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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작은 거인’이 반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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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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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가요 독집음반 <팝스 앤 록> 낸 김수철의 ‘못 다 한 이야기’

사진/ (박승화 기자)
‘작은 거인’이 돌아왔다. 국악 음반 <팔만대장경> 이후 5년 만이지만, 가요 독집음반으로는 12년 만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작은 체구에 기타를 치고 펄쩍펄쩍 뛰면서 힘에 넘치는 고음역대의 창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새 앨범 <팝스 앤 록>의 타이틀곡 <나도야 간다>에서 김수철씨는 예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노래만이 아니다. <나도야 간다>의 뮤직비디오는 그 자신이 주연한 영화 <고래사냥>(1983년)을 리메이크했다.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던 노래 <고래사냥> 대신 “젊은 세월을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며 당시 함께 주연한 안성기·이미숙씨와 다시 한번 동해안으로 향한다. 이건 그와 함께 성장해온 30, 40대를 향한 선물이다. 그 시절 젊은 모습은 박용진·최보은씨가 대신하지만 30년이란 세월의 거리는 그리 멀어보이지 않는다(뮤직비디오는 김수철 홈페이지 www.kimsoochul.com에서 볼 수 있다).

세대를 아우른 폭넓은 음악세계

젊은 세대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자꾸 이러지마Ⅰ>는 귀에 착착 감기는 힙합곡이다. 보컬을 맡은 장혜진씨의 경쾌한 노래가 김덕수씨의 아들 김용훈씨가 부르는 랩과 잘 어울린다. 랩 버전으로 다시 편곡된 <자꾸 이러지마Ⅱ>도 있다. 모든 곡을 김수철씨가 작사·작곡·편곡했지만, 걸출한 후배 가수들이 부른 음반의 절반을 보더라도 넘쳐나는 ‘팬 서비스 정신’을 만날 수 있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주로 댄스음악에 쏟아온 박미경씨가 슬픈 단조풍의 발라드 <다시 또>를, “원래 필링이 좋은” 자우림의 김윤아씨가 소울풍의 <나와>를, 분위기 넘치는 로커 신해철씨가 <이대로가 좋을 뿐야>를, 작가주의 뮤지션 이상은씨가 뉴에이지풍의 <보고싶은 너>를 부른다. 심지어 <원 코리아>에서는 김건모·김종서·신승훈·이광조·이적·김현정씨 등이 가세해 코러스를 넣어준다.


“재미있잖아요. 곡을 쓸 때부터 노래 불러줄 후배를 염두에 뒀어요. 적어도 한두명은 안 되겠지 했는데, 모두 다 녹음에 참여해줘 너무 고마워요. 뉴욕에 사는 해철이에게 데모 테이프를 보냈더니 ‘고리타분한 거 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 재미있다’며 훌쩍 날아와서 노래해주고는 다시 날아갔어요. 요즘에는 선배가 불러도 다 오는 게 아니라면서요? <원 코리아> 녹음할 때는 모인 후배들 자신이 놀라더군요.” 한창 국악작업에 몰두한 98년부터 ‘기타 워밍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록을 하고 싶고, 밴드도 다시 해보고 싶은 맘에 2000년에 이미 곡들을 다 준비했지만, 월드컵 개막식 음악을 준비하느라고 발표는 무려 1년 반이 늦어졌다.

“워낙 비밀리에 일하느라 얘기를 못했지만 개막식 테마음악을 만드는 건 무슨 작전 같았어요. 반젤리스와 함께 작업하느라 그리스까지 갔는데, 아시아 음악 하면 중국·일본의 색깔이 짙게 들어갈 것 같아 우리 음악을 충분히 알려야 했거든요.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하고 오래 공들인 탓에 결국 일본에 한방 먹일 수 있었죠.”

하긴 그는 깊은 술맛을 우려내듯 늘 무르익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뭔가를 해왔다.

“국악에 손댄 건 80년이었어요. <서편제>의 영화음악을 했을 때, 일부에서 ‘지가 무슨 국악을 알아’했지만 그때 이미 13년이나 된 시점이었죠. 그때는 괜히 잘난 체한다고 그럴까봐 말을 못했지만….”

