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의 차별철폐를 위한 일상적 저항의 기록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80·보스턴대 명예교수)은 노엄 촘스키와 함께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베트남전 반대 열기가 뜨겁던 1968년 쓴 <불복종과 시민주의>는 반전운동 시기의 명저로 꼽히며, 미국 출판대상 후보에 오른 <미국민중사>(1980)는 지금까지 40만부 이상 팔리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펴냄)는 93년 쓴 하워드 진의 자서전으로 이 제목은 30년 이상 몸담아온 대학 강단에서 그가 학생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일반적인 교육론과 달리 “교육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쟁점들에 관해 중립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언제나 “선생은 말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고 믿으며 실천해온 그의 세계관과 교육관을 축약한 말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운동에서 권력과의 대결로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3개의 테마로 나누어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 자신이 부딪치고 건너온 시대를 기술한다. 첫장은 남부지역에서 흑인 민권운동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민중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위를 마친 뒤 1956년 그가 교육자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인종차별이 심한 조지아주의 스펠먼대학이었다. 한해 전에 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인종차별을 금한다는 결론을 냈지만, 이 학교는 단 한명의 백인학생도 없는 일종의 섬 같은 곳이었고 여전히 흑인들은 버스에서나 식당에서 백인과 함께 앉을 수 없는 ‘전통’속에 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이었던 것들이 흑인들에게는 결코 끝이 없는 일상적인 굴욕”이라는 사실을 목격한 그는 수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학생들과 함께 조지아주 의회와 “작은 대결”을 벌인다. 그와 학생들이 방청석 내 ‘유색인종’ 좌석을 무시하고 가운데 자리에 앉자 “의장은 뇌졸증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고 의회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그는 이처럼 의회에서, 도서관에서, 식당에서 학생들과 ‘앉아 있기’운동- 지금 생각하면 운동 같지도 않은- 을 줄기차게 벌이며 남부지방의 강고한 인종분리정책과 맞섰다. 그를 포함한 동료들은 폭행당하고 체포됐으며 어떤 이들은 살해당하기도 했다. 그와 동료들이 실천한 ‘작은’ 행동들은 주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참혹한 사상자를 낸 올버니 시위는 ‘실패’로 낙인찍혔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이른바 역사라고 불리는 것들의 상당 부분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현실- 그들의 투쟁, 그들의 감춰진 힘- 을 등한시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작은 싸움들은 실패했지만 들불 번지듯 늘어난 흑인들의 분노는 그가 조지아를 떠날 즈음- 그는 7년 뒤 학교에서 해고됐다-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에서 그는 자신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과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교차시킨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라 막노동판을 전전한 그는 폭격수로 2차 대전에 종군한다. 파시즘에 대한 저항전쟁으로 종군을 자랑스러워한 그는 어느 날 동료로부터 “이건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냐. 제국을 위한 전쟁이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한다. 전쟁이 끝나고 원자폭탄이 떨어져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여행하며 그는 전쟁의 야만성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베트남전 초기부터 반전시위의 맨 앞줄에 섰다. 처음에는 100명도 안 되던 시위대의 수가 불과 1년 만에 수천명으로 늘어났고, 그는 곳곳에서 벌어진 반전집회에서 가장 바쁘게 뛰어다니는 연사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연단에서 징집을 거부하고 반전시위에 동참하자며 펼친 논리가 유명한 ‘시민불복종’의 필요성이었다. “시민불복종은 미국 대중의 대다수가 느끼는 강렬한 반전 정서를 나타내는 극적 방식이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기술적인 뜻에서는 법을 위반한 것일지라도, 시민불복종은 매우 민주적인 행위이며 시민들이 ‘불만의 원인을 시정하도록 정부에 청원’할 수 있다는 권리장전의 조항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강단과 집회·시위 현장에서 정부 권력과 싸워온 여정을 기록한 글이지만 이 글은 곳곳에 배어나오는 하워드 진의 인간적 온기로 인해 진가가 두드러진다. 법정증언 도중 판사에 대한 시민불복종 행위를 중도포기한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내 혁명적 열정이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은 욕망에 의해 종종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적거나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쫓아간 공산주의자 집회에서 깃발을 들며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굴러다니는 붉은 깃발을 무심코 들자 뒤로 수천명의 시위대가 그를 따라오는 장면)이 된 기분이었다고 털어놓는 데서는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인간을 믿는 유쾌한 낙관주의자
그에게는 싸움도 단지 견결한 신념이나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인한 행위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행동보다 긴 싸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에게 신념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 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함께 말이다.” 여전히 폭력적이고 불의로 가득 찬 세계에서 그가 낭만적 이상주의라는 비판에 개의치 않으며 유쾌한 낙관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 것도 인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역사의 모든 일은, 일단 벌어지고 나면 마치 정확히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불확실성을, 뜻밖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바꾸는 데서 인간 행동의 중요성을 확신한다.”
그는 ‘탈정치화’를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70년대 이후의 대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60년대만큼 거대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미국의 제3세계 침략에 분노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하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는 냉소만이 세상을 버티어 나가는 방법이 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까지 “희망을 고집”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하워드 진.

사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