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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히딩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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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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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감독 열전… 그들의 스타일을 알면 축구를 두배로 즐긴다

사진/ (김종수 기자)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는 남았다. 2002 프로축구가 월드컵 이후 특수를 맞았다. 경기장은 연일 관중들로 꽉 차고, 선수들은 평소 실력의 100% 이상을 발휘하고 있다. 히딩크는 떠났지만 감독들의 지략싸움은 불꽃이 튄다. 경기 흐름에 따른 전술을 적용하거나 위기시 대응하는 임기응변이 변화무쌍하다. 팬들의 시선도 경기에 고정되지 않고 감독의 역량 등 주변적인(?) 데까지 넓어졌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팬들이 축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을 알고 경기를 보면 더 재미있다. 팀은 똑같더라도 감독에 따라 팀 색깔이나 경기를 운영하는 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은 “감독이 팀 경기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게는 30%까지 된다”고 말한다. 감독은 한팀의 항로뿐 아니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조타수인 셈이다.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 조윤환 감독


올 시즌 프로축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감독은 단연 전북의 조윤환(41) 감독이다. 대전의 이태호(41) 감독이나 포항의 최순호(40) 감독과 함께 40대 젊은 감독의 선두 주자인 조윤환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닮은 데가 많다. 곰 같은 몸집과 달리 선수들을 다루는 게 ‘여우’다. 조윤환 감독은 국내 축구선수 가운데 최고 몸값을 받는 김도훈의 몸상태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2군행을 지시한다. “축구는 명성이 아니라 최고의 컨디션으로 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전략과 전술을 치밀하게 준비해 운용하는 것 역시 지략가로서의 감독 조윤환의 특징이다. 조윤환 감독은 수비수 박동혁을 중앙 수비뿐 아니라 미드필더·공격수 등 3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팀내 다른 선수들 대부분이 2∼3개 포지션을 맡아볼 수 있는 다기능 선수들이다. 4-4-2, 3-5-2 등 전술 대형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5개 형태로 변화를 주어 운영한다. 모든 게 히딩크 감독과 비슷하다.

그러나 조윤환 감독은 “이런 축구의 기법은 부천 코치 시절 모신 니폼니시에게서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라며 히딩크 감독과의 비교를 꺼린다. 국내 어떤 감독보다 일찍 선진 축구의 실천자인 니폼니시를 접한 특이한 경험으로 젊지만 ‘여유 있고, 노련하고, 자신감 있게’ 팀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북은 지난해 후반 조윤환 감독이 부임한 이래 전반에 점수를 내주더라도 쉽게 지지 않는 뒷심의 축구와 공격 축구를 선보이고 있다.

안양의 조광래(48) 감독 역시 철저한 지장 타입이다. 투박한 사투리에 말하는 것이 어눌하지만, 축구는 몹시 섬세하고 계산적으로 한다. 선수들에게는 자로 잰 듯한 패스와 수비할 때 질서정연한 공간을 확보하라고 요구한다. 공을 잡았을 때 무작정 차지 않고 창조적으로 줄 곳을 확인한 뒤 차라고 강조한다. 70년대 축구대표팀의 ‘컴퓨터 링커’로 불린 미드필더 조광래의 스타일이다.

기술축구의 완성도 조광래 감독의 지론이다. “히딩크 감독이 체력축구를 완성했다면 이제 기술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조광래 감독이 말하는 기술축구는 브라질형 축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 안양에는 미드필더 히카르도와 안드레, 공격수 투타와 마르코 등 핵심 외국인 선수가 모두 브라질 출신이며, 이들은 기술 면에서 외국인 선수 가운데서도 가장 앞선다. 조광래 감독은 고졸 출신 등 새로운 선수들에게는 브라질 선수들의 기술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쓴다.

