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여부 의심받는 자연산 식물약제… 독성물질 이용한 치료제 개발하기도
무엇인가를 치료하는 물질과 무엇인가를 죽이는 독(poison)과의 관계는 고대로부터 관심을 끌어왔다. 근대 의학적 사고로 보면 놀랄 만한 이 사실도 동양적 사고에서 보면 별 이상할 것이 없다. 최근 들어 몇 가지 독성분이 매우 적절한 치료약으로 새롭게 규명되고 있다. 또한 무해할 것이라고 믿어온 자연추출물이 매우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최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중국산 다이어트 약품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그동안 동양인들은 ‘순식물성’이라는 말을 ‘무독’, ‘무해’라는 뜻으로 여기다시피 했다. 당연히 식물성 추출물은 안전한 건강식품으로 환경친화적인 물질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순식물성이라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지는 않는다. 이미 1998년에 이와 관련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벨기에의 한 의사가 식물에서만 추출한 성분을 포함한 다이어트 약을 과신해 무분별하게 처방한 것이었다. 특별히 동양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의사는 몸 속의 수분 배출에 좋다는 수입업자의 말만 믿고 쥐방울 마도령(Aristolochia)과 함박이(Stephania)를 다이어트 환자들에게 처방했다. 약 2천여명이 다이어트를 위해 이 순식물성 약재를 복용했다. 그 결과 확인 가능한 약 500여명의 환자 중에서 120명의 신장기능이 거의 마비되었으며, 다른 50여명은 신장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심지어 상당수는 방광암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동양의약서에 약초로 분류된 마도령의 상세한 약효에 대해 무지했던 의사로 인해 엄청난 약화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순식물성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연산 식물약제가 파문을 일으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의약품은 치밀한 규제와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자연산 식물약재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또한 대체의학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약초수집상과 약초전문가(herbalist), 건강보조식품 판매상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다. 대대적인 시위로 전면적인 규제를 가로막는 것이다. 게다가 의약품 시장의 독식을 노리는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자연산 약재를 규제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어쨌든 많은 독성물질과 화학 원재료가 식물로부터 추출·가공되고 있다. 캡슐에 담겨 있으면 부작용이 있을 법한 화학약품으로 보이고, 말려서 벽에 걸어두면 몸에 좋은 약초 꾸러미로 보이는 것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전까지 독으로 판정받은 성분이 새롭게 주목받기도 한다. 예컨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소(arsenic)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매독과 혈액암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삼산화비소(arsenic triocide)가 전골수 백혈병에 특효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심지어 비소가 백혈구 세포 중에서 매우 활발히 증식하는 암세포만 골라 유전자 안정성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고 보고도 있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비소가 상당히 축적된 식물을 음용해왔다. 어떤 고사리는 말린 상태에서 kg당 5g 이상의 비소를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비소를 함유한 식물을 차나 술로 즐겨 마시며 해열작용이나 관절염·뇌일혈·백내장 등에 효험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량의 비소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독이 치료약으로 쓰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정원에 사는 거미들이 가지고 있는 100여 가지 독성분은 근육이완에 특효를 보인다. 거미들이 작은 곤충을 마비시키는 데 쓰는 10여 가지 물질은 간질이나 신경성 질환으로 근육이 크게 떨리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데 특별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릴라민(Arylamine)이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화학적으로도 합성된다. 수만 마리의 거미를 잡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치명적인 독을 가진 O157균도 뇌종양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O157균은 대장 내 세포 속으로 파고들어가 혈액을 타고 들어가 베로톡신(verotoxin)을 만들어 신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 이 물질이 거의 모든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들을 적절히 조절하여 뇌종양 암세포만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쥐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투여 뒤 15일이 지나 모든 뇌종양 암세포가 사라지기도 했다.
