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새벽같이 나오느라 난 눈곱도 못 떼고 나왔는데 각각의 고추 앞에 선 아줌마들의 매무새가 심상치 않다. 깨끗한 나들이옷에 화장까지 한 사람이 고추주인이고, 돈전대 차고 어슬렁거리는 아저씨 아줌마는 영락없는 상인들이다. 7시도 안 됐는데 군내버스는 마을사람들을 잔뜩 채우고 신호대기선에 진득히 서 있다. 고추 판 돈으로 이미 해장국밥집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르신들로 만원이고, 오랜만에 활기 찾은 고추장 덕인지, 추석 대목장 덕인지 옷·모자·생선·얼가리배추·사과·배 등을 파는 상인들의 펴고 다듬는 손길이 분주하기만 하다. 결국 어머닌 4일 전 고창장보다 500원 싼값에 넘겼다며 서운한 맘을 감추지 못한다. 늦고추가 없어서 고춧값이 더 오르려니 했건만 기대 이하다. 시골 5일장은 농촌사람들에겐 백화점이다. 각종 농산물을 이고 들고 나온 농민들, “포도나 사과가 싸요”를 외치는 과일장수의 소리를 귀따갑게 들으며 개나 닭 오리, 토끼를 파는 동물전과 우시장을 지나치면 속옷부터 일복, 정장까지 노점 옷가게가 즐비하게 이어진다. 그릇, 화장품, 조화, 새장의 새까지 구경하고 나면 튀밥집의 “뻥이요” 소리에 때맞춰 귀 막고 뛰어가야 하고 거리돈가스, 번데기, 튀김까지 한몫 거들어 거뜬한 하루 쇼핑이 된다. 장터 한쪽 끄트머리에 할머니가 하염없이 고구마순을 다듬으며 콩 한 주먹, 상추 한 주먹, 고구마 몇알을 두고 앉아 있다. 이것저것 담으며 덤으로 주는 인심뿐 아니라 친정엄마의 정을 맛보고 싶어서일까, 젊은 애기엄마들이 고구마순 할매에게로 모여든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