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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구를 가꾼 ‘효율적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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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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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의 전쟁으로 서양 문명사 다뤄… 미래의 진정한 위협은 서구의 야만성

서구의 승리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인가? 또 서양문명이 성공적으로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인이 유전적으로 우월해서? 기술이 우수해서? 계몽된 정치, 경제, 문화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사진/ 살육과 문명, 빅터데이비스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 푸른숲 펴냄.
<살육과 문명>은 이에 대해 매우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서양인들은 단지 보다 효율적인 살인자였을 뿐이다.” 서구문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문명도 지속적이고 산업적인 살육을 지향하지 않았다. 비서구 지역에서의 전쟁은 의례의 연장이었음에 반해 서구의 그것은 섬멸전이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학살이다. 전쟁이란 전투의 합계이며, 전투란 결국 죽은 사람의 합계에 불과하다. 서구문명 전반의 일반적인 성격보다 군사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저자는 전쟁을 사회성격이 궁극적으로 투영된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전투에는 문화라는 결정체가 있다”.

서구가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한 게 된 데는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우수한 무기체계가 큰 역할을 했지만, 문화적 차이가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격적 자유, 규율, 그리고 조직을 전장에 끌어들임으로써 서구의 ‘진격하는 민주주의’는 안정되지 못한 정부, 제한된 재정, 그리고 개방된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비서구를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라는 용어를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생한 고전고대 문명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 문명은 로마제국이 붕괴한 이후에도 살아남아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퍼졌으며, 그 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대탐험과 식민지 개척을 통해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서구의 영토나 인구 규모보다 더 큰 영향력을 전 세계의 정치·경제·문화·군사력에 대해 발휘하고 있다.

문명의 광기로 비서구를 침탈


이 책은 그리스·로마시대로부터 시작된 아홉개의 전투를 분석하고 있다.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를 무찌른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가 맞붙은 가우가멜라전투(기원전 331년) 한니발의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이 대결한 칸나이전투(기원전 216년), 이슬람과 프랑크군이 싸운 푸아티에전투(732년), 코르테스 병사들이 지금의 멕시코시티인 테노치티틀란에서 벌인 전투(1521년), 유럽동맹과 오스만군의 대결인 레판토해전(1571년), 영국군과 줄루족의 로크스드리프트전투(1879년), 제2차대전에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레판토해전(1942년), 미국과 베트남의 테트전투(구정공세·1968년)이다.

지은이가 이 9개의 전투들을 꼽은 것은 이들이 서구문명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였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서구문명의 핵심 요소들이라고 판단한 자유, 정면타격전, 시민군국주의, 테크놀로지, 자본주의, 개인주의, 민간의 감사와 공개적인 반대의견 등의 반복되는 패러다임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 선정된 전투가 획기적인 이유는 한 사회가 싸우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각 전투는 서구 전쟁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책의 각 장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벌이는 문화적 전통의 스냅사진에 해당한다. 저자는 주제의 공통성과 반복성을 추구하기 위해 해전, 공중전, 지상전을 망라하고, 여러 지역의 전투를 배합하였으며,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투, 이주민과 원주민의 전투 또는 소국과 제국의 전투, 상이한 종교권 간의 전투 등을 고루 사례로 배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중요한 단층선은 서구 대 비서구의 충돌이다.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창에서 제트기까지 포괄하는 연대기적 측면이다. 저자는 현재와 같은 서구의 무력적 우월성이 자리잡게 된 것은 고전적인 군사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경시켰거나 향상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 패러다임이 유럽과 서반구 전역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구가 고전고대부터 유럽 역사를 통틀어 합리주의, 자유로운 탐구정신, 지식의 확산을 꾸준히 지향해왔기 때문에 비서구 국가들보다 질적으로 우월하고 양적으로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화기가 서구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현상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요인이 숨어 있다고 본다. 또 나아가 총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합리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무기 설계, 제조, 생산이 꾸준히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장에 강력한 신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평등주의 전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문명의 내재적 특성으로 인해 유럽의 성공이 언제나 예정돼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서구문명이 유럽군대에 여러 가지 이점을 부여함으로써 적들에 비해 실수나 전술적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여유를 폭넓게 제공했다고 본다. 예컨대 상세한 군사작전까지 언론이 무제한적으로 보도하고 끊임없이 공적 평가에 노출된 것이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자기비판의 제도화가 미군의 전략전술상 심각한 결점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권, 합의정치, 개인주의를 강조해온 서구 전통의 일부로서 자기비판, 민간의 감사, 군사작전에 대한 민간의 비판을 용인하는 성향이 결국 더 우수한 계획과 더 유연한 대처를 낳음으로써 역설적으로 테트라는 일회적인 전투에서는 미군이 진 것처럼 보여도 베트남전쟁에서는 궁극적으로 이겼다는 주장이다.(??)

이젠 서구와 서구가 한판 붙는다

저자는 투키디데스를 동원하여 자유로운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 전쟁에서 탄력을 발휘한다고 본문을 맺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사회는 과연 ‘누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가? 저자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한 세대가 되는 지금 대부분의 미국인이 얻은 교훈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미국이 자유로운 사회라고 해서 비서구 사회에 대한 군사정책이 현지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서구 군사전통의 친화성은 놀라우리만큼 연속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또 저자는 서구 전쟁의 치명적 유산이 건국 이후 수차례 발생한 이스라엘전쟁, 1982년 포클랜드전쟁, 그리고 1991년 걸프전쟁 등에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 전 지구적으로 서구화가 진행된 지금 미래의 군사 시나리오는 어떠할까? 저자는 영구 평화가 유지되거나 또는 단 한 차례의 종말적인 전쟁이 발생하리라는 전망을 기각한다. 한층 치열해진 재래전이 앞으로 수천년 동안 부정기적으로 발생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볼 때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전쟁은 비서구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이나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 내부에서 서구인들끼리 싸운 전쟁이었다. 따라서 미래에도 진정한 위험은 서구의 도덕적 타락이나 선진무기로 무장한 비서구의 위협이라기보다 차라리 서구 그 자체다. 사실 서구의 경계 자체가 항상 외부의 적을 찾거나 발명을 통해 가차없이 무찌름으로써 가까스로 유지되어온 것은 아닐까?

정일준/ 워싱턴대 방문교수·사회학박사 ijchung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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