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정환 선생의 유별난 막걸리 사랑… 톡 쏘는 홍어찜만한 짝이 또 있을까
1983년에 54살로 요절한 소설가 이정환 선생은 그야말로 엄청난 굴곡의 일생을 살았다. 전주농업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10대의 나이에 한국전쟁이 터져 학도병으로 출전했으나 북한군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간전투를 벌이다 포로로 잡혔고, 몇 개월 포로생활을 하는 갖은 고생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이정환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다시 육군에 입대했으나 군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해 숨어 지내며 시작(詩作)수업에 전념하다가 헌병대에 붙잡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고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어찌어찌해 특사로 출옥해 세상의 햇볕을 보게 된다. 76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되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정환 선생의 장편소설 <샛강>은, 선생이 감옥에서 나온 뒤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듯 솔가해와 악다구니하며 함께 울고 웃던 난지도 부근 샛강의 버려진 인생들의 이야기로, 7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큰 성과였다.
76년 겨울이든가, 나는 이정환 선생을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만났다. 선생은 난지도 인생답게, 차려진 뷔페 음식과 양주 칵테일에 무척 낯설어하며 손을 대지 못했다. 그리하여 몇몇 분들과 일찍 자리를 작파하고 청진동 뒷골목 막걸릿집으로 가 통음한 기억이 난다.
이를 계기로 이후 이정환 선생과 자주 술자리를 만들어 어울렸는데, 나는 청탁을 불문하지만 이 선생은 막걸리를 좋아해 주로 막걸릿집을 택했다. 그런데 이 선생의 안주 주문이 아주 특이했다. 보통사람이라면 막걸리엔 빈대떡·낙지볶음·두부 등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선생은 달랐다. “어이, 김형 우리 토마토 썰어 달래서 막걸리 한잔 먹을까?” 또는 “우리 배고픈데 자장면 시켜서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 “황도 통조림에 막걸리!” 매사 이런 식이다.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정환 선생이 즐기는 막걸리와 안주의 부조화와 불협화음은 자주 있었다. 어떤 술에는 어느 안주가 제격이고, 어느 안주가 있으면 어떤 술을 마시면 좋다는 생각은 술꾼이라면 생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또 복잡하게 토론하지 않더라도 쉽게 합의하는 것인데, 참으로 이 선생의 선택은 기이했다.
각설하고. 막걸리의 궁합을 볼 것 같으면 아무래도 안주로는 홍어가 어울린다. 암모니아 냄새가 살짝 나도록 발효시켜 얇게 저며 썰어 초고추장이나 소금에 찍어 먹는 전라도식 홍어회, 홍어살을 칼로 채질해 식초에 담가 꼬들꼬들해진 다음 꼭 짜 식초물을 빼고 미나리·초장·마늘·생강 넣어 무쳐 먹는 서울식 홍어회, 홍어애(창자)에 된장 풀고 보리순(부추로 대신할 수 있다)을 넣어 끓인 홍어국, 홍어를 꾸둑꾸둑 말려 미나리·콩나물·버섯 넣고 찐 홍어찜, 홍어회 위에 묵은 김장김치 얹고 또 그 위에 돼지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삼합 등 톡 쏘는 홍어 안주는 시금털털한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다.
이 모두를 맛볼 수 있는 집이 있다. 인사동 카페 골목 안에 자리한 홍어 전문집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02-736-4439)다. 주인 김용숙(43)씨는 전남 영암이 고향으로,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맛본 홍어맛을 되살려 이 집을 열었다고 한다. 요즘은 산홍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냉동 홍어를 해동시켜 저온 냉장고에서 3주 동안 숙성·발효시킨다. 항아리나 두엄더미에 넣어 숙성시키는 전통 홍어 처리법에 못지않게 담백하고도 톡 쏘는 맛이 이 집 홍어의 특징이다. 그리고 물 좋은 홍어애를 골라 급랭시켜 얇게 저며 내오는데, 그 맛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고소하다.
이 집 홍어와 만나는 막걸리는 주인 김씨가 집에서 직접 담근 것이다. 나는 이 집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20여년 전 막걸리와 이상하게 만난 이정환 선생의 안주들을 생각하며 혼자 웃음짓는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사진/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의 상차림. 냉동 홍어를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각설하고. 막걸리의 궁합을 볼 것 같으면 아무래도 안주로는 홍어가 어울린다. 암모니아 냄새가 살짝 나도록 발효시켜 얇게 저며 썰어 초고추장이나 소금에 찍어 먹는 전라도식 홍어회, 홍어살을 칼로 채질해 식초에 담가 꼬들꼬들해진 다음 꼭 짜 식초물을 빼고 미나리·초장·마늘·생강 넣어 무쳐 먹는 서울식 홍어회, 홍어애(창자)에 된장 풀고 보리순(부추로 대신할 수 있다)을 넣어 끓인 홍어국, 홍어를 꾸둑꾸둑 말려 미나리·콩나물·버섯 넣고 찐 홍어찜, 홍어회 위에 묵은 김장김치 얹고 또 그 위에 돼지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삼합 등 톡 쏘는 홍어 안주는 시금털털한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