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의 주역 휴대폰의 푸념… 부품 폐기과정서 유독 화학물질 배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지요. 무선 데이터 서비스 분야가 차세대 기술발전을 주도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니까요. 미국의 모토롤러·아이비엠(IBM)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무선응용 통신규약 ‘왑’(WAP: 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을 이용해 나를 통해 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물론 아직까지 상용화가 더디게 진행되지만 올해 말쯤에는 WAP을 통한 3세대 고속 무선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겠지요. 그뿐만이 아니죠. 미국의 인텔과 핀란드의 노키아 등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블루투스’(Bluetooth)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종류의 개인 네트워킹을 실현할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첨단세상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나요. 바로 여러분들의 디지털 세상을 열어가는 휴대폰이랍니다.
1년6개월짜리 수명을 연장해달라
요즘 나는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은 신세타령을 하려고 합니다. 무전기처럼 커다란 덩치로 세상에 나온 게 엊그제같네요. 여러분 가방과 호주머니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지요. 그때 나를 사용하면 전자파로 인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시끄럽기도 했던 것 기억나나요. 사실 내가 내뿜는 수준의 전자파로 인체에 치명적 해를 입을 사람은 거의 없지요. 팔꿈치를 구부려 한동안 전화를 받을 때 팔관절에 무리가 간다면 저렴한 헤드셋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요. 운전 중 휴대폰을 이용하면 벌금을 물린다고 했는데, 시행 1년이 지난 지금은 어찌됐는지 모르겠네요. 운전자들이 주행 중에 나를 가까이 하는 것은 스스로도 원치 않아요. 아무리 핸즈프리셋을 이용해도 주의가 산만해져 음주 운전자의 반응속도보다 반응이 늦거든요. 그러다 사고가 나면 나는 그야말로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아요.
그동안 나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남미의 오지가 문명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데는 내 힘이 적지 않았잖아요. 가로등이나 경찰서 심지어 우편번호도 없는 벽돌집 18채가 모여 있는 오지에 유선전화가 들어갈 수 있나요. 이윤이 남는 장사가 아니라며 멕시코 전화회사 텔멕스(Telmex)가 마을 공용전화 설치를 미뤘을 때 나는 주저없이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비록 군용 무전기 수준의 벽걸이형 통신기기 모습이긴 했지요. 그래도 주민들의 장거리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보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라도 내가 여러분 곁을 떠나면 얼마나 쓸쓸하고 답답했습니까. 때론 외로움에 심장의 통증을 느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와 게임을 즐기며 손가락운동을 하고, 노약자들은 내가 있기에 안심하고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알고 보면 내가 애물단지랍니다. 조금 세상에 일찍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낡은기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버려지는 탓이죠. 지금 내 친구들이 대한민국에만 무려 3천만이 넘습니다. 수명은 기껏해야 1년6개월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한해에 2천만대 이상의 친구들이 버림받는 셈이네요. 무게로 따지면 1만t이 훨씬 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버려지는 친구들 대부분이 쓸 만하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들어 싫증난다, 성능이 최신형만 못 하다는 등의 이유로 버림받고 있어요. 요즘에는 보상판매제도 시들해 나 같은 건 정말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장롱과 서랍을 떠돌며 어린이들 장난감 노릇을 하다가 결국 분해되어 쓰레기 소각장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내 일생이 거기에서 끝난다면 이렇게 잡다한 푸념을 늘어놓지도 않을 겁니다. 장렬히 산화하는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내뿜을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브롬계 난연제를 쓰기에 내가 연소될 때 비소·베릴륨·카드뮴·니켈·아연 등의 유독 화합물질(PBTs)이 배출되는 탓입니다. 이들은 인체에 가장 저항적(Persistent)이고 농축이 잘 되며(Bioaccumulative), 독성(Toxic)이 있는 것이랍니다. 이런 유독한 물질이 소각이나 재활용되는 동안 다이옥신이나 푸란(furan) 등을 배출해 땅과 지하수로 스며들기도 하지요. 언젠가는 여러분 인체에 파고들어 신경세포를 마비시키고 면역체계를 무너뜨려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답니다. 이렇게 위험한 나를 아이들이 분해 조립하는 장난감으로 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까. 자연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나를 제대로 다뤄야겠지요. 독성물질투성이… 재활용 시스템 필요 아무리 힘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 해도 한없이 서글프네요. 왜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는지가 말입니다. 내가 독성물질을 내뿜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쇄 회로기판 탓이 크다고 하네요. 이 기판의 평균무게가 20g이라는데 그 가운데 0.2g이 납이죠. 대한민국에서 한해에 2천만대가 버림받으니까 해마다 4t의 납이 부실하게 관리되는 셈이네요. 미국 뉴욕의 민간환경연구소 인폼의 주장은 더욱 충격적이더군요. 나 같은 기기 하나에만 2.8g의 납과 비소 반도체가 5개 정도씩 들어 있어 신경이나 피부, 소화기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요. 아직도 휴대폰 부품 속에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지조차 모르니까요. 알면 경제가 다치기 때문일까요. 앞으로 나와 친구들을 물 건너로 팔려면 친환경적 재료로 대체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 텐데 정말 걱정이네요. 언제까지 내가 유독물질 방출원이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하나요. 그동안 내가 고민한 해법을 살짝 귀띔해드릴게요. 내가 여러분의 유익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재료를 많이 써야 합니다. 