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문화가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 가운데 우리의 음식문화도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보신탕은 예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을 거치면서 세계인의 평가는 긍정적인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듯하다. 그 밖의 다른 우리 음식에 대해서는 거의 찬사 일색이었다. 김치나 불고기처럼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것은 물론, 푸짐한 한식, 상추쌈, 김밥, 비빔밥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큰 호평을 받았다.
그 가운데 비빔밥은 이미 몇 차례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마이클 잭슨이 전주를 방문했다. 거기서 ‘전주비빔밥’을 맛본 그는 서울의 호텔에 머물 때도 여러 차례 특별주문을 했다. ‘마이클 잭슨 비빔밥’은 이를 계기로 탄생했다. 98년에는 국제기내식협회에서 최우수 기내식으로 뽑혀 성가를 높였다. 최근에는 아예 패스트푸드 형태로 개발해 일본과 미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이제 월드컵이 끝난 뒤, 때마침 다시 일어난 채식주의의 열기에 힘입어 더욱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처럼 비빔밥이 뜻밖의 주목을 받아 내심 반갑기도 하다. 벡터의 개념을 얘기할 때 드는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벡터는 각각의 성분으로 분해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영화 제목을 보자. 비행기가 북북서로 향하려면 북쪽 성분을 주로 하고 서쪽 성분을 조금 가미하면 된다. 이처럼 벡터를 만드는 데는 ‘성분’과 ‘양’이 핵심이다. 비빔밥에 비유하면 ‘벡터의 성분과 양’은 ‘비빔밥의 재료와 양’에 해당한다. 고추장은 비빔밥에 있어서 약방의 감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 비빔밥’에는 조금만 넣는다. 이렇게 각각의 성분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여러 비빔밥을 만들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눈·코·귀·팔·다리 등이 사람의 구성요소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란 벡터의 성분들이다. 그런데 눈은 둘, 코는 하나, …와 같이, 각 성분의 양이 제대로 갖춰져야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비빔밥의 경우 넓은 다양성은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최소한의 기본요건은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하겠다.
지금껏 비행기의 진로·비빔밥·사람이라는 3가지 예를 들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세상 만물은 사실상 모두 벡터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곧 알게 된다. 수학적 개념이라서 딱딱하고 추상적이고 심지어 공허하게 보이기까지 한 벡터가 이처럼 폭넓고 현실적이란 점이 자못 신기하다. 그러나 그 실질성은 이런 식의 단순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현대물리학의 정수인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물질을 ‘상태벡터’라는 수학적 도구로 나타낸다. 나아가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는 우주 전체를 하나의 상태벡터로 표현하는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맛이 뛰어남에도 ‘손맛’에 크게 좌우되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그리하여 쉽사리 표준화되지 못했다. 이 허점 때문에 얼마 전에는 김치의 국제적 표준화를 자칫 일본에 빼앗길 뻔했다. 다행히 김치의 정의와 표준화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 종주국의 체면을 지켰다. 앞으로 다른 고유음식도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성분과 양’에 대한 표준화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음식벡터’는 세계 곳곳으로 훨씬 힘차게 뻗어나갈 것이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우리의 전통음식은 맛이 뛰어남에도 ‘손맛’에 크게 좌우되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그리하여 쉽사리 표준화되지 못했다. 이 허점 때문에 얼마 전에는 김치의 국제적 표준화를 자칫 일본에 빼앗길 뻔했다. 다행히 김치의 정의와 표준화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 종주국의 체면을 지켰다. 앞으로 다른 고유음식도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성분과 양’에 대한 표준화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음식벡터’는 세계 곳곳으로 훨씬 힘차게 뻗어나갈 것이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