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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들처럼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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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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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느끼는 ‘색스 앤 시티

사진/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걸치는 명품은 젊은 여성 시청자를 유인하는 매력 가운데 하나다.
케이블TV 출범 이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자신을 아줌마로 규정하는 주부 대상 홈쇼핑, 직장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명품 및 해외관광 소개, 그리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대낮에도 TV를 볼 수 있는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은 케이블TV 초기의 도시 남녀를 다루는 시트콤이었다. HBS의 <내 사랑 캐롤라인>, GTV의 <엘렌>, 동아TV의 <프렌즈> 인기는 젊은 여성들이 그동안 얼마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에 굶주려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낮 TV 시청이 가능한 젊은 여성’들이 선호한 도시 시트콤은 비슷한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들 자체가 학생보다는 많은 나이,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초년생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상당수 캐릭터가 회사원보다는 프리랜서나 자영업이라는 독자적인 위치에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리고 웃음을 무기로 해서 스트레스 해소제 역할을 전담하는 것도 비슷했다.

내 안의 욕망이 자라고 있었네


<내 사랑 캐롤라인>과 <엘렌>이 인기도 문제와 케이블TV 자체의 구조조정 틈바구니에서 탈락하고, 남은 것은 <프렌즈>였다. <프렌즈>는 여성채널 동아TV의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도시의 젊은 남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지상파 도움 없이 성공한 시트콤으로서- 본의 아니게 지상파 방송국에 저질 표절 시트콤을 난무하게 한 견본이 되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프렌즈>의 성공이 HBO에서 <섹스 앤 시티>를 야심작으로 내놓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섹스 앤 시티>가 대담한 성을 무기로 삼는다지만 기본은 역시 대도시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기 때문이다.

제목만큼이나 적나라하다고 소문난 드라마 <섹스 앤 시티>. 최대 무기는 역시 솔직함이다. 뉴욕 독신 여성 네명이 즐기는 애정사 이야기. 그리고 그에 딸려나오는 ‘처녀들의 식탁 수다’, 여성들끼리 모였을 때 나오는 통렬함과 빈정거림이다. 여성들이 주가 되는 성인물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다. 자기네가 세상을 지배하는 줄도 모르고 지배하느라 스트레스받는 남성들에게 옆구리 콱 쏴붙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설사 지나치게 적나라한 것이 싫다고 해도, <섹스 앤 시티>의 주인공들이 남녀 관계에 대해 쏟아붓는 신랄한 독설에는 깔깔대며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독설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독설은 기껏해야 분풀이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주부나, 막다른 골목에 놓인 ‘악녀’의 신세한탄에 지나지 않는다. 화풀이로 나오는 독설은 단지 일회용일 뿐, 상황이 끝나면 독설의 힘도 없어진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영화가 결국 남성 영화에 지나지 않는 것도 그 여성들의 성적 관심이 자연스러움의 발로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결과물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섹스 앤 시티>의 독설은 생활 자체에서 나온다. 여성들이 피해의식이 아닌 자기애를 발휘하면 능히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뇌 속에, 피부 아래 묻혀 있지만 슬쩍 긁어주면 ‘아하!’하고 튀어나올 생각을 마구 뿌려준다. 정말로 때 미는 것처럼 시원하기 그지없다. 1년 전에 젊은 여성이 <나는 미소년이 좋다>를 내자 “망측해!”라는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는 것을 몇명이나 기억할까? 지금은 축구선수들을 ‘꽃미남’으로 포장 못해서 모든 스포츠 신문이 안달이다. 딱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쾌감은 처음엔 민망함, 다음엔 자연스러운 유쾌함이다.

무엇보다 <섹스 앤 시티>는 진짜 여성들의 세밀한 면을 꿰고 있다. 진짜 친한 여성들이 서로를 야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정말 친구가 맞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서로 “썩을년, 망할년” 하며 싸가지 파이어볼에 피박 슬레이브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 밑에 또는 그 이후에 보여주는 유대감과 교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섹스 앤 시티>는 여성들의 동감대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적 능력. <섹스 앤 시티>는 아주 적극적으로 여성들의 환상을 채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먼저 뉴욕이라는 배경부터 환상을 채우기에 적격이다. ‘뉴욕애들은 저러고 산다며?’ 하는 부러움에다 주인공들이 걸치는 ‘명품’은 상당수 젊은 여성들을 유인하기에 충분하다. <섹스 앤 시티>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회사일에 찌든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상황이나 기대치를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젊음을 더 소진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라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 금전과 재력이 있는 만큼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마음껏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프리랜서로서, 캐리가 겨우 그 정도 칼럼을 쓰고 그런 명품을 두르고 다닐 만큼의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할뿐더러- 또한 양심불량이라고 생각한다(히히히, 반만 농담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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