기기와 액세서리를 분해하기 쉽도록 디자인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나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업체들이 발벗고 나서야겠지요. 사용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나와 친구들을 업체에 반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미 전국적인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따라배우면 좋겠네요. 유럽연합도 생산업체가 제품 폐기물을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지요. 이용자가 서비스 업체를 바꿔도 기존의 단말기를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손때묻은 나를 불쌍히 여겨 두고두고 쓰면 여러분의 살림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도 보호하는 일입니다. 오래된 것에도 미덕이 많답니다.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사진/ "휴대폰은 오래 살고 싶다." 오갈 데 없는 폐휴대폰이 서랍에 들어있다. (이용호 기자)

사진/ 앉으나 서나 휴대폰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한겨레 임종진 기자)
그동안 나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남미의 오지가 문명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데는 내 힘이 적지 않았잖아요. 가로등이나 경찰서 심지어 우편번호도 없는 벽돌집 18채가 모여 있는 오지에 유선전화가 들어갈 수 있나요. 이윤이 남는 장사가 아니라며 멕시코 전화회사 텔멕스(Telmex)가 마을 공용전화 설치를 미뤘을 때 나는 주저없이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비록 군용 무전기 수준의 벽걸이형 통신기기 모습이긴 했지요. 그래도 주민들의 장거리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보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라도 내가 여러분 곁을 떠나면 얼마나 쓸쓸하고 답답했습니까. 때론 외로움에 심장의 통증을 느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와 게임을 즐기며 손가락운동을 하고, 노약자들은 내가 있기에 안심하고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알고 보면 내가 애물단지랍니다. 조금 세상에 일찍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낡은기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버려지는 탓이죠. 지금 내 친구들이 대한민국에만 무려 3천만이 넘습니다. 수명은 기껏해야 1년6개월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한해에 2천만대 이상의 친구들이 버림받는 셈이네요. 무게로 따지면 1만t이 훨씬 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버려지는 친구들 대부분이 쓸 만하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들어 싫증난다, 성능이 최신형만 못 하다는 등의 이유로 버림받고 있어요. 요즘에는 보상판매제도 시들해 나 같은 건 정말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장롱과 서랍을 떠돌며 어린이들 장난감 노릇을 하다가 결국 분해되어 쓰레기 소각장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내 일생이 거기에서 끝난다면 이렇게 잡다한 푸념을 늘어놓지도 않을 겁니다. 장렬히 산화하는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내뿜을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브롬계 난연제를 쓰기에 내가 연소될 때 비소·베릴륨·카드뮴·니켈·아연 등의 유독 화합물질(PBTs)이 배출되는 탓입니다. 이들은 인체에 가장 저항적(Persistent)이고 농축이 잘 되며(Bioaccumulative), 독성(Toxic)이 있는 것이랍니다. 이런 유독한 물질이 소각이나 재활용되는 동안 다이옥신이나 푸란(furan) 등을 배출해 땅과 지하수로 스며들기도 하지요. 언젠가는 여러분 인체에 파고들어 신경세포를 마비시키고 면역체계를 무너뜨려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답니다. 이렇게 위험한 나를 아이들이 분해 조립하는 장난감으로 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까. 자연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나를 제대로 다뤄야겠지요. 독성물질투성이… 재활용 시스템 필요 아무리 힘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 해도 한없이 서글프네요. 왜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는지가 말입니다. 내가 독성물질을 내뿜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쇄 회로기판 탓이 크다고 하네요. 이 기판의 평균무게가 20g이라는데 그 가운데 0.2g이 납이죠. 대한민국에서 한해에 2천만대가 버림받으니까 해마다 4t의 납이 부실하게 관리되는 셈이네요. 미국 뉴욕의 민간환경연구소 인폼의 주장은 더욱 충격적이더군요. 나 같은 기기 하나에만 2.8g의 납과 비소 반도체가 5개 정도씩 들어 있어 신경이나 피부, 소화기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요. 아직도 휴대폰 부품 속에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지조차 모르니까요. 알면 경제가 다치기 때문일까요. 앞으로 나와 친구들을 물 건너로 팔려면 친환경적 재료로 대체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 텐데 정말 걱정이네요. 언제까지 내가 유독물질 방출원이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하나요. 그동안 내가 고민한 해법을 살짝 귀띔해드릴게요. 내가 여러분의 유익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재료를 많이 써야 합니다. 기기와 액세서리를 분해하기 쉽도록 디자인하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나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업체들이 발벗고 나서야겠지요. 사용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나와 친구들을 업체에 반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미 전국적인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따라배우면 좋겠네요. 유럽연합도 생산업체가 제품 폐기물을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지요. 이용자가 서비스 업체를 바꿔도 기존의 단말기를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손때묻은 나를 불쌍히 여겨 두고두고 쓰면 여러분의 살림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도 보호하는 일입니다. 오래된 것에도 미덕이 많답니다.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