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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시 생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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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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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요즈음 ‘배아복제’에 관한 연구의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보통의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나 배아복제에서의 배아는 수정이 아닌 치환에 의해 만들어진다. 난자의 핵을 없애고 그 자리에 체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는 한 가지 점에서 보통의 배아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보통의 배아는 부모로부터 유전형질을 반반씩 물려받는다. 그러나 핵치환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유전형질이 완전히 같다. 말 그대로 복사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를 ‘복제배아’라고 부른다(‘복제배아’를 만드는 일이 ‘배아복제’다. 글자 순서에 주목하면서 생각하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복제배아가 순조롭게 성장해 출생하면 이른바 ‘복제인간’이 된다.

복제인간이 출현하고 창궐하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미 여러 책과 영화 등을 통해 그 폐해는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만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배아복제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주 초기의 배아를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장기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일부 장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 이 기술은 커다란 희망이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환자들은 그 연구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장기를 만들려면 복제배아를 파괴해야 한다. 장차 한 인간으로 출생할 가능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껏 배아와 환자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힘겨운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 소용돌이 속에 여러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생명의 정의 문제’는 가장 치열한 쟁점으로 보인다. 배아복제를 반대하는 종교계나 시민단체는 배아도 엄연한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이른 시기라도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배아복제를 촉구하는 환자와 생명공학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초기의 배아는 단순한 ‘세포덩어리’일 뿐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세포덩어리에 얽매여 지금 고통받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환자를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죄악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시기는 배아 형성 뒤 대략 14일까지를 말한다. 이때쯤에 인간의 모든 기관을 만들어낼 ‘원시선’이라는 구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이 논쟁의 귀결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정부도 배아복제 연구는 몇해 뒤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종 판단이 어떻게 나든지에 상관없이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생명의 정의 문제는 그런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초기 배아 : 환자 = 무생명 : 생명’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 그래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단적인 예로 ‘타이타닉의 선택’을 보자. 한정된 삶의 기회를 두고 어린애, 노인, 여자를 앞세웠고, 어른 남자들은 뒤로 밀려났다. 어른 남자는 생명이 아니어서 그랬는가? 생명임에도 가장 인간적인 선택에 따랐을 뿐이다. 초기 배아를 무생물로 본다면 언뜻 마음이 편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배아를 경시하게 되고 매매 대상으로 삼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배아보다 간단한 바이러스도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배아복제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배아의 생명성을 누구나 깊이 인식하는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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