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호의 환상(幻像)박물관
1960년대 한국 가정의 풍경 <가정백과>… 서구적 가치로 근대적 가정 모델 제시
우리 집에는 아주 특별한 책이 한권 있었다. 그 책은 어른들의 세상이 궁금하던 나에게 그 세계의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별로 없고 집에 틀어박혀 책 읽기에만 열중한 내가 그나마 세상에 눈뜬 것은 두께가 육중한 <가정백과·삼중당, 1965> 덕이었다. 소가족 제도에서 현모양처 만들기
사진/ 도상은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다. 잉꼬부부는 마냥 행복해보인다. 그러나 '새장'이라는 장치는 부부들이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을 암시하고 있다. <가정백과>에 실린 이 사진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가정에서 세계가 쉬고, 가정에서 역사가 움튼다"(왼쪽), "첫날에 고요히 고독이 끝난다/ 첫날에 고요히 영원이 비롯한다"(오른쪽).
내가 태어난 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경제개발의 여파에 따라 도시화와 산업화가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에 여러 가지 사회변화가 잇따랐는데 부모를 모시지 않고, 친인척과 멀리 떨어져 사는 ‘독립가족’의 등장도 이에 속할 것이다. <가정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재래의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른바 가장적 대가족제도를 근본으로 삼아왔습니다. 조상으로부터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가계를 이어가는 일이 중하고 이에 따라서 한 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관혼상제의 예절과 아울러 친척이며 상속과 양자의 문제가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제도는 오늘날 커다란 변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개별적 소가족 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정 내 대소사를 일일이 물어볼 시어머니와 친인척이 없게 된 ‘신세대’ 주부들의 어려운 처지에 도움을 주려고 만든 것이 <가정백과>였고, 이 책은 6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와 도상으로 가득하다. 지금 보면 블랙 코미디 같은 글귀도 있어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서로 사랑을 속삭일지언정 성교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는 특히 여자 편에서 더욱 삼가야 될 일이다. 그러기에 약혼의 기간을 너무 오래 두어서는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 되도록 짧게 잡아야 될 것입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혼전성교는 약혼 중의 관계였지, 약혼도 안 한 젊은 남녀가 관계를 한다는 일은 아예 거론 자체도 하지 않았다. 가족계획도 이 당시부터 시행되어 피임법을 권장했다. 그러나 “모처럼 좋은 목적으로 마련한 피임의 방법을 그릇된 데에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으며, 결혼 전의 처녀들이 연애한다고 함부로 성교를 저질러 이런 피임법을 이용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데에 이용한다면 더욱 나쁜 일”이라고 <가정백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가정백과>는 가정생활을 현대화할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 집 구조를 한옥보다는 ‘산뜻한’ 양옥으로 권하는 등 재래식보다는 ‘서구적’인 것을 이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한 가지 고집하는 재래식이 있는데, 바로 주부의 역할이다. “요사이 여러 가지 직업이 여성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만… 가정을 가진 주부라면 역시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자녀 교육에 유익하도록 집에 머무르며 수공업적이고 가내공업인 일이 가정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시대는 결혼한 여성은 남편 뒷바라지를 잘 하고, 자녀를 잘 키우는 현모양처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반면에 ‘죽은 남편의 어머니를 일생 동안 부양해야 되느냐’는 제목의 글에서는 여성의 진취성을 강조한다. 남편이 죽은 지 3년 된 과부가 개가할 결심을 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는 시어미를 일생 동안 부양하여야 하니 개가를 허락할 수 없다”고 나무랐다. <가정백과>는 이 사례를 들면서 “조선시대에는 남편을 여읜 부녀는 개가할 수 없다는 나라의 법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민법, 기타 법규에서는 이런 것을 인정치 않고 있으므로 자유로 개가할 수 있습니다”라고 봉건도덕을 성토한다. <가정백과>의 하이라이트는 책 가운데 깊숙이 자리잡은 ‘성생활과 가족계획’이란 장이다. 아마도 나는 이것을 백번도 넘게 읽었을 것이다. 온몸이 뜨겁게 달궈지는 걸 느끼며 한장 한장 뚫어지게 침을 꼴깍 삼키며 보았다.
“흔히 결혼을 앞둔 여성들은, 첫날밤의 매너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20여년을 지켜온 처녀가 그 하룻밤에 사라져버린다는 아쉬움과 또한 그날 밤의 한순간으로 가장 중대한 여성의 한 갈림길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첫날밤에) 반드시 팬티를 입고 있도록 권고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날부터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경우, 남성에 대해 공격욕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아울러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라는 자상한 충고(?)까지 한다.
‘침실의 무드’라는 대목에서는 난데없이 정치와 섹스의 관계를 논한다. “민주주의의 제일보는 부부의 침실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기보다는 일종의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부부의 침실 때문에 답보상태에서 진전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당장 침실로 달려가서 확인하기 바란다. 자신들의 침실이 이 나라 민주화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
침실의 무드로 민주주의 계몽?
<가정백과>를 추천하는 말은 이렇다. “요즈음 우리 나라를 근대화해야겠다는 말들을 흔히 합니다마는, 여기서 우리는 가정의 근대화도 아울러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권위와 인습에서 헤어나지 못한 봉건적 가정을 협조와 합리적 관리의 근대적 가정으로 지양시키자는 것입니다.”
<가정백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나온 책이다. 봉건적 가정이 붕괴하고 새로운 근대적 가정의 탄생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온 가정이 참고해야 할 근대적 가정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 책을 ‘참조’하며 나의 가족은 형성되었고, 또한 나는 그 책을 통하여 ‘근대성’이란 걸 익혔다. 그러나 지금 나의 집에는 ‘가정백과’가 없다. 나의 아내는 인터넷과 <한겨레> 월요일치(‘함께하는 교육’)로 현대적 가정을 꾸미고 있다.
도상학 연구가 alhaji@hanmail.net
|
‘이정우의 철학카페’에 이어 ‘김장호의 환상(幻像)박물관’과 ‘이섭의 색정만가’가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빈치출판사의 주간으로 일하는 김장호씨는 ‘환상박물관’을 통해 이미지와 도상으로 읽는 새로운 문화사를 엮어갑니다. 김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상학 연구가, 종교사 연구가, 식도락 연구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색정만가’는 다양한 이미지로 드러나는 욕망의 실체를 에로티시즘의 관점으로 풀어갑니다.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아트컨설팅서울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이씨는 <에로스 훔쳐보기> <에로스 바로보기>(박삼철 공저) 등의 책에서 미술의 관점으로 에로스를 새롭게 읽어왔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의 자화상을 새롭게 그려갈 새 연재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
우리 집에는 아주 특별한 책이 한권 있었다. 그 책은 어른들의 세상이 궁금하던 나에게 그 세계의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별로 없고 집에 틀어박혀 책 읽기에만 열중한 내가 그나마 세상에 눈뜬 것은 두께가 육중한 <가정백과·삼중당, 1965> 덕이었다. 소가족 제도에서 현모양처 만들기

