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지혜가 만난 <오아시스>의 문소리… 꾸밈없는 매력을 풀어놓은 유쾌한 수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박하사탕> 촬영을 앞두고였다. 나도 그 영화에 출연할 뻔(?)했기 때문에 배우들 상견례하는 자리에 가게 됐다. 상견례 자리라곤 하지만 대부분 서로들 다 아는 사이들이었기에 오랜만에 만나 수다떠는 분위기였는데 모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극중 영호의 첫사랑 역을 할 여배우라고 소개받지 않았으면 나는 그녀가 배우는커녕 그 팀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을 거다. 스태프로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그저 영화현장 구경나온, 너무나 평범한 학생 같았기 때문이다. 한데 그녀는 ‘생짜’치곤 아주 씩씩했고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농담까지 툭툭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그게 눈에 거슬린다거나 건방지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참 밝고 순수한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배우’가 되리라고는 그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그랬다.
배우가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그녀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건 <오아시스> 촬영을 앞두고였다.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이창동 감독님이 전화를 하셨다. 문소리를 도와 달라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연기연습을 도무지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고 그녀의 “마음을 열어” 달라는 거다.
‘제기랄…, 난 왜 배우 섭외는 안 오고 순 이런 거만 들어오나’ 투덜대며 문소리를 만나러 갔다. 처음 봤을 때처럼 털털하게 날 대하긴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매우 예민해 있었다. 난 그녀의 영혼 속을 조심스레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참 똑똑한 배우였다. 그리고 그 똑똑함은 그녀의 장점인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돼 있었다. 그녀가 힘들어한 건 온몸이 틀어진 모습을 보이기가 여배우로서 ‘쪽팔려서’가 아니라 이런 제대로 된 작품에 매력 있는 캐릭터를 하기엔 자신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겨웠던 거였다. 난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좋아해버렸다. 얘길 해보면 해볼수록 불과 몇년 전의 내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진심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고 그녀는 스스로 옥죄던 쓸데없는 자기 검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중증의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 ‘공주’의 연기를 한 데모 테이프를 갖고 감독님을 찾아가서 그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겨우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를 세 번째 본 건 기술시사 때 그녀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였다. 영화 속 두 주인공, 종두와 공주는 속된 말로 무지 ‘꼬진’ 인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장애우를 흉내내야 하는 신체연기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진짜 연기를 놓치고 가면 어쩌나 했던 건 예상대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그걸 용서하고 넘어갈 감독이 아니었다. 영화가 좋은 거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난 문소리의 연기에 가슴이 뿌듯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네 번째 만남은 엉뚱하게도 내가 그녀를 인터뷰해야 하는 자리에서였다. 배우가 배우를 인터뷰한다는 기획이 맘에 들었다. 원래 가끔 그렇게 만나는 친구들인 것처럼 기자와 두 여배우는 그렇게 인사동 밥집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언제나 inter-view-ee 입장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inter-view-er로서 갖는 자리랍시고 ‘기자수첩’(?)까지 챙겨들고 갔지만 홍보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똑같은 얘길 하고 다닐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져서 시시껄렁한 ‘호구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린 그런 거 없이도 내가 그녀를 ‘inner-view’하기에 충분했다.
뇌성마비 연기는 연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씩씩했지만 내가 십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매스컴을 상대하면서 적잖이 상처를 받은 듯했다. ‘언니배우’인 난 상처받지 않고 그들 속에 섞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녀는 <박하사탕>의 문순임보다 훨씬 자기와 비슷한 내면을 가진 한공주를 연기하면서 부쩍 성숙해 있었다(극중 캐릭터인 공주는 장애인들은 다 천사표일 거라고 막연히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재치 있고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성욕에 대해서도 당당한 똑똑한 여자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연기를 하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자기와 다른 성격을 연기했던 <박하사탕> 때보다 맘은 편했다고 한다.
연기를 위해 만났다가 친구가 됐다는 장애우 ‘언니’들이 영화를 봤다기에 그들의 소감이 궁금했다. 조심스레 건넨 그녀의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따위가 아닌 “현실적이다”였다고 한다. 그녀의 볼이 기분 좋은 흥분으로 금세 발그스레해진다. 그들의 소감이 마음의 짐을 한껏 덜어냈다고 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판타지 장면들이 인상적이라면서 자기네들이 그렇게 지하철 같은 데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상상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더라는 그녀의 말에 우리 모두 잠시 숙연해진다.
<오아시스> 얘기로 시작한 우리의 수다는 술 한잔이 들어가면서 남자배우는 못생기고 나이 많아도 연기만 잘하면 좋은 기회들을 많이 만나는데 여배우들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성토대회를 열기도 했다. 하나 그런 건 나나 그녀나 이미 ‘현실을 읽는 혜안’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저 킬킬대고 만다. 관객이 원하지 않는다는 덴 할말이 없지 않은가.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인터뷰 자린데 ‘촌스런’ 질문을 하나 정도는 해야겠기에 연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똑같은 질문에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피식 웃는다. 내 이유는 상당히 사회적인 데 반해 그녀의 이유는 사뭇 개인적이다. 훨씬 솔직한 대답이지 않은가.
상처받지 않는 배우로 남아다오
그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골반이 틀어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연기보단 잘하는 연기가 더 중요하듯이 프로 세계에서 과정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장애인 연기를 하다 정말 장애인이 됐다 해도 연기가 그럴 듯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한데 다행히도 그녀는 공주 연기를 멋지게 해냈다. 그녀의 그 결과에 나도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기쁘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난 그녀를 위해 그리고 날 위해 잠시 기도를 해본다. 부디 앞으로도 이창동 감독처럼 배우를 괴롭혀도 좋으니 한 장면 한 장면을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감독만 만나기를…. 그리고 더 이상 그녀가 자본의 논리 안에서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글 오지혜/ 배우 teatro@hanmail.net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사진/ 오지혜(왼쪽)씨와 문소리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 선후배 사이로 <오아시스>의 한공주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기랄…, 난 왜 배우 섭외는 안 오고 순 이런 거만 들어오나’ 투덜대며 문소리를 만나러 갔다. 처음 봤을 때처럼 털털하게 날 대하긴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매우 예민해 있었다. 난 그녀의 영혼 속을 조심스레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참 똑똑한 배우였다. 그리고 그 똑똑함은 그녀의 장점인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돼 있었다. 그녀가 힘들어한 건 온몸이 틀어진 모습을 보이기가 여배우로서 ‘쪽팔려서’가 아니라 이런 제대로 된 작품에 매력 있는 캐릭터를 하기엔 자신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겨웠던 거였다. 난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좋아해버렸다. 얘길 해보면 해볼수록 불과 몇년 전의 내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진심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고 그녀는 스스로 옥죄던 쓸데없는 자기 검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중증의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 ‘공주’의 연기를 한 데모 테이프를 갖고 감독님을 찾아가서 그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겨우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를 세 번째 본 건 기술시사 때 그녀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였다. 영화 속 두 주인공, 종두와 공주는 속된 말로 무지 ‘꼬진’ 인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장애우를 흉내내야 하는 신체연기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진짜 연기를 놓치고 가면 어쩌나 했던 건 예상대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그걸 용서하고 넘어갈 감독이 아니었다. 영화가 좋은 거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난 문소리의 연기에 가슴이 뿌듯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