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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만유인력에 숨겨진 ‘음모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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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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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 이면의 비열한 진실을 파헤친 <독재자 뉴턴>

과학자들에게 발견의 선취권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과학에서의 영예는 어떤 것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과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이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히는 영국의 뉴턴(1642∼1727)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미적분을 최초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라이프니츠(1646∼1716)와 선취권을 놓고 벌인 논쟁은 과학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랫동안 격렬하게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뉴턴이 보인 행위가 공정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되는 업적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뉴턴이 성취한 과학적 업적은 거대하다. 먼저 이론가로서 그는 미적분학을 독자적으로 개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원리·원제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역학의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그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자연현상을 훌륭히 설명한다. 또한 실험가로서 연금술에 심취했고, 광학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룩했다. 한때 왕립조폐국장을 지내면서 범죄 감식가로서 화폐 위조범을 효율적으로 찾아내곤 했으며, 과학과 종교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표명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뉴턴은 이전에 어느 누구도 확립하지 못했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과학의 새로운 길을 설정했다. 그가 제기한 물질, 힘, 빛과 중력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150년 이후 전개될 산업혁명에 새로운 지침을 주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기술적인 세계가 되었다”(17쪽)라고 적고 있다.

뉴턴에 짖밟힌 플램스티드와 그리에


사진/ <독재자 뉴턴> 데이비드 클라크 등 지음, 이면우 옮김, 몸과 마음 펴냄.
과학에 대해 깊은 식견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뉴턴의 위대성을 이 정도는 알고 있다. 또 뉴턴의 업적을 찬양한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다. 만일 이 책이 뉴턴의 과학적 업적만을 다룬 것이라면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는 “공포와 편애를 이용해 18세기 초의 영국 과학자 사회를 통제하려는 아주 복잡한 사람”(10쪽)을 만나며, 자신의 학문적 야망을 위해 두 사람의 과학자를 비열하게 짓밟는 한 천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두 사람은 최초의 영국 왕립천문학자인 존 플램스티드와 미천한 염색업자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인 스티븐 그레이다. 이 책은 천문표의 완성자인 플램스티드, 전기통신의 발견자인 그레이, 그리고 두 사람을 적대시한 뉴턴의 삼각관계를 한편의 추리소설처럼 구성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죽기 며칠 전까지도 완벽한 천문표를 만들기 위해 천문관측을 한 플램스티드는 새로이 정밀하게 하늘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44년의 세월, 3만번에 이르는 관측, 3천개 별의 위치 측정”을 했으며 “이것들은 실로 인류에게 지식을 주기 위한 이타적인 외길 인생의 결과”(221쪽)였다.

거처도 없이 가난한 말년을 보낸 염색업자 그레이는 정규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당시 어떤 유명인사보다 많이 전기의 진정한 본성을 밝혀내고 전기 효과로 먼 거리에서 통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을 ‘통신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레이야말로 ‘통신의 위대한 할아버지’라고 불릴 만한”(15쪽)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뉴턴으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받았지만 서로 신뢰하고 존경했으며 지속적으로 협조했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적대적 대응을 마다하지 않은 뉴턴의 독단적 태도로 말미암아 플램스티드와 그레이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두 사람은 뉴턴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뉴턴으로부터 철저하게 공격당하고 탄압받았다.

뉴턴이 이처럼 이기적이고 편협한 인물임에도 대부분의 전기작가들은 뉴턴에 대한 칭송만 늘어놓음으로써 뉴턴의 일생을 편견 없이 평가하지 못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뉴턴의 천재성은 널리 소개됐지만 플램스티드나 그레이를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을 괴롭힌 공격적 성격이나 독단적 행동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특별하고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책의 끝부분에는 뉴턴의 폭군적 특성과 지적 과격성에 대한 기록을 역사에서 삭제하는 작업이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뉴턴의 일생은 “근면, 인내, 겸손, 절제, 온순, 인정, 자비, 경건함이 모인 연속체로서, 악덕은 털끝만큼도 없었다”(185쪽)라고 묘사되었다. 알렉산더 포프 같은 시인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하느님이 뉴턴을 보내시자 모두 광명 속에 나왔다”라고 썼다. 물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념할 만한 장소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프리즘을 갖고 빛에 관해 첫 번째 실험을 한 서재, 사과나무 아래에서 중력의 성질을 탐색한 정원 등은 뉴턴의 신격화에 동원된 수많은 장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뉴턴의 영웅적 신화는 무너졌다

그러나 그레이의 경우 뉴턴처럼 이름을 딴 거리나 기념관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는 찾아가 존경을 표할 무덤조차 없다. 그가 묻힌 장소도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그와 함께 지낸 동료가 그레이의 죽음을 기리며 쓴 시가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 시는 “모든 일은 끝났습니다. 존경하는 그레이 선생님”으로 끝난다. 그리고 뉴턴의 옹졸하고 비열한 삶을 여과 없이 드러낸 이 책도 이 문장으로 끝난다.

뉴턴의 신화는 이 책으로 무참히 무너졌다. 그러나 옮긴이는 ‘역자 후기’에서 “아무리 뉴턴을 폄하한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뉴턴을 존경하고 있음을 밝힌다. 뉴턴은 역시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과학혁명을 완수한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고 적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독자는 별로 없을 줄로 안다. 뉴턴 역시 보통사람들처럼 “억제할 수 없는 야망과 악명 높은 편집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50쪽). 그럼에도 우리는 진지한 삶을 살다 간 플램스티드와 그레이가 결코 뉴턴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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