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강국 시민 구보씨의 정보화에 허우적대는 우울한 하루
오전 9시. 출근길의 전철 안에서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누굴까? 기대감으로 폴더를 열어보았지만 문자창에는 어이없는 문구가 올라와 있다. “외롭지 않으십니까? 당신을 위한….” 행여 옆사람이 보지나 않았을까 재빨리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면서 마치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하기라도 한 듯 기분이 찜찜하다. 그렇게 숨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11시. 기다리던 거래처 대신 정수기를 싸게 빌려주겠다는 판촉전화와 전망 좋은 부동산이 있다는 홍보성 전화가 연달아 울려댔다. 평소 같으면 적당히 “관심없습니다” 하고 끊었지만 받는 사람이 채 응답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광고문구를 쏘아대는 홍보원의 무례함에 짜증이 났다.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이런 홍보전화를 무작위로 걸어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겁니까?” 그러나 홍보원은 당당하다.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드리려는 취지에서….”
문자 메시지·스팸메일에 붙들린 일상
점심시간에 메일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접속했다. 로그인을 하자마자 원하지도 않은 미팅 권유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이상형을 찾아드립니다. 한번 클릭하시면 포인트가 30점. 채팅만 해도….” 서둘러 “오늘 하루 다시 이 화면을 열지 않음”을 클릭하고 ‘닫음’을 누른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 하루 똑같은 클릭질을 서너 차례 반복해야 했고, 팝업 광고화면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왔다. 읽지 않은 편지가 20통이 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메일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광고], (광고), ‘홍보’, ‘좋은 소식’ 등의 문구가 제목에 달린 비교적 솔직한 홍보메일이 절반이다. 홍보메일을 걸러내는 필터링을 피하기 위해 스팸메일들이 끝없이 진화하면서 갖가지 변형적인 표기법을 개발하는 모습은 거의 처절할 지경이다. 그 밖에 ‘RE; 질문에 대한 답’, ‘있잖아’, ‘오빠’ 등처럼 광고인지 아닌지 구분이 불가능한 사기성 홍보메일까지 합치면 하루에 받는 메일의 90% 이상이 스팸이다. 수신사양 등록한도인 100통이 넘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기 때문에 요즈음은 거의 무방비상태로 스팸에 노출된 느낌이다. 결국 수시로 편지함을 열어 스팸을 지우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수신편지 100통이 넘으면 더 이상 수신이 불가능해져서 정작 필요한 편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의 메일을 스팸으로 오인해 지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답장도 못해 성의없는 친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작 내가 확인할 메일은 한통에 지나지 않는다. 메일 한통을 확인하기 위해 보고 싶지 않은 동화상과 제품 이미지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30번에 가까운 클릭을 하고, 1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니…. 오후 2시. 정보검색을 위해 평소 즐겨쓰는 검색엔진에 접속했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배너광고와 돌출광고들이 정신을 어지럽힌다. 저마다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색깔과 이미지로 악을 써대는 광고들은 당장이라도 화면에서 튀어나와 멱살을 잡아끌기라도 할 듯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이 검색엔진은 새로 업그레이드를 했는지 어제까지도 나타나지 않은 ‘쇼핑’ 홍보화면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실수로 잘못 클릭이라도 했다가는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만다. 마치 장애물 경주를 하듯 간신히 얼마 전에 유용한 정보를 얻은 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어느새 유료로 전환했는지 유료회원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묻는 냉랭한 메시지와 이용료를 알리는 복잡한 계산표를 보여줄 뿐이다. 실망감을 안고 다른 사이트들을 찾았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단 한 조각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고,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낱낱이 알려주어야 했다. 과연 내가 주는 정보보다 얻는 정보가 많은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원하지 않는 항목은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문구 뒤에는 어김없이 “기입하실 경우에는 포인트가 주어지고, 유용한 혜택이 있습니다”라는 거지반 협박에 가까운 권유가 따라붙는다. 오후 6시 퇴근길의 전철 안. ‘역술인과 1:1 상담’을 알리는 또 한번의 문자 메시지. 그리고 언제 전철에까지 진출했는지 객차마다 즐비하게 달린 TV 모니터는 잠깐씩 ‘짧은’ 월드컵 하이라이트나 뉴스를 보여주면서 승객들의 시선을 붙잡은 다음 ‘긴’ 광고를 내보낸다. 광고 사이에 짧은 볼거리가 미끼처럼 들어 있는 셈이다. 정보강국의 시민 구보씨에게는 출퇴근길의 짧은 방심과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젠 정보화 잔치는 끝났다 얼마 전 외국의 한 과학잡지는 ‘파티는 끝났다’는 자조어린 제목의 사설에서 정보화와 인터넷이 가져올 혁명과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는 한낱 공염불이 된 지 이미 오래이고, 사이버 공간은 검열과 상업화로 찌들어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한탄했다. 9·11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하에 마구잡이로 이메일을 검열하고, 주요 기관에 대한 방어벽을 높이 쌓아올렸다. 한편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스팸메일로 대표되는 과도한 상업화 때문에 정보자유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조차 스스로 정보를 거르고 장벽을 쳐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 내몰렸다. 이른바 검열과 상업화의 이중주가 빚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최근 ‘소리바다’에 내려진 불법 판결은 소문난 사이버 잔치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마지막 국수 한 가닥이 잘려나간 상징적인 사건이다. 어느덧 사람들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인터넷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산간오지와 독도에까지 기지국이 설치되고, 인터넷 접속이 불통이라도 되면 심리적 불안감마저 느낄 지경이다. 그러자 그동안 장밋빛 안개에 싸여 있던 정보화의 얼굴이, 음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SF)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거대한 광고판의 모습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정보는 그에 대한 주체의 수요나 통제를 벗어나 강요되고 주입된다. 사람들은 점차 자신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주어지는 정보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수동적 지위에 익숙해진다. 과연 그것이 나의 선택일까?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 (김종수 기자)
