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조롱하는 ‘시대의 요부’ 마돈나, 새 앨범 <뮤직>으로 아티스트의 자리에
미국의 90년대 대중문화사전인 <얼트 컬처>에는 ‘마돈나’와는 별개로 ‘마돈나 연구’(Madonna Studies)라는 항목이 나온다. 마돈나라는 텍스트를 사회학이나 여성학, 또는 저널리즘적으로 분석하는 문화이론을 지칭하는 말이다. 수백명의 스타들이 망라된 이 책에 특정인의 이름을 건 ‘론’항목은 마돈나론이 유일하다. 90년대뿐 아니라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시대로 거슬러올라가도 한 가수나 배우가 그 자체로 독립된 연구 영역이 된 적은 없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
마돈나는 가수나 스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다. 마돈나는 80∼90년대의 10대와 2000년대의 10대를 같은 예배당에 모이게 하는 교주이자 걸어다니는 초대형 기업체이고, 성적 욕망의 선동가이자, 성적 소수자들의 ‘마돈나’이며 기독교에서 치를 떠는 악마다. 한마디로 마돈나는 그가 활동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미국 언론에서 뽑는 최고와 최악의 인물에 나란히 실리며 황색잡지의 기자들과 대학의 문화연구가들이 동시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올해로 마흔두살이 된 마돈나는 이제 그가 원하는 마지막의, 그리고 최고의 면류관을 쓴 것 같다. 지난주 내놓은 13번째 앨범 <뮤직>으로 그는 ‘스캔들 메이커’나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의 자리에 안착했다. 이 앨범에 별 네개를 준 미국의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지난 98년 마돈나가 처음으로 아티스트 대접을 받기 시작한 앨범 <레이 오브 라이트>보다 더 빼어나고 유쾌한 앨범이라고 <뮤직>을 소개하면서 “유로 댄스 비트와 마돈나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가 녹아들어간 이 앨범을 통해 이제 마돈나는 대중문화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를 것”이라는 찬사를 했다. 둘째아이를 출산한 지난 8월 앨범의 첫 싱글로 선보인 타이틀곡 <뮤직>은 2주째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코네(마돈나의 본명)는 마치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83년 <할리데이>로 대중음악시장에 등장한 뒤 그는 단 한번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뮤직>이 나오기 전 그가 발표한 앨범 13장 가운데 10위권 순위를 벗어난 앨범은 87년 발표한 <유 캔 댄스>(14위)가 유일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마돈나가 누군가로부터 강렬한 영향을 받지도 않은 꼬마 시절부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갖가지 기이한 행동과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는 것은 그의 신화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면이 있다. 친구들이 꽃이며 나무로 변장한 아홉살 적 학예회에서 속옷만 걸친 몸에 온통 형광칠을 하고 요란한 춤을 춰 부모를 아연케 하던 마돈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주 어릴 적 나는 하루종일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내 꿈을 인형들에 투사시켰다. 바비는 아주 비열했다. 그는 남자친구 인형인 켄에게 ‘난 집에서 설거지나 하고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넌 나갈 생각도 하지마. 내가 밤에 볼링치러 나갈거니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데뷔 이후 마돈나가 보여준 도발성과 야심은 유년기에 이미 형성된 것이었던 셈이다. 마돈나는 엘비스 시대 이후 자신의 엄청난 영향력을 잘 모르는 척하는 것이 마치 미덕처럼 지켜지던 팝스타들의 전통을 깬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분노, 성적 욕망을 일으키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옷차림과 행동, 말투 등 모든 면에서 실제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 발휘했던 탁월한 재능은 성공의 열쇠이기도 했다. 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삶은 일종의 대중을 향한 연기 같은 것이었다. 마돈나와 한때 연인 사이였던 워런 비티에게 곧잘 “왜 카메라도 없는데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초창기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폭탄 같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는 뜻의 ‘보이 토이’라고 새긴 벨트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하고 다녔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마돈나가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기’를 실현하는 방식은 이전의 여성 스타들이 보여준 전략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다. 그는 남성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모든 걸 바치겠다는 식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럼 없이 공격적이며 활기차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페미니스트들이 마돈나를 놓고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전략
마이클 잭슨과 함께 MTV의 1세대 스타가 된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전략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의 면모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성학자들이 자주 거론하는 <머티리얼 걸>의 뮤직비디오는 마릴린 먼로의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한장면을 그대로 따오면서도 원작에서 카메라가 따라가는 남성적인 시선을 해체함으로써 마돈나 자신이 ‘쇼’를 하고 있다는 조롱섞인 자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에로틱하면서 새도마조히즘적인 분위기 때문에 <저스트파이 유어 러브>가 MTV에서 방영금지 당하자, 마돈나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 이미지가 행사하는 폭력성과 검열을 비난하고 나섰다. 재미있는 것은 유난히 자유분방한 케이블 채널인 MTV에서 밀려난 이 뮤직비디오가 ‘공익을 위해서’라는 알 듯 말 듯한 이유로 공중파인 의 심야프로그램에서 무삭제로 공개되어 그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공격적으로 금기를 깨는 그에게 가해지는 제재와 비난은 오히려 카리스마를 북돋워 주는 결과만을 낳았다.