차경복 감독의 화끈한 공격축구

조윤환 감독이 국내 사령탑 가운데 막내 그룹이고, 조광래 감독이 외로운 중간 허리라면, 성남의 차경복(65) 감독은 50살 이상 상층 그룹의 맏형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화끈한 공격축구로 성남만의 독특한 색깔을 연출한다. 수비의 안정감에서 오는 힘이 공세적 경기운영의 바탕이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4명의 수비를 일자로 세우는 4-4-2 전형을 쓴다.

중앙 수비수인 김현수와 김영철은 183cm를 넘는 장신이어서 몸싸움과 공중 공에 강하다. 측면 수비수인 김용희나 문삼진 등도 패기에 넘치며, 적극적인 전방공격 가담으로 팀의 활력을 높인다. 최전방에 샤샤와 김대의 등 결정력이 높은 굵직한 선수들을 배치하고, 190cm가 넘는 조커 황연석을 대기시켜 해결사 역할을 맡겼다.

그렇다고 미드필드를 생략하지는 않는다. 신태용-박남열-박강조-김상식으로 연결되는 마름모형 허리 진영도 막강하다. 인화와 친목으로 팀을 이끌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술대형을 수시로 변화하는 등 기교도 뛰어나다. 여기에 부드러움과 카리스마의 양면성은 샤샤 등 ‘말썽꾸러기’ 선수의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내면서 팀을 지난해 정규리그 정상으로까지 올려놓았다.

우승 제조기인 수원의 김호(58) 감독은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걷고 있다. 99년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낸 데 이어, 올해 아시아 최강 클럽을 가리는 아시안클럽챔피언십과 아시안슈퍼컵을 2년 연속 챙기는 등 거칠 것 없이 질주하고 있다. 60년대 국가대표 청룡팀의 붙박이 수비수였지만, 지도자로서는 공격에 치중하는 싸움꾼이다. 현역 감독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내다보는 복잡한 두뇌의 소유자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도 다채롭다.

최전방에는 국내 최강의 쌍포인 산드로와 데니스에 최근 영입한 미트로를 번갈아 투입하고, 총알 스피드의 서정원을 가세해 득점포를 연다. 미드필더에는 부상에서 회복한 고종수가 버티고, 좌우로 최성용과 이기형이 날개로 뛰며 상승세를 유지한다. 특히 윙백인 이기형은 강력한 중거리 슈팅에 정확도까지 배가했고, 국가대표 문지기 이운재는 팀 전력의 안정성을 높였다. 김호 감독은 국내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오른 만큼 자존심도 강하다.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계보에 우뚝 선 전남의 이회택(56) 감독이나 최순호 감독은 ‘엘리트 의식’이 있는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성공은 선수 시절에 비해 조금 못 미치는 것 아닌가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선수 경력이 화려해 팬들의 기대치가 높은 것도 있지만, 동시에 선수의 몫과 지도자의 몫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는 것이기도 하다.

이회택 감독은 느낌을 중요시하는 덕장이다. 전체적 방향을 결정하고, 일의 경계를 지어주는 데 주력하며 자질구레한 데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선수들을 선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이번 월드컵 이후 김남일이 떠올라 위안이 됐다. 감독 본인은 타고난 공격수였지만 공격수와 공격력의 부재로 98년 전남 부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일구지 못했다. 대학 감독 시절 ‘그라운드의 제갈공명’인 서현옥씨를 올해 수석 코치로 불러들여 전술 완성도를 높이는 등 세기를 다듬었지만, 대학축구와 프로축구는 다르다는 사실만 입증하며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명성과 역량은 비례하는가

최순호 감독은 2000년 전임 박성화 감독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았다. 인간미 넘치고 온화한 성품으로 역시 수비보다는 공격에 많은 비중을 둔다. 이동국·코난이 7월 말까지는 호흡을 잘 맞춰주고 있고 최철우·윤보영·김상록 등 신진 공격수들이 감독의 취향대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수비와 미드필드 진영이 촘촘하지 못하고 성긴 게 취약점이다. 조직력도 떨어진다. 다행히 올 시즌부터는 대표팀 중앙 수비수 홍명보가 가세했고, 문지기 김병지가 철벽 수비를 하고 있어 도약을 꾀해볼 만하다.

