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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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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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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티켓은 기본이지요. 티켓을 봉이라고 하는데 올봉(하루 종일) 끊으려면 25만원이에요. 티켓값은 다방업주에게로 가는데 티켓 끊으면 수당이 오르니까 내 돈 내고도 끊어요. 그리고 그시간에 다방에서 일하고…. 그게 사람 잡는 거지요.”

농촌지역의 성매매 실태조사를 위해 만난 다방여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물음에 답해준다. 다방커피 접대가 잦은 사무실의 남성에게 인터뷰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밤 8시 이후에 커피시켜 먹으려면 아가씨들이 없어요. 다들 2차 나간 거죠.” 2차는 곧 성매매를 말한다.

다방의 티켓영업이나 2차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대다수의 다방은 티켓영업을 한다는 이야기다. 군단위에 성매매가 가능한 업소를 조사한 우리는 성매매의 일상성에 놀란 맘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남자들 사이에선 너무나 쉽게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가 여성인 우리들이 조사하기에는 접근부터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발품 팔아 3개읍 8개면을 훑고, 지역주민·구매자·피해여성 인터뷰에 마지막으로 경찰의 협조를 얻어 합동점검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주변은 성매매로 둘러싸인 듯하다. 영광에만도 다방·단란주점·유흥주점 등 풍속업소로 관리되는 곳이 200여곳을 훌쩍 넘는다.

심지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놓고도 버젓이 성매매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메뉴판은 벽에 붙여놓았으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이나 테이블이 없거나 한두개로 생색만 내고 있었으며, ‘19세미만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통해 이곳이 일반식당이 아님을 자백하고 있었다. 지역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곳은 영세한 곳이고 화대가 싸서 농촌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불법사실이 있어도 봐줄 수밖에 없단다.

농어촌 성매매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며 ‘영광지역 현황’이 지역신문에 발표되자 반향은 컸다. “나도 성매매에 반대하지만 영광지역만 너무 부각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반응과 일반음식점에서의 성매매 가능성을 제기한 대목에 흥분한 관계자의 거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성매매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올 봄 군산화재사건 이후 경찰과 합동으로 터미널과 주택가, 학교를 끼고 형성된 소위 방석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여성들은 묻지 않아도 “월급은 100만에서 150만원, 빚은 전혀 없고 우린 자유스럽게 산다”며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빚에 밀려, 나이에 밀려 영광땅까지 스며들어온 여성들에게 탈매춘과 자립의 길은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영광바닥이 좁아라 커피쟁반을 쉴새없이 나르는 여성들에게 ‘희망’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오늘도 다방 오토맨(??)들은 거친 운전솜씨를 자랑하며 여성들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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