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자극해 자양분 빼앗는 수컷 유전자… 자궁 속 태아의 일상을 조절할 수 있나
생명체는 유전자 전쟁의 산물이다. 게놈들의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탓이다.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좀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다른 유전자를 모두 적으로 만들고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득세하기도 한다. 어쩌면 생명체는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피튀기는 싸움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지도 모른다. 수정을 위한 수컷 사이의 경쟁은 ‘정자전쟁’으로, 태아를 둘러싼 암수 사이의 경쟁은 ‘자궁전쟁’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전자의 이기적인 면모는 암수의 결합으로 탄생한 태아를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렇다면 수컷은 어떤 식으로 유전자사회에서 유별난 욕망을 채워나가는 것일까.
정자는 대개 머리와 몸체, 길고 날씬한 꼬리로 이루어져 있다. 주걱 모양으로 윤곽은 타원형이지만 납작하고 모자를 쓰고 있는 0.005mm 크기의 머리 내부에는 가임정자가 난자의 심장부에 전달하게 될 유전자인 DNA 꾸러미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머리는 정자의 발전소격인 짧고 딱딱한 몸체에 막대기 사탕 모양으로 얹혀 있는 형상이다. 이 몸체에 저장된 에너지가 가동되어 꼬리가 헤엄을 칠 수 있는 동력으로 쓰인다. 매끈한 정자의 개체들은 여성의 점약을 통해 여행하다가 꼬리 아래쪽으로부터 느린 동작으로 우아하게 물결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생명체로 거듭나기 위해 수정 이전부터 치열한 정자들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나은 후손을 위한 치열한 교전
남성의 경우 한번의 사정을 통해 2억∼5억 마리의 정자를 배출한다. 그 수억의 정자가 수정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부대와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히 운용해야만 수정에 성공할 수 있다. 대규모 부대원은 적군을 때려잡는 정자잡이, 적군에 달라붙어 앞길을 가로막는 방패막이, 수억 마리 아군의 충성스런 복무에 힘입어 마침내 수정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난자잡이 등이 절묘하게 대오를 지어 종족보존에 이바지한다. 때로는 난자가 암컷의 생식기관 안에서 수정되는 포유류에서는 암컷의 이중성교로 말미암아 외부의 침입자와 피나는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상의 조건을 지닌 유전자와 결합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바람에서다. 일반적으로 수컷의 생식기에서 분출된 정자들은 달리기 시합을 하듯 난자로 돌진해 가장 먼저 도착한 놈이 난자를 통째로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럿의 수컷과 성교하는 실잠자리처럼 가장 늦게 암컷과 관계한 수컷의 정자들이 이전 수컷의 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수정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분자 수준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정자들. 그것은 자궁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예비전투일 뿐이다. 세상 밖으로 드러낼 날을 기다리는 자궁 속에서 태아는 신진대사를 위한 유전자들의 교전을 피할 수 없다. 포유류들의 태아의 발달에 관련된 암수의 차이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다. 암컷과 수컷의 생체 내에서 발생한 정자와 난자에는 생화학적 꼬리표인 ‘임프린티드 유자’(Imprinted genes)가 들어 있다. 각각 아빠 또는 엄마의 것이라는 의미를 유전적으로 보증하는 것이다. 태아에서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질 것인지, 꺼질 것인지를 조절하는 암수의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정자에 의해 난자가 수정된 뒤에야 근원생식세포라는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근원생식세포는 태아의 다른 체세포들처럼 2개가 한쌍으로 이루어진 염색체들을 가지고 있다. 태아가 발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근원생식세포는 성숙한 생식세포가 되고, 감수분열을 거치면서 한벌의 염색체만을 가지는 정자나 난자를 만든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패턴 변화는 대부분 성인 세포가 될 때까지 이루어지며 새로운 세대의 정자 또는 난자 세포들이 생기기 이전에 지워진다. 예컨대 근원생식세포가 정자나 난자로 분화하는 어느 시점에서 다시 형성되는 식이다. 하지만 한번 임프린팅이 일어난 정자나 난자들은 이를 다시 지울 수 없다. 정자전쟁을 통해 근원생식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교전을 치른다. 