 만일 좌뇌반구가 발달했다면 논리적·상징적 능력이 뛰어나 언변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예술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인 사람 가운데 정신적 장애가 있었던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시작장애인 음악가 톰 베순(Tom Bethune)은 알고 있는 단어가 100개도 되지 않았지만 무려 7천여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발달성 장애를 앓은 천재 조각가 알론조 클레먼스(Alonzo Clemons)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동물의 움직임을 불과 20분 이내에 조각해 보여주기도 했다. 조직·근육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정도로 그의 조각은 남달랐다.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는 뛰어난 후각·촉각·시각적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이런 천재적 능력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기억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습관적인 반복암기를 통해 기억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대개 IQ가 40∼70 정도로 일반인보다 훨씬 낮다. 다운증후군 환자들 중에 이상천재증후군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특정 기억력이 탁월한 사람 중에는 운동선수 이름이나 스쳐지나간 자동차 번호판까지 줄줄 외우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능력은 대부분 평생 유지된다.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영구 기억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천재성을 발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장애와 이상천재증후군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좌뇌가 손상되었을 때 우뇌가 손실을 보상하는 과정에서 천재성이 발휘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우뇌반구의 기능이 탁월하다. 물론 잃어버린 능력은 대부분 좌뇌에 관련된 것이다. 미국 크래프톤힐대학의 심리학자 브링크는 정상의 상태였다가 좌뇌반구에 총상을 입고 우반신 마비로 청각장애를 입은 소년에게서 천재적인 기계조작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 발표했다. 좌뇌의 기능을 잃은 대신 우뇌가 비약적으로 발달한 결과다.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상천재증후군 환자 중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의 좌반구는 우반구보다 늦게까지 성장하며 출생 전에 해로운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순환이 남자 태아에 나쁜 영향을 많이 끼쳐 남성들의 좌반구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이상천재증후군뿐만 아니라 실독증(失讀症, alexia: 대뇌가 파괴되어 일어나는 문자·단어·문장 등에 대한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이나 언어지체, 말더듬, 과잉행동 등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다. 남성의 신경체계 장애가 이상천재증후군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천재의 특별한 신경회로 규명
최근 천재성은 뇌 촬영술의 발달로 차츰 베일을 벗고 있다. 이상천재증후군이 있는 미술 천재의 뇌를 촬영한 결과 대뇌 신피질의 혈액순환은 보통 수준 이상이었지만 측두엽의 혈액순환은 보통 수준보다 아래였다. 신피질은 고도의 인식 기능을 담당하고 측두엽은 기억력이나 감정 등에 관여한다. 이런 사실은 신경생물학적으로 이상천재성에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천재성은 인지기억을 담당하는 상위 대뇌피질 변연계 회로와 습관기억을 담당하는 하위 피질선조체 회로 등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이상천재성은 또 다른 신경회로에 의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반인들도 천재성이 있는 뇌의 회로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천재 증세를 보이는 게 단적인 사례다. 숨겨진 천재성이 치매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평상시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좌뇌 중심의 사회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보통 사람들이 지닌 우뇌의 천재적 기능은 묻혀 있을 수밖에 없다. 숨겨진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를 꺼낼 수 있는 것은 정신적 장애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다. 물론 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신경회로의 이상으로 내부의 저장소를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과학 너머의 무엇인가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시드니대학 마음센터(www.centreforthemind.com)
<사이언스 올제>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영화 <레인맨>에서 자폐증을 앓는 역을 한 더스틴 호프먼.
대개 자폐증 환자 10명 가운데 1명꼴로 ‘우수한 백치’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천재 증후군에 따라 천재적 능력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제한된 능력이며 주로 우뇌반구와 관련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능력과 대인지능은 떨어지지만 그림 그리기, 음악 연주, 계산 능력 등 특정 분야에서만 천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예술가들의 창조성을 극대화한 것도 우뇌반구의 놀라운 발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뇌반구는 예술적이고 시각적인 능력이나 운동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때론 기계조작 능력이나 공각지각 능력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좌뇌반구는 순차적·논리적·상징적 능력을 좌우한다. 만일 좌뇌반구가 발달했다면 논리적·상징적 능력이 뛰어나 언변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진/ 작곡에 탈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정신장애아동. (한겨레 윤운식 기자)

사진/ 정신적 장애가 천재성을 키울 수도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자폐아들을 돌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시드니대학 마음센터(www.centreforthemind.com)
<사이언스 올제>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