후배 가수들 동참… 국악 작업 일시휴업

아무튼 국악의 현대화 작업은 당분간 접고 가요 쪽에 주력할 생각이다. 기타를 치니 마음이 편해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란다. “사춘기를 기타 치며 보낸 탓 같다”는 말처럼, 중학교 2학년이던 72년에 기타를 잡았으니 벌써 30년이나 되었다.

“(전성기 시절의) 과거는 잊어버리슈.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이제 어떤 연주를 들려줄 것인가가 과거보다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일곱색깔 무지개>의 정열과, <못 다 핀 꽃 한 송이>의 서정어린 향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저기를 봐> <난 왜 이럴까?> <왜그래?> 등의 노래와 기타 연주를 들어보면 두 가지 맛이 고루 섞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시도한 트로트 <잊을 수 없어요>를 듣다 보면, 소리에 관한 그의 다양한 취향이 새삼스럽다. 만화영화 주제곡으로 만들었던 <치키치키차카>는 어른도 좋아하는 어린이 노래의 걸작이 아니었는가.

사실 그를 만날 때 약간의 부담감을 느껴야 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의 연예프로그램에서 ‘색다른’ 그를 보았기 때문이다. 부인과의 갈등 때문에 울분과 안타까움에 휩싸인 모습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자리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해맑은 웃음에 따발총 같은 말솜씨로 상대방을 즐겁고 편하게 해주던 이가 ‘김수철’이었다. ‘다행스레’ 그는 예의 모습 그대로였다. 창법이 여전하다고 했더니 “‘저’스럽게 해야지 달리하면 이상하잖아”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도 그렇고, 댄스가수들도 보기 좋다며 열심히 옹호론을 펴는 것까지.

“바빠서 음악을 잘 듣지 못하는데,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힙합도 그렇고 댄스곡도 아주 재미있어요. 춤 잘 추는 것도 실력 아닌가. 댄스도 나름대로 장르로 정착한 것 같아요. 요즘 듣는 것과 보는 것이 같이 가니까, 전 완전히 접수했어요. 댄스는 댄스 쪽의 기준으로 봐야지 자꾸 구분하려니까 젊은 세대와 대화가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신인의 기분으로 꽉 찬 스케줄을 직접 조정해가며 정신없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7개월쯤 됐어요. 이제 적응이 많이 됐죠. 열살, 네살의 두 딸을 못 보고 지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법정에서 진행 중인 이혼소송의 결과에 따라 또 다른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마음이 진짜 아프면 아무 것도 못 해,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하는 말을 슬쩍 하는 걸 보면 힘겨운 시간은 어느 정도 보내버렸나 보다. 열심히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는 그의 활력은 결국 아버지도 막지 못한 음악에서 나온다.

“밴드 ‘작은 거인’ 시절에는 물 한컵 먹으면 되던 게 요즘에는 서너컵 먹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기타 치면서 뛰는 게. 에어로 스미스, 에릭 클랩턴, 믹 재거 등 끝까지 체력을 유지하는 외국 뮤지션들 보면 정말 존경할 만해요. 필링을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려면, 록이 얼마나 힘든데요.”

아픔 떨치고 기타 연습에 빠져

작은 거인의 부활이라고 할 만한 밴드 결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당장 현실화될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친구들하고 해야 힘이 넘치는 록을 할 수 있는데, 개인기까지 갖춘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멤버를 모아 공연은 반드시 하겠다고 한다. 30년 넘게 이어지는 그의 줄기찬 음악행보를 보면 게으름을 반성하는 뜻에서 이번 음반에 넣었다는 <난 왜 이럴까?>는 가혹한 엄살이다.

“도대체 왜 이래?/ 난 너무 게을러/ …/ 말로만 다해 놓고 놀고 싶어 안달하네/ 생각만 해놓고 다했다고 놀고 있네/ 일들만 벌려 놓고 마무리 다 못 짓네/ 욕심만 앞세우고 게으르기 짝이 없네”

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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