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린다 차다 감독의 <슈팅 라이크 베컴>… 정치적 올바름에 유쾌함이 녹아있다
<슈팅 라이크 베컴>(8월30일 개봉)은 우리로 치면 <집으로…> 같은 현상을 영국에서 일으켰나 보다. 이정향 감독처럼 거린다 차다라는 여성 감독(그것도 아시아계)이 만들었고, <집으로…>의 못된 소년처럼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대책 없이 밖으로 나도는 소녀가 등장하는 저예산의 ‘천사표’ 영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뤘다. 지난 4월 영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2주 연속 차지하며 제작비의 4배에 가까운 175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또 할리우드의 20세기폭스사가 재빨리 북미·남미 지역의 판권을 사들였고, 국내 수입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정도로 해외 각국에서 의욕적으로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성편견에 한방 날리는 소녀의 당돌함
스타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주인공인 인도계 소녀 제스(파민더 나그라)가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영화 마지막에는 데이비드 베컴 부부가 대역이긴 해도 잠깐 등장한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베컴을 앞세운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택한 것도 축구 열기와 무관해보이진 않는다.
베컴이 상징하는 축구의 멋들어진 몸의 묘기가 이 영화에서도 이따금 등장한다. 남자축구가 아니라 여자축구라서 박력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공을 몸에 달고 다니며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날리는 장면들은 꽤 볼 만하다.
그런데 이 축구영화는 정치적으로 너무 올바르다. ‘여자가 남세스럽게 어디 축구를…’이라고 보는 성차별적 편견을 향해 두툼한 펀치를 날리려는 목적말고도 인도·영국·아일랜드 사이의 문화 충돌, 이민가족의 부모세대가 갖는 자기 보호적인 배타성과 이미 서구적 개방성에 빠져 있는 자녀와의 세대 갈등, 성 정체성을 둘러싼 오해와 농담, 종교와 전통에 대한 강박증 등 너무 많은 ‘민감한 문제’들을 또박또박 짚고 넘어간다. 정치적 올바름에 강박들리면 영화는 재미가 없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소박한 유쾌함으로 이런 취약점을 슬그머니 피해간다.
제스는 언니 결혼식에 신어야 할 구두 살 돈으로 거리낌없이 축구화를 살 정도로 축구에 열광적이다. 공원 잔디밭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근육질의 남자들과 개인기 싸움을 벌여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갖췄다. 영국 소녀 줄스(키이라 나이틀리) 역시 축구광이다. “스파이스 걸스 가운데 왜 선머슴 같은 멤버만 애인이 없는지 아느냐”며 ‘뽕 브래지어’를 적극 권하는 줄스의 엄마가 스포츠 브래지어에만 관심을 보이는 그를 이해하기란 아무래도 곤란하다. 곧 축구 선수로 뛰기 위해 제스와 줄스의 연대가 시작되고 줄스 엄마는 이들의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소동까지 벌인다. 정작 이들은 이웃집 청년 같은 정겨움과 상큼한 매력에 넘치는 축구팀 코치 조(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를 두고 삼각관계를 벌이는데도 말이다. 조 역의 마이어스는 <벨벳 골드마인>에서 중성적 이미지의 로커로 열연해 제법 단단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도 부모의 벽은 높기만 하다
최대 걸림돌은 제스의 부모다. 이들은 자기 딸이 곱게 요리나 배우다가 시집가는 게 아니라 선머슴처럼 축구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인도인이 아닌 아일랜드 청년과 연애한다는 건 그들의 이민 사회에서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부모라는 장벽이 사회의 편견보다 크게 다가오는 대목은 또 다른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한다. 권투가 아닌 발레를 꿈꾸는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파업으로 궁지에 처한 광산 노동자의 신분과 묘하게 겹쳐 있었다. 인도인이라는 주변부 정체성을 배타성으로 이겨내려는 제스의 부모가 새로워지는 모습은 빌리의 아버지가 변해가는 장면만큼 정교하지 못하고, 비약적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슈팅 라이크 베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