최순호 못지않은 스타가 대전의 이태호 감독이다. 프로시절 한쪽 눈을 다쳐 ‘외눈박이 골게터’로 명성을 날린 이태호 감독은 선수 시절의 ‘꾀돌이’라는 별명답게 팀을 잘 이끌어나간다. 계룡건설 등 여러 회사가 돈을 모아 운영하는 대전구단은 자금력이 부족해 최근까지 선수단 숙소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전용 훈련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뛰어왔다.

지난 시즌 성적은 최하위였지만, 지난해 아마팀과 프로팀이 모두 모여 토너먼트를 벌이는 축구협회(FA)컵 대회 때는 포항을 물리치고 우승까지 일궈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다른 구단은 한해 100억원 이상을 쓰지만 절반 가량밖에 쓰지 못하는 현실에서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선수층도 두껍지 않고 외국인 선수도 거의 없는 현실적 요인 때문에 수비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이관우·김은중 등 걸출한 스타들이 있어 늘 희망적이다. 감각적 패스와 가공할 슈팅력 등으로 ‘예쁘게’ 공을 차는 이관우는 선수 시절의 이태호 감독을 연상케 한다. 잦은 부상으로 이태호 감독의 애를 태우지만, 8월부터는 발목 부상에서 완쾌해 그라운드의 사령관으로 복귀한다. 김은중은 이태호 감독 아래서 한 단계 더 성숙해 거친 몸싸움과 머리받기 슈팅에도 적극적이다. 선수들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대변하는 의협적 기질도 대전이 경기 중 보여주는 저력의 토대다.

부산의 김호곤(51) 감독은 외유내강형의 지도자. 92∼99년 연세대 감독 시절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김호곤 감독은 선수 시절 수비수로 뛴 꼼꼼한 스타일의 지도자.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면밀히 파악해내는 눈이 뛰어나다. 심재원 등 유럽에 갔다가 실패해 돌아온 선수가 빠른 시간 안에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도 이런 세심한 일처리 습관에서 나온다. 상대 전력을 정밀하게 평가하고, 팀 전략의 방향을 명쾌하게 결정한다. 수비에 강조점을 두는 편이지만, 대학 시절 제자인 송종국이 중원에서 제구실 이상을 해주고 있고, 최전방의 마니치나 우성용이 부상에서 회복해 올 시즌 출발은 순조로운 편이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두뇌싸움 벌인다

울산의 김정남(56) 감독도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덕장형 지도자다. 누구도 김정남 감독 밑에서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86∼88년에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86년 멕시코 월드컵과 88년 서울 올림픽 등 중요한 대회 때마다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원만한 성격으로 90년대에는 축구 행정까지 두루 섭렵한 마당발이다. 올 시즌에는 특급 스타인 이천수와 현영민 등을 선발해 감독으로서 자기 식의 축구를 완성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부천의 최윤겸(40) 감독은 지난해 조윤환 감독의 자진사퇴로 코치에서 감독으로 자동 승격한 사례다. 아직까지 최윤겸의 독자적 축구 스타일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젊은데다 지난해 과도기 팀을 잘 이끌어 많은 축구팬들이 최윤겸 감독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니폼니시나 조윤환 등 선배 감독들이 운용한 전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월드컵 이후 다시 살아난 프로축구 열기는 구름처럼 모여드는 관중과 몸을 아끼지 않고 뛰는 선수들 때문에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여기에 10명의 프로감독들이 벌이는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경기 보는 맛이 더욱 쏠쏠하다. 한국을 월드컵 4강까지 올린 히딩크 감독의 성공도 감독을 눈여겨보게 되는 요인이다. 선수에 열광하는 것도 좋지만, 올 시즌에는 감독의 개성과 용병술, 팀 색깔을 고려하면서 축구를 즐기는 것은 어떨까.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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