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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최대포집 행동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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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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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굽는 데도 순서가 있다… 오랜 서민의 벗 최대포집 두배로 즐기기

사진/ 최대포집 돼지고기는 소금구이, 양념구이, 껍데기 순으로 시켜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18일이던가. 나는 조간신문 사회면의 마포 최대포집 화재 소식을 실은 상자기사를 읽고 혼자 기뻐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한다? 놀부 심보인가? 그럴 리야 없을 것이고, 내가 기뻐한 것은 40여년 전 마포 텍사스 골목에서 구운 돼지고기 한점과 막걸리 한 사발로 서민들의 지친 삶의 애환을 씻어주었던 한 선술집의 화재 소식이 주요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할 정도로 국민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30여년 전부터 단골인 나는 불난 최대포집이 궁금하여 그날 바로 현장에 가보았다. 기름때가 케케 들러붙어 있던 소주 상자들, 40여년간 고기를 썰어 송곳같이 닳아버린 식칼 등 최대포집의 ‘정통성’을 증언하는 물품들이 모두 화마에 흐트러져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무슨 수재민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주인 최씨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고는, 올 1월 중순 최대포집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지나는 길에 가끔 들러봤다.

몇년 전 최대포집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기뻐했던 일이 있었다. 나의 사촌동생 홍일선 시인은 한동안 영등포 시장에서 전문적으로 식당에 곱창을 공급해주는 ‘백두산 푸줏간’을 운영했는데, 언젠가 내게 최대포집 안주인 이옥기(62)씨에 대해 불평을 했다. 이야기인즉슨 곱창을 배달해가면 이씨가 웬만한 것은 퇴짜를 놓고 아주 물좋은 것만 찾는 탓에 장사해먹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평소 홍 시인으로부터 술잔이나 얻어먹는 처지라 그 자리에서는 끄덕끄덕 동의하는 체했으나, 속으로는 얼마나 기쁘던지….

기찻길 옆 최대포집(02-712-3213)에서 맛있게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법 및 행동요령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최대포집에서 만나는 낯익은 장삼이사들은 대개 이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첫째, 돼지고기는 소금구이, 양념구이, 껍데기 순으로 시킬 것. 일종의 전채, 주요리, 후식 개념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30여년의 경험으로 보면 이 코스대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둘째, 시킨 고기를 한꺼번에 굽지 말 것. 한꺼번에 구워놓으면 딱딱해지므로 슬쩍 초벌 구어 석쇠 한쪽에 모아놓고 먹을 만큼 덜어 조금씩 굽는 것이 좋다. 셋째, 대화할 때도 고기에서 눈을 떼지 말 것. 고기가 타면 맛이 없으므로 타지 않도록 줄곧 주목하고 있어야 하며, 저녁 때는 한 테이블에 두세팀이 합석하게 되므로 피아간에 고기가 넘어가지 않도록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넷째, 정치 얘기 등은 하지 말 것. 최대포집에는 대개 줄을 이어 손님이 대기하고 있다. 쓸데없는 공론으로 시간을 끌면 주인·손님 모두로부터 눈치를 보이게 되고, 또 한 석쇠 위에 다른 팀의 고기도 올려져 있으므로 침방울이 튀면 안 된다. 다섯째, 벽에 기대어 앉거나 두꺼운 옷, 또는 옷을 여러 겹 끼어입고 가지 말 것. 기름때·연기·냄새가 옷에 잔뜩 배어 지하철 안에서는 승객들이 모두 쳐다보고, 동네에서는 지나가는 개가 킁킁거리며 따라온다.


최대포집을 취재하면서 주인 최씨에게 30여년 전 가게에 나와 뛰어놀던 어린 아들에 대해 물어보니, 지금 30대로 아주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한다. 남의 집 아들이지만 훌륭하게 커준 것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프로그래머 아들이, 또 그의 아들이, 또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몇백년 뒤의 최대포집 화재(아니면 다른 좋은) 소식이 TV 9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했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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