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탐정으로 꼽히는 브라운 신부 입국… 판타지 문학 고전들도 잇따라 출간
셜록 홈스, 아르센 뤼팽, 에르퀼 푸아로. 올 초부터 서점가를 달군 인기 주인공들이다. 추리소설이나 판타지, 공상과학(SF) 소설 등의 지적 오락물 시장이 유난히 척박했던 우리 출판가의 새로운 경향이다. <셜록 홈즈 전집> <아르센 뤼팽 전집>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등 추리소설의 고전물 완역 출판에 가장 적극적인 황금가지에서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일곱권을 내놓은 <셜록 홈즈 전집>은 6개월 동안 55만부가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아르센 뤼팽 전집은 출판사 네곳에서 경쟁적으로 출간하거나 출간을 예정하고 있다.그러나 고전 한두 종류에 몰리는 출판 경향은 새로운 작품 소개보다 안전운행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홈스·루팽 등과 달리 상상력으로 추리
최근 북하우스에서 출간한 브라운 신부 전집(전5권)은 추리소설의 고전반열에 올라 있으면서도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개가 덜 된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브라운 신부> <브라운 신부의 모험> 등 네권이 출간됐지만 모두 아동용 축약본으로 완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리사가 엘러리 퀸이 3대 탐정으로 꼽았지만,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주인공)보다 터무니없는 푸대접을 받아온 브라운 신부가 이제서야 한국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된 셈이다.
브라운 신부는 홈스나 뤼팽, 푸아로 같은 추리소설의 주인공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탐정이다. 일단 지은이 G.K.체스터튼이 글에서 묘사하는 브라운 신부의 행색부터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 작달막한 신부는 전형적인 동부 촌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넙적하니 둔해보였으며, 눈은 북해(北海)만큼이나 공허했다.”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먼 외모에 자신의 덩치보다 커보이는 낡은 우산을 늘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브라운 신부는 사건 해결의 중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잘난 척하는 형사나 흥분한 사람들 주변에서 더러는 사소한 심부름까지 해가며 조용히 있다가 결말에서야 자물쇠를 굳게 채운 사건에 열쇠를 끼워 맞춘다. <브라운 신부 전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탐정의 행동과 사고의 동선을 따라가는 일반적 추리소설과 다른 독서 체험을 제공한다. 체스터튼이 뛰어나게 묘사하는 19세기 영국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브라운 신부가 빙긋이 웃으며 꼬일 때로 꼬인 문제를 술술 풀어낸다. 그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과학적인 수사관인 홈스와 다르다. 경험이나 과학적 논리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그가 문제를 푸는 과정은 상식이나 통념을 깨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권의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지은이는 언어가 통용되는 상식의 틀을 뒤집음으로써 관습적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범인의 실체를 끌어낸다. <브라운 신부 전집>이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친구인 존 오커너 신부를 모델로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체스터튼은 대학에서 미술과 문학을 공부했다. 미술평론가로 글쓰기를 시작한 체스터튼은 잡지에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연재하며 큰 인기를 모았고, 뒷날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가뿐 아니라 헤밍웨이·보르헤스·마르케스 같은 ‘진지한’소설가들까지 체스터튼으로부터 영향받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황금가지에서 최근 내놓은 <환상문학전집>은 최근 인기를 모으는 판타지 문학의 고전들을 번역한 시리즈다. 판타지 소설 하면 영화로 인기를 모은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처럼 마법사와 요정·기사·용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환상문학전집이 다루는 ‘판타지’ 범위는 더 다양하고 리얼리티의 반대말로서 판타지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의 환상소설들이 그리는 판타지는 마법구슬로 마법사의 사악한 간계를 무찌르는 달콤한 꿈이 아니라 현실의 허구성이나 끔찍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1권으로 출간된 <악마의 묘약>은 독일작가 E.T.A 호프만이 쓴 일종의 괴기소설로 1815년 발표된 작품이다. 저주받은 가문에서 태어난 메다르두스라는 수도사가 세속으로 나와 겪는 파괴적 욕망과 광기, 자아 분열을 통해 죄와 숙명, 정욕과 경건, 자아와 세계 인식 등 신학적·철학적 문제들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우스꽝스런 에피소드, 무시무시한 사건의 전개 등으로 포장돼 대중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고딕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영국작가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트성>은 거대한 투구가 어린 소년을 짓이겨 죽이는 충격적인 첫 장면부터 신비한 사건들, 음모와 배신, 희생의 드라마를 쉴새없이 펼쳐보인다.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등으로 현대인들에게 알려진 애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청년 핌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험을 하면서 겪는 기괴하고 끔찍한 사건을 통해 작가는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으로의 항해를 통해 백인 미국인들이 지향하는 순수하고 완벽한 유토피아의 극에 숨어 있는 어두운 악몽을 탐색하고 있다”(해설, 276쪽). 1985년 발표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21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전체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수태하도록 강요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질병 등에 병드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끔찍함을 드러내는 판타지 속으로 ‘환상’이란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판타스티쿠스’에서 기원했다. 본연의 뜻에 따를 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부터 시작해 카프카의 <변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이르기까지 본격소설의 상당수도 환상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에 근거한 문학작품은 근본적으로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환상소설은 특정한 하류 장르로 구분되면서 오랫동안 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나 단순한 오락거리로 치부돼왔다. <환상문학전집>은 환상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본연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지금까지 일곱 작품, 총 11권이 출간됐다. 앞으로 환상소설 전문작가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발자크·멜빌 등 ‘환상’과 무관해보이는 거장들이 쓴 ‘환상의 세계’도 펼쳐보일 예정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국내 출판계에 추리·환상문학 완역본 출간 바람이 불고 있다. 북 하우스의 <브라운 신부 전집)과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
