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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념과 편견은 종잇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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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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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사람에겐 ‘생각의 자유’가 있다.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종교·양심·사상·학문의 자유’ 등은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넓게 보면 언론·출판·결사·집회·표현의 자유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위 부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용어들에 내포된 ‘자유’라 함은 기본적으로 모두 ‘외부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의 수상에 즈음해 “민주주의는 인류 공통의 가치”라고 말했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적어도 생각의 자유에서 외부로부터 크게 간섭받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내부로부터의 자유’는 어떨까? 놀랍게도 우리가 하는 생각에 대한 ‘내부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이러한 내부적 간섭의 원천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품은 생각들이다. 이를 다른 말로 ‘신념’이라고도 한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의 ‘양심’도 본질에서는 신념이다. 이 양심은 외부 제도와 충돌을 겪는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별다른 강제가 없더라도 양심이 전혀 거리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를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 배경에는 “자연과학의 이론은 실험이나 현상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검증된다. 따라서 개인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과학의 이론들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논리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일종의 편견이자 선입견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과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수많은 현인들도 신념으로 포장된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피타고라스는 그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 무리수의 세계를 연 인물이다. 그러나 “세상의 본질은 유리수”라는 기묘한 신비주의적 논리에 빠져 죽을 때까지 무리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뉴턴은 스스로 이미 ‘절대공간’의 존재가 부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모든 이론을 이 토대 위에 세웠다. 그가 지은 <프린키피아>는 자연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거기에 이러한 인간적 오류가 있어서 더욱 그렇게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양자역학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한 본질인 확률론적 측면을 싫어했다. 그리하여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았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컴퓨터 문명을 이끈 당사자다. 그러나 뿌리깊은 백인우월주의자로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오늘날 사회가 민주화·다원화하면서 수많은 신념과 편견이 난무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올바른 신념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나 편견들도 한결같이 신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마저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자유롭기가 어렵다. 하지만 신념과 편견은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 궁극의 판단은 신의 영역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늘 한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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