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마초에서 아빠로!

424
등록 : 2002-08-28 00:00 수정 :

크게 작게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시대 아빠들의 육아보고서 <아빠 뭐 해?>

사진/ "아이를 키우며 아빠도 커간다." 지난 8월21일 열린 <아빠 뭐 해?>의 출판기념회에 모인 필자들과 자녀들. (이용호 기자)
“집에 들어올 때, 현관에서 몇초 인사하고 방으로 휙 들어가잖아. 일이 많아 힘든 것을 알지만, 그러면 아기 정서에 안 좋겠지.” 아내로부터 내 문제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휴일 오후에 일어나 거실에 드러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일요일 내내 잠을 청하는 수많은 아빠들. 어느새 그 모습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안이영로, ‘무거운 날개를 달다’)

“당당하게 육아를 분담하는, 자상하면서도 세련된 남편상”을 꿈꾸다 아이가 태어난 뒤 “다른 남편상과 다를 게 없는” 스스로를 깨닫고 자괴감에 빠지는 ‘아빠’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더 많은 아빠들은 이런 문제로 당황한다. “딩동 하고 초인종을 누르자 콩콩콩 달려오는 아이들 소리, 그리고 문을 열어주는 아내의 환한 얼굴. 달려드는 아이들을 번쩍 안아 잠시 놀아준 후 아내가 받아놓은 따뜻한 목욕물에 온몸을 담근다”(윤용인, ‘나의 마초기질 탈출기’)는 총각시절 그렸던 결혼에 대한 꿈이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봉두난발에 찌든 표정의 아내 얼굴, 악다구니치고 떼를 쓰면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아이, 포탄 맞은 듯 난장판이 된 채로 퇴근한 자신을 맞는 집안 풍경으로 인해 산산조각났음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

사진/ <아빠 뭐 해?> (도서출판 이프 펴냄. 9천원)
육아문제로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했었거나 지금도 고민 중인 우리 시대 아빠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나섰다. 최근 출간된 <아빠 뭐 해?>(도서출판 이프 펴냄)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초보 또는 중견 아빠들이 써내려간 육아보고서다.

아빠 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지난 1월 같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육아 이야기를 모은 <엄마 없어서 슬펐니?>의 속편격이다. 전편에서 “엄마들이 그렇게 종종걸음치고, 놀이방과 탁아방을 찾아다니고, 맡긴 아이를 찾으러 가기 위해 일터에서 마음 졸이고 눈치보고, 급식당번과 청소당번을 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다니고 있는 동안 아빠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아빠들의 답변서이기도 하다. 산통하는 아내 옆에서 열살된 아이처럼 두려워하고 핏덩이 같은 아이 앞에서 ‘아빠’가 됐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아빠는 아빠 집으로 가버려”라는 아이의 말에 상처입는 이들의 좌충우돌 경험담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다. 점점 더 많은 아빠들에게 이건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달짜리와 생후 두달짜리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 생활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옷 잘 차려입고 우아하게 아이 안고 있는 엄마는 현실에 없다. 손에는 물 마를 때가 없고 씻을 시간이 없어 머리와 얼굴은 엉망이다. 남자들은 아이 문제로 아내와 싸울 때 ‘집에서 놀면서 애도 제대로 못 보냐’고 호통친다. 놀면서 애를 봐? 한번 보시라. 감히 말하건대 아내들이 존경스러워질 거다”(권복기, ‘기저귀 빨며 카타르시스를’) 비교적 진보적인 분위기의 직장에서조차 온갖 눈치를 보며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겨우 한달 얻어내 전업주부를 해본 필자의 소감이다. 이처럼 이 글의 필자들은 여전히 “집에서 놀면서 애도 제대로 못 보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주류(?) 아빠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신종(新種) 아빠로서의 자부심보다는 고민과 갈등이 훨씬 깊다.

“나는 아버지와 다른 아빠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자상하고 친근하며 믿음직스런 아빠’는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5개월된 솔이를 방안에 혼자 방치해 두기도 했고, 내 분을 못 이겨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으며,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토라지기도 했다. 잔소리가 늘어만 가고, 손이 먼저 날아가는 때도 많았으며, 매를 드는 날도 잦아졌다. 쩨쩨하고 초라하며 의심많은 아빠가 되어, 내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분명 난 ‘다른 아빠’가 된 것이다.”(이강재, ‘개체발생은 개체발생을 되풀이한다’)

많은 남성들이 아내와 다른 가족에게 슬쩍, 또는 노골적으로 떠넘기는 육아에 직접 뛰어든다는 것은 기실 남는 장사가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감에도 아이들은 고마워할 줄 모르며, 아내와의 신경전도 가부장적 체제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줄지 않는다. 하물며 주변 사람들은 존경어린 시선 아래 염려와 비웃음을 깔고 자신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이들이 육아라는 ‘사서 고생’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육아를 하지 않는 아빠는 한 집에 같이 사는 남자일 뿐 아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달갑지 않을망정 가족끼리 부대낀다는 것, 딸년들이 원수처럼 여겨지는 순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충분치 못하나마 겪어봤다. 내가 군소리없이, 제법 능숙하게 애들 수발을 분담해온 건 오로지, 걔들은 대책없는 미서성년이라는, 의무감에서다. 제 새끼 사랑한다는, 마누라는 버려도 새끼(특히 수놈)는 못 버린다는 세상 많은 남자들은, 막상 나처럼 마지못해 한다는 사람보다도 유능하고 능숙하지 않아 보인다”(김세중, ‘나, 아빠 집에도 놀러갈래’)

아빠로 다시 태어나려는 남성이라면…

“집안일 하는 남자는 명이 짧다”는 핀잔에도 꿋꿋하게 전업주부로 아들 쌍둥이를 키우는 이에서 결국 공동육아를 포기하고 두 몫의 돈을 버는 것으로 합의본 이까지 참여필자들의 육아분담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목소리로 내리는 결론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 필자는 내 아이로 인해 세상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하며, 다른 필자는 아이가 바쁜 생활과 성공에 대한 열망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아이 키우기는 단순히 먹이를 주고 추위를 막아주며 교육비를 부담하는 기능적인 행동 이상의 것이다.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라마즈 호흡법이나 아기 응급조치법을 예습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로 인해 단맛, 쓴맛, 신맛 다 본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아깝지 않은 투자가 될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