브라운 신부는 홈스나 뤼팽, 푸아로 같은 추리소설의 주인공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탐정이다. 일단 지은이 G.K.체스터튼이 글에서 묘사하는 브라운 신부의 행색부터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 작달막한 신부는 전형적인 동부 촌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넙적하니 둔해보였으며, 눈은 북해(北海)만큼이나 공허했다.”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먼 외모에 자신의 덩치보다 커보이는 낡은 우산을 늘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브라운 신부는 사건 해결의 중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잘난 척하는 형사나 흥분한 사람들 주변에서 더러는 사소한 심부름까지 해가며 조용히 있다가 결말에서야 자물쇠를 굳게 채운 사건에 열쇠를 끼워 맞춘다. <브라운 신부 전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탐정의 행동과 사고의 동선을 따라가는 일반적 추리소설과 다른 독서 체험을 제공한다. 체스터튼이 뛰어나게 묘사하는 19세기 영국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브라운 신부가 빙긋이 웃으며 꼬일 때로 꼬인 문제를 술술 풀어낸다. 그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과학적인 수사관인 홈스와 다르다. 경험이나 과학적 논리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을 중요시하는 그가 문제를 푸는 과정은 상식이나 통념을 깨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권의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지은이는 언어가 통용되는 상식의 틀을 뒤집음으로써 관습적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범인의 실체를 끌어낸다. <브라운 신부 전집>이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친구인 존 오커너 신부를 모델로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체스터튼은 대학에서 미술과 문학을 공부했다. 미술평론가로 글쓰기를 시작한 체스터튼은 잡지에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연재하며 큰 인기를 모았고, 뒷날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가뿐 아니라 헤밍웨이·보르헤스·마르케스 같은 ‘진지한’소설가들까지 체스터튼으로부터 영향받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황금가지에서 최근 내놓은 <환상문학전집>은 최근 인기를 모으는 판타지 문학의 고전들을 번역한 시리즈다. 판타지 소설 하면 영화로 인기를 모은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처럼 마법사와 요정·기사·용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환상문학전집이 다루는 ‘판타지’ 범위는 더 다양하고 리얼리티의 반대말로서 판타지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의 환상소설들이 그리는 판타지는 마법구슬로 마법사의 사악한 간계를 무찌르는 달콤한 꿈이 아니라 현실의 허구성이나 끔찍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1권으로 출간된 <악마의 묘약>은 독일작가 E.T.A 호프만이 쓴 일종의 괴기소설로 1815년 발표된 작품이다. 저주받은 가문에서 태어난 메다르두스라는 수도사가 세속으로 나와 겪는 파괴적 욕망과 광기, 자아 분열을 통해 죄와 숙명, 정욕과 경건, 자아와 세계 인식 등 신학적·철학적 문제들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우스꽝스런 에피소드, 무시무시한 사건의 전개 등으로 포장돼 대중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고딕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영국작가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트성>은 거대한 투구가 어린 소년을 짓이겨 죽이는 충격적인 첫 장면부터 신비한 사건들, 음모와 배신, 희생의 드라마를 쉴새없이 펼쳐보인다.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등으로 현대인들에게 알려진 애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포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청년 핌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험을 하면서 겪는 기괴하고 끔찍한 사건을 통해 작가는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으로의 항해를 통해 백인 미국인들이 지향하는 순수하고 완벽한 유토피아의 극에 숨어 있는 어두운 악몽을 탐색하고 있다”(해설, 276쪽). 1985년 발표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21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전체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수태하도록 강요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질병 등에 병드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끔찍함을 드러내는 판타지 속으로 ‘환상’이란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판타스티쿠스’에서 기원했다. 본연의 뜻에 따를 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부터 시작해 카프카의 <변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이르기까지 본격소설의 상당수도 환상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에 근거한 문학작품은 근본적으로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환상소설은 특정한 하류 장르로 구분되면서 오랫동안 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나 단순한 오락거리로 치부돼왔다. <환상문학전집>은 환상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본연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지금까지 일곱 작품, 총 11권이 출간됐다. 앞으로 환상소설 전문작가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발자크·멜빌 등 ‘환상’과 무관해보이는 거장들이 쓴 ‘환상의 세계’도 펼쳐보일 예정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