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파트너’ 황정민씨의 <젊은날을 부탁해>… 방송 10년을 일궈온 내면의 풍경들
<뉴스투데이> 때는 번개머리, <뉴스7> 때는 영화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 머리에 민소매 블라우스. 찬반 양론까지 불러일으키는 도전적 시도는 외모뿐 아니라 ‘황정민 어록’이라 불리는 톡톡 튀는 멘트로도 이어진다. 2년째 청취율 1위를 지키는 아침 생방송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이부자리 걷어낼 시간이예욧!”이라고 호통을 친 뒤, “저는, 당신의 모닝 파트너 황정민입니다”라고 매혹적으로 속삭인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과감한 액션이나 웃음으로 옆자리의 남자 앵커를 당혹스레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속내 드러내며 말을 걸어오네
한국방송의 스타 아나운서 황정민씨는 명랑하게 톡톡 튀지만,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를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콤플렉스 덩어리다. 지적이면서 지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화면에서 방긋방긋 잘 웃지만 그게 위선인 것 같아서, 아웃사이더의 삶이 좋지만 어쩐지 인사이더의 삶이 궁금해져서, 99%가 만족스러워도 부족한 1% 때문에 ‘좌절’하고 그런 자신이 우습다는 걸 알고 여유를 갖자고 다짐하지만 그게 잘 안 돼서 그는 괴로워한다. 타인의 눈에는 화려해 보이고 부족할 게 없어 보여도, 끊임없이 고개를 쳐드는 결핍감이 문제다. 아니 그 결핍감이 삶을 쓸데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게 진짜 문제다. 사실 이건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내면의 우울한 표정이다. 그가 방송 10년을 되돌아보며 쓴 <젊은날을 부탁해>(마음산책 펴냄)는 딜레마에 처한 자신의 속내를 빌미로 ‘당신도 이런 거 겪지요?’ 하고 대화를 걸어오는 책이다. 그러니 방송가의 뒷얘기나 방송사고 같은 에피소드를 기대하지는 말자.
스물여섯 꼭지로 이뤄진 글들에는 한결같이 영화 이야기가 끼어든다. 방송일에도, 가족 이야기에도, 친구를 말할 때도. 그는 <씨네21>의 ‘내 인생의 영화’란 꼭지에서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섬세하면서도 빈틈없는 글솜씨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친구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는 내용이 예사롭지 않아 조그만 화제가 됐다. 이른 아침과 저녁의 생방송을 반복하는 지친 일상 사이에 글을 쓰느라 툭하면 불 켜놓고 책상에 엎어져 잠들기를 반년 넘게 되풀이하면서 썼다는 책에는 그때 본 글맛이 담겨 있다. 경어체 때문에 글의 긴장감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연예인 같은 유명인의 글을 책으로 내는 건 이게 유일무이할 것 같아요. 황씨는 까마득한 대학 후배인데, 그 또래로부터 그에 대한 특이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학보사 기자 시절에 워낙 글을 잘 쓰기로 이름났었고, 두꺼운 안경에 보이시한 스타일이었기에 예뻐 보여야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고, 학생운동도 꽤 열심히 했다고 하고. 예상했던 대로 남다른 글을 써왔네요.”(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은 전문성 있는 예술 관련 서적을 주로 내왔다. 학생운동?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뒤져도 그가 20대 초반에 무얼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글에 학보사 시절의 동료를 10년 만에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친구는 사회에 여전히 안주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화여대 영문과 89학번의 황씨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다른 세상 꿈꾸던 시절… 방송에 속지마라
오늘은 아무개, 내일은 또 아무개 하는 식으로 열사의 숫자가 늘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이 금방이라도 바뀔 것 같은 승리감이 밀려왔습니다. …정리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허탈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관심이 없구나. 이렇게 해서 언제 새 세상이 올까?’(198∼199쪽)
“1학년 말부터 4학년 취업준비에 들어갈 때까지 아주 무겁게 살았어요. 심하게 말하면, 난 혁명을 믿었거든. 누구나 20대에는 사회주의자이고 30대에는…, 40대에는…, 하는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사람들 마음의 조급함은 공통인가봐요. 내일이라도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그러니까 실망하고 체념하고 돌아서버린 거죠. 지금은 냉소주의적 소시민이랄까. 중산층의 잘 자란 딸이…, 뭐 태생적 한계지. 하지만 진지하게 살려고 지금도 노력은 해요.”
치장 같기도 하고, 자기 과거를 팔아먹는 누군가가 보기 싫어서 굳이 꺼내지 않아온 말이었다(하긴 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안락한 중산층 집안에서 잘 자랐는지 충분히 목격할 수 있다). 1년 반 전 그를 처음 인터뷰하고 “황씨의 생활신조는, 조금 과장하면, 가벼움에서 시작해 즐거움으로 마침표를 찍었다”라고 <한겨레> 방송면에 쓴 적이 있다. 그는 “심문하듯 인터뷰한다”고 투덜댔지만, 결국 오보를 낸 셈이 됐다.
그는 확실히 별스런 체질이다. 다이어트, 영어와 함께 결혼을 일생의 3대 화두로 삼고 있다면서도 “그대여야만 하는 그대가 올 때까지 난 혼자일 것”이라며 적당주의 연애를 단호히 거부하고(그는 71년생이다), “지적인 앵커우먼 황정민… 저 자신도 가끔 속는답니다”라며 방송을 곧이곧대로 보지 말라고 고백한다. 월드컵 특집 방송에서 생긋생긋 웃으며 한국 축구를 찬양했지만, 전 국민이 하나가 돼 열광하는 대한민국이 징그러워 ‘월드컵을 싫어하는 11명’의 모임을 조심조심 조직했고, <힘내세요 사장님>이란 방송을 하면서 눈물겨운 사연에 함께 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런 자신을 가증스러워했다. ‘포장과 가면 사이’라는 꼭지에는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가 등장한다. “사실의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 아니라 자신을 잘 포장하는 기술,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해줄 인물들을 유혹하는 능력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는” 방송인을 소재로 한 영화다.
“방송일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이 영화를 본 느낌이 아주 달랐어요. 아주 리얼해서 어찌나 재밌던지. 카메라는 아주 차가운 사람을 따뜻하게 보이게 해주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가 방송과 연애하는 까닭은…
거품 같은 인기의 허망함도 안다. 그래도 그는 방송이 좋고 연애하듯 즐기려고 한다.
“방송일을 하는 건 언제든지 등 돌릴 준비가 돼 있는 애인을 만나는 느낌이에요. 방송 구조상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찾으니까. 사람에게 공평한 건 시간인 것 같아요. 서서히 올라왔고, 더 올라갈지, 지금이 정점인지 알 수 없으나, 내려가야 할 시간이 오면 잘 내려가길 바라요.”
그는 모자라는 1%를 채우기 위해 수중에 들어온 99%를 즐길 여유가 없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 곡절을 풀어놓은 게 <젊은날을 부탁해>의 미덕이다. 사실 우리는 그의 초조함과 결핍증에 함께 애를 태울 이유가 없다. 99%가 없어도 갖고 있는 1%를 여유롭게 향유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그를 거울삼아 얻으면 그만 아닌가.
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사진/ 방송에서 매혹적인 속삭임을 들려주는 아나운서 황정민씨. 그가 산문집 <젊은날을 부탁해>에서는 섬세하고 빈틈없는 글솜씨를 풀어놨다.

사진/ 황정민씨는 <젊은 날을 부탁해>에서 꼭지마다 영화이야기를 삽화처럼 넣었다.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