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복제 등 둘러싸고 사회적 파문 확산… 윤리·안전 기초해 서둘러 입법해야
지난 9월23일 보건복지부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하고 그 법안을 공개했다. 아직까지 입법예고에 지나지 않고, 법률로 공표되기까지는 각종 정부기관의 심사와 국회 심의라는 기나긴 과정을 남겨두었지만 생명윤리와 안전의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무방비상태로 방치돼온 지금까지의 상황에서는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입법예고가 있기까지 과학자와 의사,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일반 대중, 국회, 정부 관계부처 사이에서는 무려 5년간이나 숱한 논쟁과 토론을 벌여왔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의 일방적인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윤리적 영향을 놓고 이처럼 진지한 토론이 벌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법안에 대한 각계 반응은 법안이 나오기까지 겪은 산고의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듯 치열하고 진지하다.
배아복제 금지에 관한 오해와 진실
법안이 발표되자 과학계와 종교사회단체에서 모두 불만이 터져나왔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한 배아복제와 이종 간 교잡의 원칙적 금지였다.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법안의 내용을 배아연구의 실질적인 원천봉쇄이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지나친 규제로 과학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난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법안이 과학 발전보다 윤리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었다는 일방적인 평을 실어 과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법안의 대체적인 내용에 대해 찬성하고 조속한 입법을 강조했지만, 법안이 원칙적 배아복제 금지를 천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외조항을 통해 체세포 핵이식 복제와 종간교잡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동안 인간 배아를 잠재적 생명체로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관리 소홀을 비판해온 여성단체들은 법안이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를 허용한 것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즉, 한해에 시행되는 인공수태 시술이 1만여건이 넘고 잔여배아의 수가 적게는 10만 많게는 50만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임신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잔여배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리 대책 및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계 역시 배아복제와 연구에 대한 완전한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번 법안이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한 배아연구에 대한 완전금지인가? 법안을 상세히 읽어보면 배아복제와 연구에 대한 규정은 무려 세 가지의 예외조항을 두었다. 하나는 이미 거론한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의 허용이다. 두 번째도 앞에서 이야기했듯 “자문위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허용을 결정한 경우”를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세 번째는 부칙에 명기된 이른바 ‘일몰규정’으로 앞으로 시행 3년 이내에 생명과학기술의 발전과 국내외 사회윤리적 여건변화를 고려해 개정을 취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따라서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하듯 법안이 배아연구를 전면 금지시켰다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듯 원칙적 금지를 천명하고 실질적으로는 연구가 가능한 길을 열어준 셈이다. 또한 일부 연구자들은 법안이 외국의 사례에 비춰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라고 말했지만, 현재 체세포 핵이식 배아복제를 명시적으로 허용한 나라는 영국밖에 없고, 종간교잡 행위는 모든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다.
더구나 영국에서도 이미 생명과학의 윤리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규제와 충격흡수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놓았다는 점에서 그동안 아무런 제도적 규율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고, 윤리적 인식도 없는 우리의 상황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컨대 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이 제기하는 배아와 인공수정, 불임시술의 관리 부재의 문제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잔여배아의 수나 관리방식에 대한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고, 연구자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배아나 여성의 윤리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에 마련된 법안은 오히려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다양한 규제·충격흡수 장치 필요
아직까지 많은 한계가 있지만 이번 법안의 주요 내용은 지난 5년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이룬 사회적 합의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 쟁점인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배아복제와 종간교잡 금지는 지난 2000년 11월부터 2001년 8월까지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생명과학자 5인, 의학자 5인, 인문사회 및 법학자 5인, 시민단체 및 종교계 5인)의 총 18차에 걸친 치열한 토론을 비롯해 공청회·토론회 등 일찍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사회적 논쟁을 거쳐 이뤄진 우리 모두의 합의 결과다. 그리고 그 정신은 법안의 목적이 규정하듯 윤리와 안전에 기초한 발전이다. 따라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안”의 조속한 제정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엄중한 촉구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 난자를 동결보관하는 질소탱크. 잉여 난자에 대한관리대책이 필요하다. (한겨레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