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한자교육에도 과학이 있다

428
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크게 작게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한글전용의 물결이 밀려온 지 어느덧 몇십해가 흘렀다.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언어 감각에 거슬리는 한자말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요즘 다시 한자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한글이름의 열풍이 사라지고 한자이름이 많아졌다.

이런 현상은 물리학에 나오는 ‘감쇠(減衰) 진동’을 연상시킨다. 스프링을 누르면 그에 반발한다. 이 힘을 갑자기 없애면 스프링은 되튄다. 그런데 되튀는 과정에서 본래의 길이를 지나 약간 더 늘어난다. 그러면 스프링은 반대로 잡아당겨 다시 줄어든다. 이런 식의 늘어나기와 줄어들기는 점점 감쇠된다. 결국 몇번 반복한 뒤 평온을 되찾는다. 자동차 바퀴에는 도로의 굴곡에서 오는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붙어 있다. 그런데 스프링만 있으면 위와 같은 출렁임이 지속된다. 따라서 ‘쇼크 옵서버’(shock absorber)란 부품을 함께 붙인다. 그러면 대부분 출렁임은 단 한번만 일어나고 곧바로 평온상태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스프링은 도로의 충격을, 쇼크 옵서버는 스프링의 출렁임을 줄여준다.

자동차의 승차감은 여러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 가운데 스프링과 쇼크 옵서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한 사회의 안정감도 이와 비슷하다. 인간 사회가 굴러가는 길은 험난하다. 피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충격들이 늘 전해온다. 따라서 문제는 “어찌하면 원만하게 흡수해낼 것인가?”라는 점으로 모아진다.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협상문화에 익숙지 않다. 스프링은 강한데 쇼크 옵서버는 약한 형국이다. 그래서 충격을 한번 받으면 오랫동안 출렁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손해보곤 한다. 그래서 이제는 성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에는 쇼크 옵서버적인 요소를 많이 심고, 머리로는 적절한 세기를 찾아 적용해야 한다.

한글과 한자 사용의 스펙트럼을 활짝 한번 펼쳐보자. 스펙트럼은 대략 ‘한글전용-한자병용-한자혼용-한글병용-한자전용’의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조선시대에는 맨 오른쪽에 치우쳤다. 그러나 점점 옆으로 옮겨와 마침내 맨 왼쪽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사실 맨 왼쪽은 최적의 평형점을 좀 지나친 곳으로 여겨진다. 한편 요즘 한자교육을 역설하는 사람들도 한자병용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지는 않는다. 이로써 미뤄볼 때 최적의 조화점은 한글전용과 한자병용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기본적으로는 한글만 쓰되, 꼭 필요하면 한자를 같이 쓴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과학 분야의 예로는, 界와 系, 否定과 不定, 代數와 對數, 醫師와 擬似, 正常과 定常, 乳兒와 幼兒, 偏在와 遍在 등이 있다.

한자교육의 방법론도 문제다. 그동안 800, 1200, 1500, 1800, 2천자 등 이상하게도 ‘자수’(字數)에만 집착했다. 하지만 한자의 총수는 6만자에 이르고 아무도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자공부는 전혀 하지 않으면 몰라도 일단 하는 이상 평생공부가 된다. 따라서 그 교육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글의 제자원리가 가장 과학적이라지만 한자에도 그런 면이 많다. 자수에 얽매일 게 아니라 원리를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혼자 찾고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외국어를 알아야 모국어를 안다”라고 갈파했다. 언어교육도 다른 모든 교육과 같이 테두리를 짓지 않고 열어주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