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판단에 여성으로 길러진 한 남성이 성적 자아를 찾는 처절한 몸부림
1972년 말 미국 사회는 출판물 하나가 발표되자 흥분으로 술렁였다. 존스홉킨스 병원의 성 심리학자인 존 머니 박사가 펴낸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란 책이었다. ‘킨제이 보고서 이후의 가장 탁월한 사회과학서’라는 찬사를 들으며 화려하게 떠오른 이 책은 “신생아 시기에는 성 정체성이 모호하다. 인간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후천적 요인이며, 이는 학습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언명했다. 50년대 초반부터 머니 박사가 이끄는 심리호르몬 연구팀을 거쳐간 양성 환자 수백명의 자료를 모은 이 책의 백미는, 이른바 ‘쌍둥이 케이스’라는 데 있었다.
65년 캐나다 위니펙에서 일란성 쌍둥이 형제로 태어난 브루스·브라이언 라이머는 배뇨 문제로 생후 8개월 만에 포경수술을 받는다. 그러다 형 브루스는 의사의 실수로 수술 중 성기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 고민하던 부모는 우연히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머니 박사를 봤으며, 그로부터 성전환수술을 권고받는다.
쌍둥이 남자 아이의 엇갈린 운명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은 이 수술의 이면에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사실들을 추적한다. 그것은 ‘인간은 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또는 없다’를 둘러싼 수십해에 걸친 공방전의 생생한 묘사인 동시에 한편으론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이후엔 다시 데이비드로 거듭 태어나는 한 인간의 치열하고도 고단한 ‘성 정체성 찾기’의 과정이다.
‘쌍둥이 케이스’는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구미가 당기는 실험사례였다. 같은 유전자 정보를 지니고, 뇌와 신경계에 끼친 태내 호르몬의 영향이 똑같은 2명의 남성이 한명은 여자로, 한 명은 남자로 길러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생후 22개월 만에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은 브루스는 브렌다로 이름이 바뀐 뒤 당장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가 입혀졌다. 어머니는 인형을 듬뿍 사다주고 깔끔하고 단정한 습관이 몸에 배도록 가르쳤다. 동생 브라이언에게는 날을 끼우지 않은 면도기를 가지고 놀도록 했지만, 브렌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브렌다가 눈독을 들이는 건 덤프트럭이나 기관총 같은 브라이언의 장난감이었다. 줄넘기줄을 선물 받아도 아이들을 때리거나 묶는 데 썼다. 심지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돼서도 서서 오줌을 누었다. 머니 박사는 이 모든 일들이 ‘말괄량이 기질’일 뿐이라며 오히려 부모가 흔들리지 말고 가볍게 넘겨야 한다고 충고할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갈수록 꼬여만 갔다. 브렌다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영 적응하지 못했다. 담임 선생은 “브렌다는 다른 아이들과 정반대로만 행동한다”고 적었다. 브렌다는 결국 1학년을 두번 다녔다. 하지만 머니 박사가 발표한 ‘쌍둥이 케이스’엔 브렌다는 그저 얌전하고 단정한 ‘완벽한 소녀’로 묘사돼 있을 뿐이었다.
학계에선 머니 박사의 주장에 던지는 도전장이 이어졌다. 밀턴 다이아몬드란 학자는 머니의 주장을 반박하는 양성 환자의 사례를 내보였다. 어머니가 임신 중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아 남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된 한 환자가 몇해간 여자로 자라다가 열일곱살에 남자로 성전환을 받고 싶다고 한 경우였다. 성기가 아주 작은 ‘그’는 인공성기 재건을 위해 수십번의 수술을 받더라도 유전자와 염색체가 정해준 성으로 살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다. 다이아몬드는 68년 출간한 <생식과 성 행태에 관한 고찰>에서 “설령 태어났을 때와 정반대의 성으로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환경의 힘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유연성과 적응력의 증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영국·미국에서 머니의 환경결정론을 성토하는 증거들이 쏟아졌다. 맨해튼의 정신과 의사 버너드 주거는 55명의 남성 동성애자들과 그 가족을 인터뷰한 결과 성적 지향이 교육과 환경에 따른다는 견해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환자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보았더니 과잉보호하는 어머니와 냉담한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러한 상황은 동성애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쌍둥이 케이스’를 뒤집는 결정적 계기는 쌍둥이 자신에게서 일어났다. 한해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받게 돼 있는 머니 박사와의 심리상담에서도 아무런 위안을 찾지 못한 브렌다는 점차 “앞뒤가 안 맞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친구도 없었고 학교생활에도 안착할 수 없었다. 불안과 우울로 뒤엉킨 내면은 내내 정신과 상담에 의지해야만 했다. 결국 14살 되던 해 그는 진실을 알게 된다.
성적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이 돌연변이나 기형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다행스러움마저 느낀 브렌다는 즉시 원래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성경에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곧 ‘데이비드’를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길 역시 순탄치 않았다. 여성 호르몬 치료로 생긴 ‘부작용’을 다시 없애야 했고, 다시 남성의 몸을 얻기 위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에서 쓰라린 망신을 당한 뒤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삶의 막바지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데이비드는 한 여성과 결혼해 자신의 핏줄은 아니지만 아이 셋의 아버지로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데이비드의 처절한 개인사와 별도로, 머니 박사의 ‘쌍둥이 케이스’ 연구의 오류는 97년에 와서야 학계에서 매듭지어졌다. 데이비드로 돌아간 브렌다의 실패사례가 논문으로 엮어지는 등 줄기차게 반증들이 연구됐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학설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비극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지 30년이 지난 뒤에야 결국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성 정체성이 환경에 의한 것인가 태생적인 것인가 하는 논란이 ‘태생론’의 완승으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쌍둥이 케이스’ 교훈을 통해 성 정체성이 어느 쪽으로 결정될지 모르는 상태에선 본인 스스로 내면의 요구에 이끌리는 대로 결정할 때까지 ‘수술도구’를 멀찌감치 치워놓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존 클라핀토 지음. 이은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사진/ 브루스(오른쪽)와 브라이언은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브루스는 성전환 수술 뒤 브렌다로 이름을 바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