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찢겨진 아랍의 ‘깊은 슬픔’

426
등록 : 2002-09-11 00:00 수정 :

크게 작게

테러의 뿌리를 찾는 코믹 저널리즘… 사담 후세인은 정말로 ‘전쟁광’인가

9·11 이전에도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은 잔혹한 테러를 일삼는 ‘악의 축’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하느님이 약속해준 땅’이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백년간 살아온 집과 땅을 갑자기 빼앗기 시작했어도 나쁜 쪽은 늘 아랍인들이었다. 미국인 만화저널리스트 조 사코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랍어를 전공한 이라크계의 여성 클로디어에게 한참 구애어린 탐색전을 펼치다가 끝내 외면당하고는 이렇게 투덜거린다(그녀는 팔레스타인에 애인을 두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남자친구라고? 제기랄! 망할! 테러리스트에 환장해서는! 공정치 못하다고? 그럴지도. 테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밥먹듯 벌이는 짓이었다. 잊었는가? 뮌헨올림픽 때의 일을? 불에 탄 선수들, 버스, 공항에서 벌어진 학살극을?”

그들의 비참한 역사를 아는가

사진/ <팔레스타인>(조 사코 지음, 한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사담 후세인>(김동문 지음, 시공사 펴냄).
하지만 그가 91년 말에서 92년 초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의 거리들을 쏘다니며 모은 취재 결과는 엉뚱했다. “중동 유일의 민주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이면이 사실은 미국 등 서방세계가 용인한 테러리스트의 표정에 가까웠던 것이다. 사코가 자신의 취재기를 만화로 그린 <팔레스타인>은 사진을 곁들인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르포르타주다. <오리엔탈리즘>을 지은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을 한두명의 시인과 소설가를 제외하면, 사코보다 절실하게 그린 사람은 없었다. 그가 그린 이미지들은 독자가 읽었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모습보다 자극적”이라고 이 책을 평가했다.


사코는 이스라엘 군인들과 정착민들이 저지른 만행의 현장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정착민들의 총에 가족을 잃은 사연 하나. “정착민들이 마을의 급수 파이프를 깨려고 몰려와 싸움이 벌어졌어요. 내 동생은 조카와 뒷문으로 나가 지붕에 올라 상황을 살피는데 한 정착민이 길에서 그들을 쏴버렸어요. 조카는 즉사했고, 동생은 배에 총을 맞았죠. 그런데 통금령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했고, 동생은 3시간이나 피를 쏟은 끝에 죽었어요.”

총을 쏜 정착민의 재판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사코가 보기에 그 정착민은 자신을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어 보였다. 87년부터 91년까지 정착민은 42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했으나 단 3건만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장 무거운 처벌은 3년 징역형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정착민 17명을 살해했다. 9명의 피의자 가운데 6명이 무기징역, 1명이 20년형, 나머지 둘은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점령자에게 공평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신 베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잡아다 끔찍한 고문을 공공연히 자행한다. 고문 끝에 숨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은퇴한 이스라엘의 한 대법원장은 고문에 대한 조사권을 위임받아 보고서를 작성했다. 거기에서 그는 심문과정에서 모종의 심리적 압력과 적당한 신체적 압박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코는 이처럼 합법화되다시피 한 고문의 끔찍한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사코의 만화저널리즘은 이스라엘의 흉측한 면모를 구석구석 까발리는 데 충실하지만, 생략과 강조라는 만화 특유의 재미를 적절히 끼어넣는 걸 잊지 않는다. 또 길에 널브러진 죽은 쥐를 뛰어넘고 악취를 풍기는 진흙창을 쏘다니며 툴툴대는 사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들이 정겹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당혹해하는 그의 표정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한쪽에는 이슬람법에 따라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딸을 목졸라 죽이는 아랍 가족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돌을 던졌든 안 던졌든 아이들을 고문하고 옥에 가두는 이스라엘이 있어 그를 혼란시킨다. 분명한 건 점령지에 대한 제네바 협약이나 점령군의 철수를 규정한 유엔결의안이 지켜질 겨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테러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보호본능에 가깝다. 테러는 ‘악’이라는 명제를 그들 귀에 들려줄 방도가 없어보인다.

이젠 오해를 풀고 진실을 찾자

아랍의 오해에 관한 현장감 넘치는 보고서는 <사담 후세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미국이 악마로 규정한 사담 후세인이 한켠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들리는 까닭을 물으며, 이라크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지은이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나 불우하게 성장한 후세인이 어떻게 반체제 혁명투사의 길을 걷다 최고 실력자가 되어 23년씩이나 한 나라를 절대적으로 통치하는지 이라크의 현대사와 중첩시켜 기술한다. 미국적 시각을 배제하고 중동과 현지에서 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거품을 뺀 사담 후세인은, 지은이가 판단하건대 바그다드판 박정희다. 자신에 대한 우상화와 폭압정치를 함께 펼치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재자의 한 전형이다. 동시에 그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현실정치에 노출된 소품이기도 하다. 이 소품의 제조국은 미국이다. 여기에는 걸프전 직전까지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던 미국이 갑자기 후세인을 전쟁광으로 내몬 사연이 숨어 있다.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된 걸프만에 미군의 거점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오랜 숙원 때문에,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구실을 얻기 위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을 조장했다는 논리다. 지은이는 몇 가지 근거와 정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다시 팔레스타인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팔레스타인은 이라크 바깥에서 후세인에 대한 지지가 가장 드높은 곳이다. 후세인이 이스라엘에 대해, 그 후견인인 미국에 대해 누구보다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며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세계 3, 4위를 다툴 수 있는 건 미국 덕이다. 2002년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군사·경제 원조는 약 3조6763억원에 이른다. 이스라엘 국민 1인당 1만4630달러씩으로 미국 시민에게 제공하는 연방보조금보다 많은 액수다. 이와 대비되는 건 후세인도 인티파다로 희생당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구호 원조기금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세인은 자살폭탄을 안고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2만5천달러의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사담 후세인>은 9·11 이후 더욱 분칠이 가해진 아랍쪽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을 명확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