마돈나가 가지는 특이한 매력 가운데 하나는 섹스의 화신임을 자처한 과도한 여성성이 오히려 그녀를 팝음악 사상 가장 중성적인 우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성팬이건 여성팬이건 마돈나에게 환호하는 것은 관능적이면서도 근육질을 자랑하는 그의 에너지다.
여전한 찬사, 여전한 비난
중요한 것은 그가 무대에서 얼마나 충격적인 옷을 입건, 얼마나 음란한 행동을 하건간에 그것은 충동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는 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몬로처럼 선배 섹스심벌들과 달리 마돈나는 결코 무대에서 스스로가 연출한 열정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싸구려 가십신문과 별 차이가 없던 실제 생활에서조차도 언제나 이중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80년대 ‘천박한 성적 노리개’에서 90년대 ‘욕망의 화신’으로 변신하며 미국 100대 부호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음악인으로, 여성해방론자로,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협력자로, 그리고 ‘매버릭’이라는 레이블의 대표로 등극하게 된 데는 이렇게 치밀한 자기관리가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벽두에 어쩌면 그의 마지막 목표였을 아티스트 자리에 연착륙했다.
최근에도 둘째아이의 아빠인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영화감독 가이 리치가 그에게 주먹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신문 해외토픽란까지 장식할 정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전세계의 관심거리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마돈나는 확실히 전보다 우아해 보이지만 여전히 인터뷰마다 거침없고 때로 방자한 태도로 정확히 찬사만큼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마돈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왜냐면 그런 감정은 실상 그들이 생각하는 쪽의 정확히 반대편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라고 여유만만하게 받아치며 그의 반대자들을 납작하게 눌러주고 있다. 마돈나의 에너지는 무대에서건, 무대 뒤에서건 불혹이 지난 나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 에너지는 아마도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직막 숨을 쉴 때까지 지속될 것 같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올해로 마흔두살이 된 마돈나는 이제 그가 원하는 마지막의, 그리고 최고의 면류관을 쓴 것 같다. 지난주 내놓은 13번째 앨범 <뮤직>으로 그는 ‘스캔들 메이커’나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의 자리에 안착했다. 이 앨범에 별 네개를 준 미국의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지난 98년 마돈나가 처음으로 아티스트 대접을 받기 시작한 앨범 <레이 오브 라이트>보다 더 빼어나고 유쾌한 앨범이라고 <뮤직>을 소개하면서 “유로 댄스 비트와 마돈나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가 녹아들어간 이 앨범을 통해 이제 마돈나는 대중문화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를 것”이라는 찬사를 했다. 둘째아이를 출산한 지난 8월 앨범의 첫 싱글로 선보인 타이틀곡 <뮤직>은 2주째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코네(마돈나의 본명)는 마치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83년 <할리데이>로 대중음악시장에 등장한 뒤 그는 단 한번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뮤직>이 나오기 전 그가 발표한 앨범 13장 가운데 10위권 순위를 벗어난 앨범은 87년 발표한 <유 캔 댄스>(14위)가 유일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마돈나가 누군가로부터 강렬한 영향을 받지도 않은 꼬마 시절부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갖가지 기이한 행동과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는 것은 그의 신화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면이 있다. 친구들이 꽃이며 나무로 변장한 아홉살 적 학예회에서 속옷만 걸친 몸에 온통 형광칠을 하고 요란한 춤을 춰 부모를 아연케 하던 마돈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주 어릴 적 나는 하루종일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내 꿈을 인형들에 투사시켰다. 바비는 아주 비열했다. 그는 남자친구 인형인 켄에게 ‘난 집에서 설거지나 하고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넌 나갈 생각도 하지마. 내가 밤에 볼링치러 나갈거니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데뷔 이후 마돈나가 보여준 도발성과 야심은 유년기에 이미 형성된 것이었던 셈이다. 마돈나는 엘비스 시대 이후 자신의 엄청난 영향력을 잘 모르는 척하는 것이 마치 미덕처럼 지켜지던 팝스타들의 전통을 깬 첫 번째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분노, 성적 욕망을 일으키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옷차림과 행동, 말투 등 모든 면에서 실제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 발휘했던 탁월한 재능은 성공의 열쇠이기도 했다. 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삶은 일종의 대중을 향한 연기 같은 것이었다. 마돈나와 한때 연인 사이였던 워런 비티에게 곧잘 “왜 카메라도 없는데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초창기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폭탄 같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는 뜻의 ‘보이 토이’라고 새긴 벨트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하고 다녔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마돈나가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기’를 실현하는 방식은 이전의 여성 스타들이 보여준 전략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다. 그는 남성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모든 걸 바치겠다는 식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럼 없이 공격적이며 활기차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페미니스트들이 마돈나를 놓고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