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년간 희망이 없어요”
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민방위 훈련도 아니고 아무 설명도 없이 2∼3분간 사이렌이 울린다. 1분간 사무실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더니 얼굴빛이 불안감으로 바뀐다.
“원자력에서 사고난 거 아냐?” 서로 입 밖에 내기 싫었던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영광에서 제일 크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서점으로 전화를 하니 잘 모르겠단다. 오히려 이유를 알게 되면 바로 연락 달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만약 사고라면? 아이들이 지금 어디 있지? 어디로 피해야 하나?” 납으로 된 굴밖에 피할 곳이 없다는데…. 그리고 밀재(광주 방면), 깃재(장성 방면)를 막으면 우린 꼼짝없이 영광에 갇히고 만다.
순간 거의 없을 사고에라도 대비해야 하는 게 ‘원전사고’라며 당장 인구 수만큼 방독면과 요오드를 각 개인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반핵 운동가의 이야기가 귓가에 울린다. 방사능으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요오드를 마시면 방사능이 몸 속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응급처치 방법이란다. 그런데 방독면과 요오드액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왜?”냐는 물음에 “원자력 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자인하는 것이 되는데 그러면 민심이 동요할 것이고 앞으로 핵폐기장까지 산적한 문제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설명이다. 방사능에 대한 불감증도 그렇고 목숨을 볼모로 잡고 영광땅에 살아야 한다니 뒷골이 띵하다.
군청으로 전화를 넣어도 계속 통화 중이다. “이거 진짜 사고 아냐?” 다급한 마음에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영광군민 대책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실무자에 따르면 “을지훈련 기간에는 예고 없이 사이렌이 울린다”는 이야기에 맥이 탁 풀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거북이등에 놀란 가슴 솥뚜껑에다 대고 놀라는 격이다.
요즘 둘째놈 성호는 영광 일대에 걸린 현수막과 엄마 차에 달린 ‘핵폐기장 반대’ 깃발 덕인지 나만 보면 “엄마, 핵폐기장이 도둑놈이지! 그래서 막아내야 돼”라며 되뇐다. 이러다 반핵 운동가 나오겠다.
오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여성의전화에서 내건 현수막 내용 중 “핵폐기장 건설되면 3만년간 희망이 없어요”라는 내용을 보고 3만년의 근거를 물어왔다. 원자력 발전소는 30∼50년까지를 가동기간으로 본다면 핵폐기장의 가동기간만 3만년이라는 설명을 드렸더니 핵폐기장의 폐해는 영구적이고 그 땅덩어리는 영영 못쓰게 되므로 3만년만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신다. 더욱이 전국의 1700여곳에서 쏟아져나오는 핵폐기물을 도로나 배로 운반해야 하는 전제라면 영광 같은 인구밀집 지역이나 수심이 얕은 영광 해안은 2급지라는 한국수자원전력공사의 발표마따나 적합지가 아닐뿐더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무릅쓰고 “어딘가는 버려야 한다”는 논리로 돈과 완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영광만 피해를 입겠느냐는 설명을 덧붙이신다. 전국이 피해지역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 “우리 지역만은 안 돼”라는 님비현상이 아닌 잘못된 핵산업을 바로잡고 전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영광댁도 영광땅에 오래도록 살고픈 희망을 접고 싶지 않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