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마이 발견 둘러싼 고인류 기원 논란… 침팬지와의 관계 등 미스터리 수두룩
투마이(Toumai). 최근 프랑스의 고인류학자인 미셸 브뤼네 교수가 이끄는 국제조사팀에 의해서 북부 차드의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되어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라고 명명된 700만년 전의 고인류 화석에 붙여진 애칭이다. 두뇌가 극히 작고 두개골의 모습이 침팬지와 가까운 반면 송곳니가 작고 눈두덩이가 불룩해 상당히 진화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화석이다. 투마이는 사헬(Sahel) 지역 원주민의 언어로 ‘생명의 희망’(Hope of life)이라는 뜻으로, 건조한 시기가 시작될 때 태어난 아기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다. 이 투마이의 발견은 인류기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찰스 다윈 이전에는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믿음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창조론과 진화론은 뜨거운 논쟁거리다. 다윈은 애초 진화론을 주장하면서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애매한 말로 표현했다. 생물의 진화에 작용하는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그래도 당시 창조론자들은 다윈의 몸뚱어리를 침팬지로 그려서 다윈이 제시한 인류기원의 의미를 비꼬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엄청나게 발달한 유전학과 고인류학 연구의 결과 이제는 적어도 인류가 침팬지와 공동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학계의 확고한 입장이다.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서게 된 시기는 대체로 800만년 전으로 여겨진다.
고인류 진화단계의 잃어버린 고리
이번에 수단의 북쪽에서 발견된 투마이 화석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침팬지와 혼동될 정도로 체질적으로 비슷한 특성이 있다는 점과 시기가 700만년 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기원시기에 대한 분자인류학적인 학설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투마이 화석의 발견으로 그동안 고인류학자들이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상당히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것은 인류기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원의 장소와 고인류의 진화단계에 관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고인류학자들은 인류가 발생한 곳이 동아프리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최근까지 동아프리카의 리프트 계곡은 1950년대 후반 리키에 의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재발견된 이래 가장 많은 고인류화석이 발견됐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고인류 화석들과 석기들이 나타나는 곳이다. 투마이의 발견 이전에는 누구나 동아프리카, 즉 에티오피아나 케냐의 북부 지역에서 인류가 기원했을 것으로 여겼다. 최근에 발견된 580만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Ardipithecus)나 600만년 전의 ‘오로린 튜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들은 모두 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물론 애초부터 동아프리카를 인류의 기원지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난 19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진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구사를 보면 다양한 기록이 나온다.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의사이자 인류 조상 탐구자인 유진 드보아(E. Debois)는 동남아시아의 자바에서 호모에렉투스(당시에는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를 발견해 이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생각했다. 20세기 초엽에는 레이몬드 다트(R. Dart)가 남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남쪽의 원숭이라는 뜻)를 발견해 인류 조상의 연대기를 끌어올렸다. 물론 당시 유럽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유럽의 생물학계가 이 새로운 발견을 인정하지 않은 탓에 발견자들은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감수했다.
동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지일 것이라는 생각은 20세기 후반에 대두됐다.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일대의 퇴적층에서 시간적인 기록을 경신하는 고인류 화석이 지속적으로 발견되면서부터다. 결정적인 것은 70년대 초 에티오피아의 하다르에서 도날드 조헨슨이 ‘루시’(Lucy)라 불리는 새로운 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 afarensis)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 발견으로 인해 동아프리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류의 기원지로 떠올랐다. 1990년대 중반에는 오스크랄로피테쿠스보다 더 오래된 특징을 가진 아르디피테쿠스가 발견되어 그 위치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동아프리카에서 2500km나 떨어진 사하라에서 더 오래된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인류의 기원지가 동아프리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발견이다.
투마이가 던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은 인류가 기원하는 과정이 과거 수십년 동안 생각해온 것처럼 사바나에서 생존경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70년대에 루시가 발견되었을 때 ‘직립하여 걷는 원숭이’인 인류가 나타난 것은 사바나에서 다른 원숭이들과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직립보행은 사바나에서 음식을 구하고 운반하는 데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투마이는 사바나 환경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고 숲 환경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인 아르디피테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증거들로 판단할 때 인류로서의 진화는 숲이 사라지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사바나에서 산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직립하게 되었을까. 새로운 설명을 찾아내야 한다. 원래 살고 있었던 숲 속에서도 경쟁이 심해졌던 것일까? 또한 반면 루시가 가지고 있던 숲 속에서의 특성, 즉 발뼈의 구조가 나무를 타는 원숭이들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써 루시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고 하는 견해는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이번 투마이의 발견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인류는 다양한 진화 경로를 밟았다
지금 고인류학자들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투마이의 골격이 침팬지와 유사하게 생긴 점도 있지만 상당히 발달한 고인류의 특성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고인류의 진화가 단선적, 즉 하나의 계통으로 진화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모습의 고인류들이 지역에 따라 또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상당 기간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고인류의 화석들을 차이가 큼에도 하나의 계통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투마이는 고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했다. 게다가 투마이의 출현은 침팬지와 사람과의 진화적인 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어 그동안 논란의 핵심이었던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새로이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현생인류로의 진화과정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에 대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퍼즐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사진/ 인류기원에 관한 통설을 뒤엎는 투마이 화석. (GAMMA)

사진/ 580만년전의 아르디피테쿠스의 턱뼈.
이번에 수단의 북쪽에서 발견된 투마이 화석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침팬지와 혼동될 정도로 체질적으로 비슷한 특성이 있다는 점과 시기가 700만년 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기원시기에 대한 분자인류학적인 학설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투마이 화석의 발견으로 그동안 고인류학자들이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상당히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것은 인류기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원의 장소와 고인류의 진화단계에 관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고인류학자들은 인류가 발생한 곳이 동아프리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최근까지 동아프리카의 리프트 계곡은 1950년대 후반 리키에 의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재발견된 이래 가장 많은 고인류화석이 발견됐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고인류 화석들과 석기들이 나타나는 곳이다. 투마이의 발견 이전에는 누구나 동아프리카, 즉 에티오피아나 케냐의 북부 지역에서 인류가 기원했을 것으로 여겼다. 최근에 발견된 580만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Ardipithecus)나 600만년 전의 ‘오로린 튜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들은 모두 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물론 애초부터 동아프리카를 인류의 기원지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난 19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진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구사를 보면 다양한 기록이 나온다.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의사이자 인류 조상 탐구자인 유진 드보아(E. Debois)는 동남아시아의 자바에서 호모에렉투스(당시에는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를 발견해 이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생각했다. 20세기 초엽에는 레이몬드 다트(R. Dart)가 남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남쪽의 원숭이라는 뜻)를 발견해 인류 조상의 연대기를 끌어올렸다. 물론 당시 유럽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유럽의 생물학계가 이 새로운 발견을 인정하지 않은 탓에 발견자들은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감수했다.

사진/ 인류의 기원지는 여러 곳일 가능성이 높다. 원시인류의 발자국이 있는 레이톨리 유적지(왼쪽). 침팬지와 인간은 생존경쟁을 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