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 종자에 유전자 전이 규명한 논문… 초국적 기업 입김에 <네이처> 게재 좌절
최근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가 잡지에 게재하기로 했던 논문을 갑자기 철회하고 오히려 그 논문을 반박하는 두편의 글을 싣는 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과학진흥협회의 기관지인 <사이언스>와 함께 과학저널에서는 양대 산맥을 이루는 권위 있는 <네이처>가 저자와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무시하고 돌연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논문이었기에 <네이처>가 이런 무리한 판단을 내린 것일까.
토착 옥수수도 유전자 조작 영향 받아
문제의 연구는 <한겨레21>에서도 여러 번 다룬 유전자 조작(GM) 곡물의 유전자 전이(轉移) 문제였다. 버클리 대학의 대학원생이자 환경과학자인 데이비드 퀴스트와 그의 지도교수인 멕시코인 생물학자 이그나시오 차펠라가 멕시코의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유전자가 인근 농장에서 재배되는 토착 종자에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발견은 지난해 11월 <네이처>에 보도됐다. 그리고 두 사람의 논문은 <네이처> 2002년 4월호에 게재될 예정이었다. 만약 이 논문이 과학계에서 권위 있는 저널인 <네이처>에 발표된다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유전자 조작 곡물의 유전자가 다른 식물에 전이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면서 실제로 전이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환경보호론자와 생태주의자들은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나 해충을 퇴치하기 위한 독성물질 생성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잡초와 같은 다른 식물에 전이되었을 때 슈퍼 잡초와 같은 원하지 않은 결과가 탄생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렇지만 실제로 유전자 조작 곡물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로 전이된다는 명백한 증거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퀴스트와 차펠라의 논문이 <네이처>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권위를 얻는다면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진영은 큰 힘을 얻고, 반대로 유전자 조작 곡물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다국적 곡물기업이나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판이었다. 따라서 환경보호단체 일각에서는 퀴스트의 논문이 철회된 것이 초국적 기업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환경보호론자와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퀴스트와 차펠라가 몸담고 있는 UC버클리 대학의 복잡한 사정과 결부되어 있었다. 지난 1998년 버클리 대학의 식물미생물학과는 세계적인 생명공학 기업인 ‘노바티스’와 5천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의 내용은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노바티스가 대학의 연구결과를 가장 먼저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었다. 대학·기업의 공모… 버클리 내부의 분란
당시 학생과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 이 계약을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여겨 반대하는 시위가 조직되었고,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까지 발전했다. 이 시위를 조직한 중심인물은 논문의 저자인 퀴스트와 차펠라였다. 이들의 저지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두 사람은 노바티스의 지원을 바라던 다수의 버클리 식물미생물학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왕따 신세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2년 뒤인 2000년에 버클리의 유전자 조작 옥수수밭에 환경운동가들이 침입해 옥수수 시험장을 파괴한 사건이 일어나, 당시 멕시코에 가 있던 퀴스트가 억울하게 범인의 누명을 쓰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네이처>에 퀴스트와 차펠라의 논문 대신 실린 반박글의 저자들이 모두 같은 버클리 대학의 식물미생물학과 교수들이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한 사람은 노바티스와 버클리의 계약을 적극 지지한 인물이었다. 또한 <네이처>에 문제의 논문이 실릴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인터넷 생명공학포럼에서 격렬하게 논문 철회를 주장했던 익명의 비판글 중 하나는 환경운동단체의 추적 결과 다국적 곡물기업인 ‘몬산토’와 관련 있는 한 선전회사에서 발송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영국의 또 다른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지난 6월 이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과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동료심사(peer review) 시스템과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우려스러운 문제가 발생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퀴스트와 차펠라의 논문이 심사위원 3명의 심사를 거쳤고, 심사위원들이 논문 게재를 승인한 상태에서 돌연 현 편집장인 필립 캠벨이 게재 결정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캠벨은 “현재 이용 가능한 증거들이 원논문의 발표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치 못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퀴스트와 차펠라는 첫째, 이미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쳤다는 점, 둘째 네이처에 실린 두개의 비판글도 자신들의 주된 발견에 대해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문제제기였다는 점, 셋째 비판자들이 과거 노바티스 계약 사태에서 갈등을 빚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들어 <네이처>의 결정이 온당치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연구비 지원 놓고 동료심사도 위기
이번 사태가 버클리의 과학자 사회, 저명한 과학저널, 그리고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 사이에서 빚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불협화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이처>나 편집장 캠벨이 생명공학 기업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네이처>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 위촉한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번복하는 무리수를 두었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과학자 사회는 프랜시스 베이컨 이래 근대과학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공동 연구와 동료심사의 전통이 연구비 지원을 좌지우지하는 초국적 기업의 입김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사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머튼은 1930년대에 과학자 사회를 떠받치는 네 가지 규범으로 “보편주의, 공유주의, 불편부당성(사익에 휘둘리지 않음), 조직된 회의주의(과학자 사회 내의 동료심사)”를 꼽았다. 70년이 지난 오늘날 이 규범들은 다시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토착 식물에도 영향을 끼친다. 몬산토사가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 조작 콩을 재배하는 모습.
그동안 유전자 조작 곡물의 유전자가 다른 식물에 전이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면서 실제로 전이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환경보호론자와 생태주의자들은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나 해충을 퇴치하기 위한 독성물질 생성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잡초와 같은 다른 식물에 전이되었을 때 슈퍼 잡초와 같은 원하지 않은 결과가 탄생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렇지만 실제로 유전자 조작 곡물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로 전이된다는 명백한 증거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퀴스트와 차펠라의 논문이 <네이처>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권위를 얻는다면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진영은 큰 힘을 얻고, 반대로 유전자 조작 곡물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다국적 곡물기업이나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판이었다. 따라서 환경보호단체 일각에서는 퀴스트의 논문이 철회된 것이 초국적 기업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환경보호론자와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퀴스트와 차펠라가 몸담고 있는 UC버클리 대학의 복잡한 사정과 결부되어 있었다. 지난 1998년 버클리 대학의 식물미생물학과는 세계적인 생명공학 기업인 ‘노바티스’와 5천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의 내용은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노바티스가 대학의 연구결과를 가장 먼저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었다. 대학·기업의 공모… 버클리 내부의 분란

사진/ 환경단체 회원들이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국내 수입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