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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썩은 상아탑에 똥물세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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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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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문학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소설 <캠퍼스>… 강간사건에 얽힌 대학의 음모와 계략

독일의 저술가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독특한 인문학자다. 지난해와 올해 국내에서 차례로 출간돼 화제를 모은 <교양>과 <남자>는 1940년생 이 노학자의 개성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는 두책에서 20여년 동안 대학이라는 성채에서 머물렀다는 이력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쉽고 위트 있는 언어로 해박한 인문적 지식을 풀어내 “인문학이란 골치아픈 것”이라는 통념을 보기좋게 깨뜨렸다.

내부 고발자의 생생한 증언

사진/ <캠퍼스>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조경식 옮김, 민음사 펴냄.
최근 번역된 슈바니츠의 <캠퍼스>(조경식 옮김·민음사 펴냄)는 인문학 교양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학자가 쓴 대중소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책의 내용이 그가 오랫동안 몸담은 대학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야유라서 더욱 눈길을 끈다. 특히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함부르크대학은 그가 재직했던 학교다. 덕분에 이 책이 나오자 호사가들과 언론은 작가가 허구라고 밝힌 등장인물들을 현존인물에서 찾아내기에 골몰하기도 했다. 한 일간지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권력욕 가득한 대학총장이 함부르크대학의 전임총장이라고 밝히자 슈바니츠는 부인하면서도 “자기가 소설 속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뼈있는 부언을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지적인 오락소설’의 옷을 입은 내부 고발자의 변조된 육성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한노 하크만은 함부르크대학의 사회학과 교수. 학자로서의 능력과 교수로서의 성실성, 그리고 적당한 속물근성으로 사회적 명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에게는 한 가지 두통거리가 있다. 논문을 지도하는 학생 밥시와 우연히 맺은 ‘부적절한’ 관계다. 이 관계가 들통나면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가고 가정 역시 위기에 놓일 것을 염려한 하크만은 관계의 정리를 통보하지만, 연구실에서 가진 마지막 정사를 공사하는 인부들이 목격한다. 마침 강간당한 여대생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 우연히 주연을 맡은 밥시는 배역을 확정짓고 싶은 욕심에 실제로 자신이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거짓고백을 하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관계가 전 대학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확대, 증폭되자 대학사회의 모든 ‘관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성 담당관인 바그너 교수는 대학에서의 여성 할당 비율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징계위원회 의장인 베르니는 부총장 자리에 오르고 싶은 야심에서, 총장 샤흐트는 여성 교직원의 표를 얻어 총장으로 재선임되려는 욕망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고 개입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는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매체와 기사를 통해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기자의 의지가, 곧 발간되는 2차 세계대전 관련 기록- 전쟁도발자 독일을 고발하는- 으로부터 언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역사학과 교수들의 계략이,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 법무부 장관의 야망이 끼어든다.

이 과정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목도 섹시한 ‘저명한 대학교수의 학생 강간사건’은 각자의 입지와 욕망에 따라 색색깔로 재구성될 뿐이다. 밥시가 자신의 고백이 거짓이었음을 밝히지만, 이는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관철하려는 전략과 전술의 거미줄 앞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는 유명한 학자였던 터라 여론의 반향을 일으키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던 하크만은 ‘도살되어야 할 멋진 황소’가 되어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꿴 줄에 의해 한 걸음씩 도살장으로 걸어나간다.

‘관계자’들에게는 썩 편치 않은 독서가 되겠지만 나머지 독자들이 슈바니츠의 유머러스한 독설을 즐기며 책장을 넘길수록 대학은 학문의 장으로서의 고결한 자태를 벗어던지고 추악한 욕망의 검투장으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 작품은 작품해설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대학사회를 넘어서 68세대의 지식인들 전반에 대한 비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야심 있는 교수들은 68혁명에 청년기를 헌신한 사람들로 ‘출세욕에 굶주린 돼지’인 샤흐트 총장은 68세대의 좌파운동에서 반(反)보수 이데올로기 논쟁을 통해 대학총장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는 무능력하면서 오직 정치적인 성공에만 관심 있는 베르니는 바로 이 당시 샤흐트가 양산한 대학교수 가운데 한명이다.

해설에 의하면 68년의 좌파운동은 모든 사회적인 영역들을 도덕화하는 경향을 초래했고, 이후 의례적이고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도덕범주는 오히려 나치즘을 가능케 한 낭만주의적 정신병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하크만 사건에서 도덕의 잣대로 그를 매장시키려는 교수들과 언론의 행태에서 볼 수 있듯 강고한 도덕주의 앞에서 진실은 왜곡될 뿐 아니라 진실에 대한 관심 자체마저 지워진다. 작가는 하크만의 파멸을 정치적 올바름의 희생양으로 그림으로써 이러한 도덕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자 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까닭

슈바니츠의 68세대 좌파 지식인과 페니미스트에 대한 비판은 다소 보수적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68세대 지식인들의 문제가 80년대의 민주화를 이끈 우리 사회의 이른바 386세대가 빠진 딜레마와 상당 부분 겹쳐보이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또한 연구업적보다는 재정 지원 확보에 따라 교수 능력을 평가하거나 학과의 인기관리를 위해 전체 학생의 90%가 넘는 학생들에게 A를 주는 행태 등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한국 대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슈바니츠는 함부르크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 작품을 썼다. 그가 그린 대학사회가 아무리 부패했더라도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이 그의 명성이나 자리를 흔들지는 못했다. 한국의 대학교수가 이런 소설을 썼더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까. 한국의 대학현실을 견줘보건대 대학사회에 대한 슈바니츠의 야유와 조롱은 오히려 개방적인 독일의 대학에 대한 역설처럼 느껴져 입맛이 씁쓸해진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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