아빠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유전자는 아빠의 뜻에 따라 더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에 비해 엄마의 꼬리표를 단 유전자는 태아가 너무 크게 자라서 자신의 영양분을 빼앗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는 모성의 발휘가 아니라 유전자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거의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단혼이 아닌 까닭에 얼마든지 배다른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수컷으로서는 최대한 암컷의 자양분을 빼앗고 싶어할 것이고, 암컷은 앞으로 예상된 다른 임신에서 악영향을 받는 걸 원치 않는 건 당연한 바람인지도 모르다. 이런 암수의 기대가 다른 까닭에 자궁전쟁이라 불리는 유전적 교전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자궁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움을 주도하게 된다. 현재까지 자궁전쟁에 관한 암수의 전략과 전술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아빠의 꼬리표를 달고 싸우는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전략이 우세하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바이브러햄 생명공학연구소의 분자생물학자 울프 레이크 박사는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자궁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컷의 유전자들은 최적의 조건을 태아에 제공하기 위해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하려고 한다. 그래서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암컷의 무리한 공급을 바라는 탐욕스러운 기질이 발달했다. 심지어 태아를 위해서라면 엄마의 건강을 헤칠 가능성도 있다.” 자궁전쟁은 태아의 영양에 관한 유전적인 교전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난자가 정자를 만나자마자 벌어지는 유전적 교전이 태아의 발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임프린티드 유전자가 태아의 건강상태에 미치는 것은 태아에 성장 호르몬에 관련된 유전자 ‘lgf2’가 있기 때문이다. lgf2는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패턴 변화 신호를 받아들여 모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전자는 태아의 피 혼합물과 영양물들이 교환되는 태반의 요지에서 활동한다.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바로 그 위치에서 태아를 위한 영양물들의 유입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균형이 깨지면…
정자전행을 통해 자궁경부에 있는 점액을 뚫고 자궁 속으로 들어간 정자. 천우신조로 난자 안으로 들어간 한 마리의 정자는 임프린티드 유전자를 통해 평생의 건강을 보장받으려고 한다. 태아의 발육부전과 저체중아 등의 원인으로 알려진 모성의 영양부족이나 불충분한 혈액 등을 일으키는 이유도 따지고보면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작동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만일 암수 임프린트 유전자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진다면 신생아는 보통의 크기로 태어난다. 이와 달리 저체중아나 과체중아가 태어나는 것은 태반 속에서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균형이 깨진 탓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태아의 자궁 속에서의 삶이 일생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 피터 너새니얼즈 박사는 <자궁 속의 삶>이라는 책에서 산모에게서 태아로 전달되는 호르몬과 태반이 태아의 각 기관에 영양분을 적절히 공급하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산모의 영양공급에 따른 태아기 프로그래밍이 유전적 요인보다 중요한 평생건강의 척도라는 얘기다. 하지만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활동이 산모의 영양공급을 조절한다면 문제는 다시 유전적 요인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아직 구체적인 활동 양상을 드러내지 않은 신비의 임프린티드 유전자. 그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태아의 자궁 속에서의 삶을 조절해 평생건강을 보장받을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사이어티픽 아메리칸> 10월호, <성이란 무엇인가> (이인식 지음), <정자전쟁>(로빈 베이커 지음).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사진/자궁속에 있는 태아.아빠의 꼬리표를 단 유전자의 활동에 힘입어 성숙에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남성의 경우 한번의 사정을 통해 2억∼5억 마리의 정자를 배출한다. 그 수억의 정자가 수정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부대와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략과 전술을 적절히 운용해야만 수정에 성공할 수 있다. 대규모 부대원은 적군을 때려잡는 정자잡이, 적군에 달라붙어 앞길을 가로막는 방패막이, 수억 마리 아군의 충성스런 복무에 힘입어 마침내 수정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난자잡이 등이 절묘하게 대오를 지어 종족보존에 이바지한다. 