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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1’의 의미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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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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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수학을 배우면서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은 ‘1’이란 숫자다. 그 뜻은 물론 ‘하나’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물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1이란 숫자를 붙인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름과 같다. 어떤 사람에게 ‘김갑돌’이란 이름을 붙여주듯, ‘하나라는 관념’에 1이란 이름을 붙였다. 차츰 더 깊이 들어가면 1로부터 여러 가지가 생겨나옴을 알게 된다. 하나가 있는 곳에 또 하나가 들어오면 ‘둘이란 관념’이 된다. 거기에 ‘2’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을 계속한다. 결국 ‘1, 2, 3 …’이라는 ‘자연수 체계’가 ‘1’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1’은 다른 용어를 만드는 데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정상적인’이란 뜻의 ‘normal’이 있다. 어떻게 해서 1로부터 이런 뜻이 나오게 되었는지 잠시 살펴보자. normal의 어간은 norm이다. 그 가장 기본적인 뜻은 1이다. 1로부터 모든 자연수가 만들어지듯이 normal이란 말과 관련된 뜻은 모두 1이란 뜻으로부터 흘러나온다. norm의 두 번째 뜻은 ‘자’(尺)다. 왜 이 뜻이 나오는지는 자의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자를 만들려면 먼저 어떤 ‘기본 단위’가 필요하다. 그 기본 단위를 1로 정한다. 그런 뒤 그것을 똑같은 간격으로 반복한다. 그 반복된 곳마다 눈금을 새겨넣으면 바로 자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는 다른 대상을 재는(측정하는) 기능을 한다. 이로부터 ‘표준’이란 관념이 따라나온다. 한편 다른 것을 판단할 때는 은연중 비교를 많이 한다. 더 낫다든지 못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하여 이로부터 ‘평균적인 수준’의 뜻이 도출된다. 그 수준을 중심으로 비교를 한다.

이 평균적인의 뜻이 발전해서 ‘정상적인’이란 뜻이 된다. 더도 덜도 아닌 곳,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비난을 받지 않는 곳, 중용의 미덕이 자리잡은 곳이 정상이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비정상(abnormal)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이제껏 얘기한 의미의 도출 과정을 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다분히 인위적이다. 어떤 절대적 가치를 두고 가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숫자가 많으면 그쪽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형성된다. 이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을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예는 갈릴레이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이론과 계산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적인 세력들 때문에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특히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지동설이라는 이론은 자연과학적 이론으로, 다수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억울했다. 그리하여 다만 혼자서 속으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겼다.

최근 국무총리 인준이 두 차례나 거부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상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느낀다. norm에는 ‘규범’, ‘법도’라는 뜻도 추가된다. normal에는 또 ‘수직의’란 뜻도 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법도를 세운다’, ‘솔선수범’이란 말이 된다. 어쩌면 앞으로의 몇달은 더욱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차분히 1로부터 ‘하나씩’ 풀어가면 어떨까?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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