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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마워요,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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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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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파문에 미소짓는 <보스상륙작전>… 병역비리 내용에 ‘영풍’ 조짐 일기도

거대 정당이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 한편의 홍보대행사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버린 어이없는 촌극이 지난 9월6일 하룻동안 아주 ‘긴박하게’ 벌어졌다. 6일 저녁 <보스상륙작전>의 마케팅팀에서 ‘대박조짐!’이란 제목이 달린 보도자료를 영화담당 기자들 앞으로 긴급 타전했다. 다음은 그 한 대목.

“<보스상륙작전>은 지난 8월 초 경찰복을 입은 도우미들을 동원하여 서울 일대에서 전단을 배포하다가 마케팅 관계자가 즉결심판에 회부되었고, 일간지 광고에 ‘파문, 검찰이 룸싸롱 개업, 여경 및 연예계 다수 포함’이라는 파격적인 카피로 검찰의 항의를 받았다. 또 현재는 영화에 등장하는 병역비리 내용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한다고 발언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심상치 않은 화제를 낳으며 <보스상륙작전>은 2002년 최고의 사건을 친 코미디 영화로 기록되면서 벌써부터 흥행대박을 예고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이 ‘홍보맨’으로 활약


영화 홍보자료는 부풀리기와 장밋빛 미사여구로 가득 차기 일쑤긴 하지만, <보스상륙작전>의 홍보전술은 오래전부터 영화기자들 사이에 입방아에 올랐다. “룸살롱를 소재로 한 영화라 인터넷 홈페이지도 비슷한 분위기로 꾸몄거든요, 그러니 관심 있게 봐주세요”라는 선정성 홍보를 정색하고 해오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사회 결과 영화의 완성도나 진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평단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나라당이 “심상치 않은 화제”를 뿌리며 “흥행대박을 예고”해줬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 홍준표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보스상륙작전>은 명백하게 야당의 대선 후보를 음해하는 내용이다. 병풍에 이어 영풍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실상 이회창 후보를 비방하고 있어 명백히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밝히고 나섰다. 영화는 장나라당 김모 대통령 후보가 병역비리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조폭의 자금을 유입하고, 검찰이 대선자금 비리를 캐기 위해 룸살롱을 위장개업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검사 출신의 홍 의원은 영화를 보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거대 야당이 정색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치풍자가 목적이 아니라는 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심각했다.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 참모의 말이다. “솔직히 우리 판단은 이렇다. 이번 영화도 그렇고 이전의 노래 파문도 그렇고 다 노사모, 그쪽과 관련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노래나 영화, 연극 등을 총동원해서 그렇게 나온다. 노무현 띄우고 이회창 죽이고….”

영화보다 코믹했던 음모론 주춤

홍 의원은 “영화제작사의 대표와 감독이 한나라당과 관계가 불편한 방송사 출신이라는 점, 일급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가 엄청난 수의 상영관에서 개봉되는 점 등 의심스러운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영풍’의 근거를 들이댔다. <보스상륙작전>이 이례적으로 개봉관 수를 많이 잡은 건 사실이지만 이건 영화계 내부 사정 때문이다. 6일 개봉작은 이 영화와 <이투마마>라는 남미 영화 두편뿐이었다. 보통 한주에 5편 안팎으로 개봉되는 때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라서 극장들의 선택폭이 좁았던 것이다. 또 다른 근거에 대해서는 김성덕 감독이 자못 코믹하게 대꾸했다. “내가 한나라당보고 일급 정치인이 한명도 없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은가? 또 난 16년간 문화방송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 얼마 전 프로덕션을 차려 나왔다. (홍 의원의 말은) 방송 구조를 모르는 데서 나왔다.”

희극적 상황은 이날 밤 곧바로 일단락됐다. 저녁 때 한나라당 관계자가 영화를 본 뒤 “전혀 신경쓸 것 없다, 과민반응할 필요가 없는 영화”라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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