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사고의 독창성이 매우 뛰어났다. 천재적인 물리학자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한번은 멕시코 과학교육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습태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빛의 성질에 대한 이해는 제쳐둔 채, “햇빛은 무편광, 수면에서 반사된 빛은 편광”이라는 사실을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배경이다. 시험이 바로 그런 식으로 답하도록 출제되기 때문이었다. 이해한 학생이나 암기만 한 힉생이나 정답을 쓰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암기식·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우리도 누구 못지않게 절감해왔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해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한다. 이해는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해가 명확해야 암기도 쉽게 이루어지고 오래 지속된다. 오늘날 특히 각광받는 ‘창의력’은 올바른 이해가 없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는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노력은 어딘지 모르게 편법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애초 사람들이 단순 암기에 매달린 데에는 열심히 공부하려는 생각이 물론 많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해를 건너뛴 편한 공부’를 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우리의 교과과정은 7차례나 개편됐다. 우여곡절이야 어떻든 대세는 이제 ‘이해가 어우러진 공부’를 하는 쪽으로 정립됐다. 좋든 싫든 다시는 예전의 그릇된 교육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속담은 역시 진리일까? ‘단순 암기’ 대신 ‘단순 이해’라는 새로운 편법들이 싹을 내밀고 있다. 서점을 둘러보면 그런 맛을 풍기는 책들이 넘쳐난다. 정신에 대한 음식이란 점만 다를 뿐, 본질에서는 육신에 대한 인스턴트 식품과 다를 게 없다.
단순 암기도 곤란하지만 단순 이해도 마찬가지다. ‘단순’의 차원을 넘는 ‘마음에 닿는 이해’가 필요하다. 요컨대 ‘이해와 암기 사이’에 ‘느낌’을 넣어야 한다. 파인만의 예를 보자. 수면에서 빛이 반사하는 것은 흔히 즐기는 ‘제비 뜨기’를 상상하면 좋다. 납작한 돌을 수평으로 뉘어서 던지면 무거운 돌도 여러번 튀면서 나아간다. 그러나 세워 던지면 그냥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햇빛은 자연광으로 온갖 종류의 돌이 섞여 있다. 그것들이 수면에 부딪히면 수면과 거의 평행인 것들만 반사된다. 그래서 수면의 반사광은 편광이다. ‘빛의 반사’를 수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족하다. ‘느끼는 이해’를 곁들여야 한다.
다른 예로서 운동에너지를 보자. 그 식이 ‘mv²/2’라는 사실은 거의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속도의 제곱’이란 점이 중요하다. 야구의 강속구는 시속 140km 이상의 공을 말한다. 한편 권총 탄환의 속도는 10배 정도다. 무게로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총알의 위험성은 이 빠른 속도 때문이다. 과속 운전의 문제점도 ‘느끼는 이해’로써 훨씬 실감나게 기억된다. 속도를 2배로 하면 에너지는 4배가 들고 충돌할 때 파괴력도 4배가 된다.
맥도날드·피자헛 등의 패스트푸드 업체가 미국인의 비만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 이해 당사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한다. 단순 이해는 가볍고 빠르고 산뜻한 ‘지식의 패스트푸드’다. 그러나 우리의 드높은 교육열과 맞물리면 원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해와 암기 사이에 차분한 음미의 과정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건강도 육체 건강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