때로는 난자가 암컷의 생식기관 안에서 수정되는 포유류에서는 암컷의 이중성교로 말미암아 외부의 침입자와 피나는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상의 조건을 지닌 유전자와 결합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바람에서다. 일반적으로 수컷의 생식기에서 분출된 정자들은 달리기 시합을 하듯 난자로 돌진해 가장 먼저 도착한 놈이 난자를 통째로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럿의 수컷과 성교하는 실잠자리처럼 가장 늦게 암컷과 관계한 수컷의 정자들이 이전 수컷의 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수정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분자 수준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정자들. 그것은 자궁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예비전투일 뿐이다. 세상 밖으로 드러낼 날을 기다리는 자궁 속에서 태아는 신진대사를 위한 유전자들의 교전을 피할 수 없다. 포유류들의 태아의 발달에 관련된 암수의 차이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다. 암컷과 수컷의 생체 내에서 발생한 정자와 난자에는 생화학적 꼬리표인 ‘임프린티드 유자’(Imprinted genes)가 들어 있다. 각각 아빠 또는 엄마의 것이라는 의미를 유전적으로 보증하는 것이다. 태아에서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질 것인지, 꺼질 것인지를 조절하는 암수의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정자에 의해 난자가 수정된 뒤에야 근원생식세포라는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근원생식세포는 태아의 다른 체세포들처럼 2개가 한쌍으로 이루어진 염색체들을 가지고 있다. 태아가 발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근원생식세포는 성숙한 생식세포가 되고, 감수분열을 거치면서 한벌의 염색체만을 가지는 정자나 난자를 만든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패턴 변화는 대부분 성인 세포가 될 때까지 이루어지며 새로운 세대의 정자 또는 난자 세포들이 생기기 이전에 지워진다. 예컨대 근원생식세포가 정자나 난자로 분화하는 어느 시점에서 다시 형성되는 식이다. 하지만 한번 임프린팅이 일어난 정자나 난자들은 이를 다시 지울 수 없다. 정자전쟁을 통해 근원생식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교전을 치른다. 아빠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유전자는 아빠의 뜻에 따라 더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에 비해 엄마의 꼬리표를 단 유전자는 태아가 너무 크게 자라서 자신의 영양분을 빼앗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는 모성의 발휘가 아니라 유전자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거의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단혼이 아닌 까닭에 얼마든지 배다른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수컷으로서는 최대한 암컷의 자양분을 빼앗고 싶어할 것이고, 암컷은 앞으로 예상된 다른 임신에서 악영향을 받는 걸 원치 않는 건 당연한 바람인지도 모르다. 이런 암수의 기대가 다른 까닭에 자궁전쟁이라 불리는 유전적 교전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자궁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움을 주도하게 된다. 현재까지 자궁전쟁에 관한 암수의 전략과 전술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아빠의 꼬리표를 달고 싸우는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전략이 우세하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바이브러햄 생명공학연구소의 분자생물학자 울프 레이크 박사는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자궁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컷의 유전자들은 최적의 조건을 태아에 제공하기 위해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하려고 한다. 그래서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암컷의 무리한 공급을 바라는 탐욕스러운 기질이 발달했다. 심지어 태아를 위해서라면 엄마의 건강을 헤칠 가능성도 있다.” 자궁전쟁은 태아의 영양에 관한 유전적인 교전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난자가 정자를 만나자마자 벌어지는 유전적 교전이 태아의 발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임프린티드 유전자가 태아의 건강상태에 미치는 것은 태아에 성장 호르몬에 관련된 유전자 ‘lgf2’가 있기 때문이다. lgf2는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패턴 변화 신호를 받아들여 모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전자는 태아의 피 혼합물과 영양물들이 교환되는 태반의 요지에서 활동한다. 수컷 임프린티드 유전자는 바로 그 위치에서 태아를 위한 영양물들의 유입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임프린티드 유전자의 균형이 깨지면…

(사진/“아빠 유전자의 활동결과에 따라 신생아의 몸무게가 결정된다”수컷 유전자는 후손에게 최적의 생존조건을 물려주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