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 아짐들 중국땅 가다.
등록 : 2002-08-13 00:00 수정 :
“중국이라도 갔다와서 죽어야 원없제.” 월평댁은 동네 아짐들과 그렇게 먼길을 나섰다. 나 역시 “여행수지 적자가 심각한 지경에 나까지?”라는 물음을 달면서 오랜 망설임 끝에 백두산을 포함한 ‘고구려 문화답사’란 주제에 이끌려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20분 남짓의 비행이 짧아서였을까 월평댁은 선양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 대고 “화장실 가려고 쉬는겨?”라며 그동안 참은 기색을 역력히 내보인다. 아주 간소하게 꾸린 내짐이 얌체 같게도 월평 아짐들은 무거운 가방을 끙끙대며 메고 다닌다.
“오메오메 여그 놈들은 웃통 활랑 벗고 다니네. 저 집은 하꼬방이구마…. 길도 겁나게 넓고 저그 각시는 자전거 탐시롱 뭘 뒤집어썼다냐.” 아짐들은 몇십년을 되돌린 듯한 거리풍물에 눈이 홀리고 자전거와 사람 그리고 뒤섞인 차들의 행로를 가슴 졸이며 내다본다.
기름기 가득한 중국에서의 첫 저녁식사에 아짐들은 벌써 집에서 따온 고추에 김에 고추장, 된장 보따리 올려놓고 맛나게도 중국요리와 고추장을 한데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낸다. 중국에 왔으니 한끼는 중국식으로 먹어보라는 가이드의 간곡한 부탁은 초장부터 날아가버리고 엊저녁 내 딴 영광고추를 이 식탁 저 식탁으로 나른다.
저녁 먹고 들어선 선양광장은 노인들의 댄스장과도 같았다. 무더위에 잘 차려입은 노인들이 펼치는 한밤의 댄스파티에 끼어보려 이리저리 스탭 밟아보지만 어깨춤보다 발의 스탭이 주가 되는 중국춤을 따라하기 여간 힘들었는지 월평 아짐들 부러운 듯 한켠에서 구경만 실컷 한다. 몇 사람만 모이면 체조하듯 춤을 추는 중국 광장은 노인들의 생기어린 놀이터와도 같았다.
큰 도시를 떠나 한밤을 열차에 맡기고 장수왕이 평양 천도하기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시와 비행기로 도착한 옌볜, 룽징 땅을 지나는 동안 거대한 옥수수 농장과 벼들이 이어지는 것이 월평 들녘과 별반 다를 바 없어보인다.
떠나기 전날까지 초벌 고추 따서 태양볕에 말려놓고 나선 길에 이어지느니 농사와 농촌사람 이야기들이다. 중국 농민들은 땅을 어떻게 소유하는지, 농산물은 어떻게 팔아먹는지, 왜 중국산 농산물은 맛이 없는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시장경제가 자리잡은 중국의 땅은 국가 소유지만 경작권을 균등하게 분배하고 농산물은 다시 국가에 판다는 가이드 말에 ‘내 땅’ 적은 이는 일면 부러운 낯빛이 된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깨는 묵은 것이지만 옌볜에서 나는 깨는 햇깨이고 다른 지방과 달리 맛이 좋다는 말에 월평 아짐들의 ‘중국깨’ 주문이 이어진다. 중국산 농산물 땜에 농민들 힘들다면서도 ‘중국깨’를 사야겠다는 심보는 뭘까? 속상한 맘에 옆의 월평댁에게 물어봤더니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흑깨’에 대한 미련과 동네사람들 선물용으로 사는 거란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장 앞에서 깨를 받아든 아짐들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인다. “이거이 뭣이당가? 들깨 아녀? 어이 중국 총각 흑깨 가져오랑께 들깨가 뭐여? 우리집에도 쎄버린 게 들깬데 도로 가져가”라며 한바탕 분통이 터져나온다. 햇깨를 한 모금 털어넣은 아짐들은 “웨메 우리 깨만 못하네”라며 뒤늦은 후회를 남기며 가방 한켠에 고추 보따리 자리를 대신해 중국깨 묶음을 채워넣는다.
능숙하게 입국 수속을 밟고 도로 무거워진 가방 메고도 선물 나눠줄 기분에서였을까? “오메 말 통한게 쓰겄다, 대한민국 만세다”며 훠이훠이 걷는 월평 아짐들에게서 여행의 노곤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륙 바람이 한동안 월평 마을을 흔들어놓지 싶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