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 재생은 세계적 흐름
등록 : 2002-08-08 00:00 수정 :
독일의 루르 지방은 50∼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을 대거 수입해갈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광공업 지대였다. 유럽 최대의 광산을 보유한 곳으로, 200년 전부터 탄광이 개발되면서 독일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석탄산업이 사양화되기 시작해 80년대는 문을 닫는 탄광들이 속출했다. 70년대 53개에 이르던 탄광이 90년 초에는 19개로 줄었고, 이 지역을 흐르던 엠셔강을 비롯해 주변환경은 석탄공업으로 완전히 황폐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폐광이 시작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루르는 새로운 도시로 변했다. 주정부와 건축 프로그램 민간기구인 IBA, 그리고 주민들이 힘을 합쳐 ‘루르 뒷마당’ 치우기 작업에 성공한 것이다.
1989년 설립된 IBA는 지금까지 루르 지역에서 92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경제적인 전망’보다는 ‘생태학적 개혁’에 초점을 맞춰 이 지역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탄광시설물의 관광자원화 작업이다. 19∼20세기 산업문명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장시설 보크링게르 후테는 ‘산업문화의 대성당’이라고 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곳에 설치한 야간 조명은 낮의 모습과 아름다운 야경으로 새로운 풍물거리가 됐다. 1930년대 만들어진 철암역 앞 선탄장은 최근 문화관광부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제대로 정비할 경우 한국의 보크링게르 후테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다.
IBA는 보존뿐 아니라 리모델링을 통한 재활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과거의 가스 보관소는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개조했고 뒤스부르크강 주변의 석탄공장은 외관을 보존한 채 내부를 문화공간으로 개조해 여느 미술관과 다른 분위기의 독특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엠셔강변의 하천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화작업과 석탄공장변 토양생태계 복원을 위한 복토작업은 2차에 걸친 5개년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 최대의 석탄·철광석 산지이자 ‘대영제국의 발전소’로 비유되기도 한 영국 웨일스 지방의 토지개간사업도 대표적인 탄광지역 복원사례다. 이곳은 40년대 매장량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지역 전체가 침체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고, 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은 60년대에 이르러서는 실업률이 30%를 넘었다. 날리는 탄가루와 악취, 폐수로 웨일스 전체는 공해 덩어리로 변했다. 설상가상으로 66년 웨일스 남쪽 소읍 애버판에서는 높이 250m의 석탄 폐기물 더미가 무너져 11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44명이 생매장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직후 웨일스 정부는 오염된 대지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웨일스 전체 면적의 8%, 서울시 크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 사상 최대의 토지개간사업을 시작했다. 갈아엎은 토지에는 닭똥을 뿌려 거름을 주고 나무와 풀을 심어 생태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으며 주변에는 호수와 공원을 디자인했다. 사업 시작 뒤 32년이 지난 88년 웨일스 정부는 새 생명을 얻은 웨일스를 알리기 위해 대규모 야외축제를 기획해 성공을 거뒀다. 주정부의 변덕 없는 정책 추진으로 30년 만에 ‘죽음의 땅’에 생명의 꽃이 핀 것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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