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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덮고 필름으로 만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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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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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의 거장 장 르누아르 회고전… <암캐> 등 17편의 주요작 상영

고전에 관한 일상적인 오해를 꼽으라면 ‘낡은 이야기’라거나 ‘난해한 작가주의’가 아닐까. 세계영화사가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들 가운데 이런 편견을 심어주는 영화가 없지 않지만, 장 르누아르는 절대적으로 예외다. 쉽고 풍성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짓게 된다. 여유로운 재미와 은근한 감동이 감겨든다. 또 그의 영화들은 딥포커스, 실제 로케이션 촬영 등 영화 기술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작품 활동기에는 제대로 대접 못받아

문화학교서울이 8월9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 02-533-3316)에서 ‘자연과 인간의 작은 극장-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연다. 38편의 작품 가운데 주요작 17편을 골라 상영한다. 르누아르가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건 한참 뒤의 이야기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20년대부터 걸작이 무더기로 쏟아진 30년대에는 거의 외면받다시피했다. 오죽했으면 2차대전이 터져 미국으로 망명한 뒤 프랑스로 돌아올 생각을 버리려고까지 했을까. 편견어린 시선을 받을 구석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 에슬링을 스타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에밀 졸라의 소설을 각색한 장편 무성영화 <나나>(1926)를 시작으로 20년대 내내 아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를 찍어댔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부유한 아들이라는 후광도 껄끄럽게 받아들여졌다. 아버지의 값비싼 그림을 팔아 만든 초기작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고왔을 리 없다.


30년대 들어 르누아르의 영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파리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실제 촬영하고 녹음한 프랑스 최초의 현장 녹음 영화 <암캐>(1931)가 화제를 부르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30년대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영화의 중요한 배우였던 미셸 시몽이 주인공을 맡아 삼각관계를 보여주는데, 배우들이 실제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공교롭게 부인 캐서린 에슬링과 결별의 계기가 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르누아르는 절정의 기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1932)에서 르누아르는 ‘완벽한 히피’라고 부른 부뒤의 행동을 통해 부르주아의 위선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가정부와 밀월관계를 보내던 서점 주인 레스팅그와는 “부랑자로서 완벽한 외모를 보여준다”며 부뒤를 지켜보다가 그가 센강에 뛰어들자 수많은 구경꾼을 뒤로 하고 용감하게 그를 구해낸다. 레스팅그와는 부뒤를 자기 집에 두고 중산층 가정에 걸맞은 교양인으로 재교육하려 하지만 워낙 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부뒤는 그의 가정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사회에 적당히 길들어갈 때쯤 부뒤는 뜻하지 않은 반전을 일으키며 히피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간다. 자신의 결혼식 날, 아름다운 신부와 거액의 복권당첨금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서 감독의 시선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드러난다. 르누아르는 계급적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데, 그 결정판이 <랑주씨의 범죄>(1936)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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