점심시간에 메일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접속했다. 로그인을 하자마자 원하지도 않은 미팅 권유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이상형을 찾아드립니다. 한번 클릭하시면 포인트가 30점. 채팅만 해도….” 서둘러 “오늘 하루 다시 이 화면을 열지 않음”을 클릭하고 ‘닫음’을 누른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 하루 똑같은 클릭질을 서너 차례 반복해야 했고, 팝업 광고화면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왔다. 읽지 않은 편지가 20통이 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메일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광고], (광고), ‘홍보’, ‘좋은 소식’ 등의 문구가 제목에 달린 비교적 솔직한 홍보메일이 절반이다. 홍보메일을 걸러내는 필터링을 피하기 위해 스팸메일들이 끝없이 진화하면서 갖가지 변형적인 표기법을 개발하는 모습은 거의 처절할 지경이다. 그 밖에 ‘RE; 질문에 대한 답’, ‘있잖아’, ‘오빠’ 등처럼 광고인지 아닌지 구분이 불가능한 사기성 홍보메일까지 합치면 하루에 받는 메일의 90% 이상이 스팸이다. 수신사양 등록한도인 100통이 넘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기 때문에 요즈음은 거의 무방비상태로 스팸에 노출된 느낌이다. 결국 수시로 편지함을 열어 스팸을 지우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수신편지 100통이 넘으면 더 이상 수신이 불가능해져서 정작 필요한 편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의 메일을 스팸으로 오인해 지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답장도 못해 성의없는 친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작 내가 확인할 메일은 한통에 지나지 않는다. 메일 한통을 확인하기 위해 보고 싶지 않은 동화상과 제품 이미지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30번에 가까운 클릭을 하고, 1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니…. 오후 2시. 정보검색을 위해 평소 즐겨쓰는 검색엔진에 접속했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배너광고와 돌출광고들이 정신을 어지럽힌다. 저마다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색깔과 이미지로 악을 써대는 광고들은 당장이라도 화면에서 튀어나와 멱살을 잡아끌기라도 할 듯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이 검색엔진은 새로 업그레이드를 했는지 어제까지도 나타나지 않은 ‘쇼핑’ 홍보화면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실수로 잘못 클릭이라도 했다가는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만다. 마치 장애물 경주를 하듯 간신히 얼마 전에 유용한 정보를 얻은 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어느새 유료로 전환했는지 유료회원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묻는 냉랭한 메시지와 이용료를 알리는 복잡한 계산표를 보여줄 뿐이다. 실망감을 안고 다른 사이트들을 찾았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단 한 조각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고,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낱낱이 알려주어야 했다. 과연 내가 주는 정보보다 얻는 정보가 많은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원하지 않는 항목은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문구 뒤에는 어김없이 “기입하실 경우에는 포인트가 주어지고, 유용한 혜택이 있습니다”라는 거지반 협박에 가까운 권유가 따라붙는다. 오후 6시 퇴근길의 전철 안. ‘역술인과 1:1 상담’을 알리는 또 한번의 문자 메시지. 그리고 언제 전철에까지 진출했는지 객차마다 즐비하게 달린 TV 모니터는 잠깐씩 ‘짧은’ 월드컵 하이라이트나 뉴스를 보여주면서 승객들의 시선을 붙잡은 다음 ‘긴’ 광고를 내보낸다. 광고 사이에 짧은 볼거리가 미끼처럼 들어 있는 셈이다. 정보강국의 시민 구보씨에게는 출퇴근길의 짧은 방심과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젠 정보화 잔치는 끝났다 얼마 전 외국의 한 과학잡지는 ‘파티는 끝났다’는 자조어린 제목의 사설에서 정보화와 인터넷이 가져올 혁명과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는 한낱 공염불이 된 지 이미 오래이고, 사이버 공간은 검열과 상업화로 찌들어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한탄했다. 9·11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하에 마구잡이로 이메일을 검열하고, 주요 기관에 대한 방어벽을 높이 쌓아올렸다. 한편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스팸메일로 대표되는 과도한 상업화 때문에 정보자유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조차 스스로 정보를 거르고 장벽을 쳐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 내몰렸다. 이른바 검열과 상업화의 이중주가 빚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최근 ‘소리바다’에 내려진 불법 판결은 소문난 사이버 잔치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마지막 국수 한 가닥이 잘려나간 상징적인 사건이다. 어느덧 사람들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인터넷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산간오지와 독도에까지 기지국이 설치되고, 인터넷 접속이 불통이라도 되면 심리적 불안감마저 느낄 지경이다. 그러자 그동안 장밋빛 안개에 싸여 있던 정보화의 얼굴이, 음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SF)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거대한 광고판의 모습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정보는 그에 대한 주체의 수요나 통제를 벗어나 강요되고 주입된다. 사람들은 점차 자신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주어지는 정보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수동적 지위에 익숙해진다. 과연 그것이 나의 선택일까?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