내가 태어난 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경제개발의 여파에 따라 도시화와 산업화가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에 여러 가지 사회변화가 잇따랐는데 부모를 모시지 않고, 친인척과 멀리 떨어져 사는 ‘독립가족’의 등장도 이에 속할 것이다. <가정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재래의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른바 가장적 대가족제도를 근본으로 삼아왔습니다. 조상으로부터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가계를 이어가는 일이 중하고 이에 따라서 한 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관혼상제의 예절과 아울러 친척이며 상속과 양자의 문제가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제도는 오늘날 커다란 변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개별적 소가족 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정 내 대소사를 일일이 물어볼 시어머니와 친인척이 없게 된 ‘신세대’ 주부들의 어려운 처지에 도움을 주려고 만든 것이 <가정백과>였고, 이 책은 6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와 도상으로 가득하다. 지금 보면 블랙 코미디 같은 글귀도 있어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서로 사랑을 속삭일지언정 성교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는 특히 여자 편에서 더욱 삼가야 될 일이다. 그러기에 약혼의 기간을 너무 오래 두어서는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 되도록 짧게 잡아야 될 것입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혼전성교는 약혼 중의 관계였지, 약혼도 안 한 젊은 남녀가 관계를 한다는 일은 아예 거론 자체도 하지 않았다. 가족계획도 이 당시부터 시행되어 피임법을 권장했다. 그러나 “모처럼 좋은 목적으로 마련한 피임의 방법을 그릇된 데에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으며, 결혼 전의 처녀들이 연애한다고 함부로 성교를 저질러 이런 피임법을 이용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데에 이용한다면 더욱 나쁜 일”이라고 <가정백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가정백과>는 가정생활을 현대화할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 집 구조를 한옥보다는 ‘산뜻한’ 양옥으로 권하는 등 재래식보다는 ‘서구적’인 것을 이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한 가지 고집하는 재래식이 있는데, 바로 주부의 역할이다. “요사이 여러 가지 직업이 여성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만… 가정을 가진 주부라면 역시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자녀 교육에 유익하도록 집에 머무르며 수공업적이고 가내공업인 일이 가정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시대는 결혼한 여성은 남편 뒷바라지를 잘 하고, 자녀를 잘 키우는 현모양처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반면에 ‘죽은 남편의 어머니를 일생 동안 부양해야 되느냐’는 제목의 글에서는 여성의 진취성을 강조한다. 남편이 죽은 지 3년 된 과부가 개가할 결심을 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는 시어미를 일생 동안 부양하여야 하니 개가를 허락할 수 없다”고 나무랐다. <가정백과>는 이 사례를 들면서 “조선시대에는 남편을 여읜 부녀는 개가할 수 없다는 나라의 법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민법, 기타 법규에서는 이런 것을 인정치 않고 있으므로 자유로 개가할 수 있습니다”라고 봉건도덕을 성토한다. <가정백과>의 하이라이트는 책 가운데 깊숙이 자리잡은 ‘성생활과 가족계획’이란 장이다. 아마도 나는 이것을 백번도 넘게 읽었을 것이다. 온몸이 뜨겁게 달궈지는 걸 느끼며 한장 한장 뚫어지게 침을 꼴깍 삼키며 보았다.

사진/ 예전에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들이 걱정하며 들려주던 은밀한 '이야기'는 어느새 적나라한 '이미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저 인형들은 뭐란말인가. 하나 둘 셋, 심야 국민체조교본인가.


사진/ 숨막히게 위엄을 부리는 근대주택을 보라. 높은 담과 꽉 닫힌 문은 근대성의 권위를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