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낭 주기 조절하는 분자적 치료술 연구… 관련 단백질 많아 아직은 초기 단계
30대 중반의 회사원 김아무개씨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미용실에 갔다. 대뜸 미용사에게 ‘윤도현 스타일’을 주문했다. 사실 회사원으로서 머리를 박박 민다는 것은 거의 ‘퇴출’을 각오한 모험이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세면대에 수북이 쌓이는 머리카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마다 듣는 “소갈머리가 없다”는 말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갈수록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박박머리를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용사는 “윤도현 스타일은 불가능하고 출소자 스타일은 가능할 것”이라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결국 김씨는 탈모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당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휴지기는 짧게, 성장기는 길게
신생아는 유전적으로 신체에 결정된 대략 500만∼600만개에 이르는 모낭을 가지고 태어난다. 신체에서 모낭이 분포하지 않는 곳은 손바닥과 발바닥뿐이다. 나머지는 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세한 털이 자리잡고 있다. 모낭은 피부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모간을 생성하는 작은 전구 형태의 조직으로 모발 생성을 주도한다. 만일 모낭이 생성된다면 탈모로 인한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낭은 모발 생성을 개시하고 중단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눈으로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생산한다. 정상적 두피에 있는 모낭은 평생 머리카락을 9m 이상 자라게 한다. 횡단면이 둥근 모낭에서는 직모가 편평한 모낭에서는 곱슬머리가 자란다.
최근 모낭의 일생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성과가 잇달으면서 새로운 차원의 탈모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모발의 발달을 조절하는 분자들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만일 모발 관련 분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특정 모발 상태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내고, 결함이 있는 조절 시스템을 복원하는 방법도 터득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염색체 한쪽에서만 유전자를 물려받아도 대머리를 피하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손실된 모발 생성 세포를 보충하고 피부 표피를 계속 활성화하는 줄기세포를 밝히면 모발세포를 통해 신경이나 근육 조직을 만들고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등을 치료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모낭은 퇴화와 휴지기, 성장기를 반복하면서 머리카락을 생성한다(아래 그림 참조). 임신 기간에 어린 배아를 구성하는 외배엽과 중배엽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모낭이 발달한다. 외배엽의 세포들이 증식되면서 ‘모아’라는 조직을 만들고, 모아는 중배엽 세포들이 뭉쳐서 모낭의 ‘모유두’를 형성하도록 한다. 모유두가 신호를 내보내 기질세포가 자라면서 머리카락의 주성분인 섬유성 케라틴 단백질의 모세포로 바꾸도록 한다. 모유두가 짧아지면 모낭이 휴지기로 들어가면서 모발 생성이 정지된다. 휴지기는 사람의 두피에서 3개월가량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지기를 보낸 모낭은 두피 안에서 약 2개월간 2.5cm 정도의 머리카락을 만들어내고 대개 6∼8년 정도 유지된다.
그렇다면 건강한 모발이 탈모에 이르는 분자적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모낭과 관련된 세포가 분열되지 않아 모낭이 도태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현상은 모낭이 사라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것은 성장기의 모낭보다 비성장기의 모낭이 많아진 때문이다. 모발 연구가들은 비성장기의 모낭이 많아지는 것은 모유두의 신호 전달에 문제가 있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여긴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대학 엘라인 훅스 박사팀은 모유두의 신호가 Wnt 단백질 같은 신호 분자들을 활성화해 명령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하지만 모낭 발달의 주요 인자로 지목된 Wnt 단백질을 주입받은 쥐의 경우 털이 수북해졌지만 두피에 종양이 생기고 말았다. 암에 걸리면서까지 대머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낭의 발달과 주기를 조절하면 탈모를 치료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분자의 과도한 신호는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휴지기의 모낭을 자극해 모발이 생성하면서 기저세포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Wnt 단백질만 해도 치료법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정제된 세포 안에서 활성화된 유전자들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전자의 활동유형에 따라 손상된 조절경로의 명령을 복구하고, 두피의 거부반응이 없는 상태에서 분자적 수술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연구는 초기 단계라 모발 성장을 직접 조절하는 물질들과 상호작용하는 약들은 동물실험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분자세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아 원하는 목표물만을 공략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탈모 치료제는 개선 효과 미미
지금까지 나온 탈모 치료제는 모낭을 크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간단하지만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승인한 최초의 모발 성장 촉진제는 미녹시딜(Minoxidil)이다. 남녀 모두 사용하는 국소용 치료제인 미녹시딜은 애초 고혈압 치료제로 쓰였는데, 부작용으로 머리가 나면서 탈모 치료제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낭에 직접 작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두피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켜 모발 성장을 조절하는 물질의 농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의 탈모 치료제는 프로페시아(Propecia)로 모유두에 작용해 모낭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DHT 호르몬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한다. 프로페시아는 탈모가 시작된 초기 두정부에서 효능을 보이지만 탈모가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도 탈모를 감추기 위해 앞으로 머리를 빗어내렸다. 그만큼 탈모증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아무리 모낭단위 이식술을 받더라도 분자의 작용까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머리는 외모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반짝이는 정수리가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탈모에 영향을 끼치는 남성 호르몬 안드로겐이 많아지면 심장질환을 촉진하는 혈액응고가 쉽게 일어나는 탓이다. 대머리가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다. 대머리라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절히 조절하고 흡연을 피하고 올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5년 이내 분자를 조절해 탈모를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한 묶음의 모낭을 이식 받는 수술로 대머리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대머리 남성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고 한다.
최근 모낭의 일생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성과가 잇달으면서 새로운 차원의 탈모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모발의 발달을 조절하는 분자들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만일 모발 관련 분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특정 모발 상태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내고, 결함이 있는 조절 시스템을 복원하는 방법도 터득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염색체 한쪽에서만 유전자를 물려받아도 대머리를 피하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손실된 모발 생성 세포를 보충하고 피부 표피를 계속 활성화하는 줄기세포를 밝히면 모발세포를 통해 신경이나 근육 조직을 만들고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등을 치료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