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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래도 흥행 성공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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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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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만든 장선우 감독과 관객들의 대화

“이 자리가 청문회 같다. 파티라고 생각해서 왔는데 왠지 무서워진다.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아 달라.”

장선우 감독이 조심스레 인사말을 꺼냈지만 관객들의 질문은 가차 없었다. 지난 9월23일 저녁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나다에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놓고 장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영화제 출품작이 아닌 극장 개봉작을 놓고 이례적으로 열린 이 행사는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견해가 워낙 뚜렷이 갈리자 장 감독이 직접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호응하면서 마련됐다. 작품에 대한 칭찬부터 11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차라리 수재의연금에 썼으면 좋을 뻔했다는 비난까지 2시간가량 강도 높은 대화가 오갔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렸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수’라고 했는데 관객을 우롱하는 일이다. 너무 오만하지 않은가?

사람이 입으로 짓는 죄가 가장 크다. 그 말이 이렇게 반향이 클 줄 몰랐다. 난 소재를 생각하고 그 소재에 맞는 양식을 생각한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하나의 게임이다. 관객은 플레이어가 된다. 게임의 용어를 빌려 클리어 하면 고수이고, 아니면 하수란 표현을 한 것이다. 재미있으면 다시 접속하는 사람이 있으면 했다.

예전에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아 사회성 강한 영화만 찍는 감독인 줄 알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다.


정치적인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무관심에 총을 쏘는 것(자신이 지내온 고아원, 자신을 무시하는 회사 따위에)은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그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종교 등 인식의 구조를 이루는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보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스스로 해방되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시스템을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성냥팔이 소녀의 정체성은 시스템에 적응하는 프로그램된 연장이다.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적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감독의 스타일과 캐릭터를 잘 알면서 투자자들은 왜 리스크를 감수하고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생각하나? 영화산업이 어떤 이윤창출을 기대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장 감독이 왜 블록버스터라는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나?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개념 없이 출발한 영화인지 모른다. 소재를 선택하고, 그 다음에 양식을 선택했다. 가상현실을 다루다 보니 액션게임이 가장 재미있고 적절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액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나리오가 업그레이드되고 그래서 예산도 올라가고…. 출발이 그랬기 때문에, 블록버스터다운 또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일반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장르적 규칙을 지킨 영화를 왜 만들지 않았느냐는 질책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안했다. 제작사와 마찰이 생겨 촬영을 포기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건 흥행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어긋나서 많이 당혹스럽고 왜 이런 결과가 생겼느냐에 대한 분석이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해야 할 테고….

100억원이면 단편영화 100편, 아니 1천편은 만들 수 있다. 이 대립을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단편영화를 만드는 입장이었다면, ‘그 돈으로 1천편의 단편영화를 만들게 해주지’ 하는 생각을 반드시 할 것이다. 난 관객이 없어도 예술만 하면 된다거나 예술이 다 뭐냐, 돈만 벌면 된다라는 생각의 어느 쪽도 아니다. 난 작품의 예술성과 흥행성이 합일되는 지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 영화는 두 가지가 나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 봤고,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는 몰라도 대중성을 확보하리라고 믿었다. 이번 경우를 이해하려면 많은 것을 차분히 뒤돌아봐야겠지만….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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