클로스트리둠 보툴리눔(Clostridum Botulinum)이라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독성물질은 1온스로도 100만명의 인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의 물질이다. 생물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 이 물질이 지금 얼굴의 주름을 지우는 보톡스(Botox)라는 성형외과용 약으로 팔리고 있다. 이 독을 1조분의 1온스 정도로 희석하면 제어가 불가능한 눈깜빡임 증상에 특효를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파킨슨병이나 안면마비, 땀을 지나치게 흘리는 증상에도 널리 활용된다. 보톡스를 주름살에 주사하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억제하고 근육을 이완시켜 주름을 펴게 된다.
흡연가들의 골칫덩어리인 니코틴도 치료약으로 쓰인다. 중독성이 있는 니코틴은 집중력과 단시간의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의대의 샌더버그 박사팀은 순수한 니코틴 0.05g 정도의 주사량은 치명적이지만 이 양의 3분의 1 정도를 접착식 패치로 주입하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력 회복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니코틴 패치방식은 어린이 튜렛증후군에도 효과가 있다. 튜렛증후군은 경련(tics)이라 불리는 음성통제 불능과 반복된 무의식적 행동에 의해 특성화된 유전성 신경장애다. 이 병은 18살 이전에 주로 발생하며 남자는 여자보다 이 병에 걸릴 확률이 3∼4배 정도 높다. 그런데 니코틴 패치를 튜렛 장애아들에게 사용한 결과 공격성과 우울증이 상당히 감소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문제는 패치를 통한다고 해도 담배처럼 일정한 중독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코틴의 기억력 회복… 독성 에이즈 치료제도
바다에 사는 껍질 없는 갯민달팽이류 중의 하나는 모래 구덩이 속에 숨어 있다가 다가오는 작은 물고기에게 독화살을 쏘아 이들을 마비시켜 잡아먹는다. 먹이를 유인하는 데 사용하는 미끼는 달팽이의 머리에 달린 흐늘거리는 촉수다. 이들 달팽이들이 사용하는 침에 담긴 독의 300분의 1g 정도를 만성적인 요통환자들에게 주사하면, 모르핀보다 훨씬 안전하고 부작용 없이 지속되는 통증완화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유타대학 연구팀에 의해서 밝혀졌다. 이 물질은 지코노타이드라는 품명으로 개발되어 현재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을 이용해 약품을 개발했다. 진로종합연구원 최규환 박사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자리공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새로운 항바이러스 농약을 개발했다. 최 박사는 독초로 알려진 미국자리공에서 에이즈 퇴치물질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전부터 알려진 많은 독성식물이 있다. 예를 들면 옻나무·미치광이풀·천남성·박새풀·애기똥풀·은방울꽃 등. 이들 역시 그 어떤 병에 특효가 있는 성분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독과 약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얼마의 양을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적은 양의 독이 약이 되고 많은 양의 약이 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사진/ 동양의학에서 처방하는 자연산 식물약재에 대한 의학적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AP 연합)
자연산 식물약제가 파문을 일으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의약품은 치밀한 규제와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자연산 식물약재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또한 대체의학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약초수집상과 약초전문가(herbalist), 건강보조식품 판매상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다. 대대적인 시위로 전면적인 규제를 가로막는 것이다. 게다가 의약품 시장의 독식을 노리는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자연산 약재를 규제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어쨌든 많은 독성물질과 화학 원재료가 식물로부터 추출·가공되고 있다. 캡슐에 담겨 있으면 부작용이 있을 법한 화학약품으로 보이고, 말려서 벽에 걸어두면 몸에 좋은 약초 꾸러미로 보이는 것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전까지 독으로 판정받은 성분이 새롭게 주목받기도 한다. 예컨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소(arsenic)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매독과 혈액암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삼산화비소(arsenic triocide)가 전골수 백혈병에 특효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심지어 비소가 백혈구 세포 중에서 매우 활발히 증식하는 암세포만 골라 유전자 안정성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고 보고도 있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비소가 상당히 축적된 식물을 음용해왔다. 어떤 고사리는 말린 상태에서 kg당 5g 이상의 비소를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비소를 함유한 식물을 차나 술로 즐겨 마시며 해열작용이나 관절염·뇌일혈·백내장 등에 효험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량의 비소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사진/ 에이즈 체료제로 주목받는 미국자리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