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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젊음의 샘에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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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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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연구자 51명 노화방지제의 ‘사기행각’ 고발하는 공동성명 발표

사진/ 노화방지제라는 이름으로 시판되는 각종 호르몬들. 이들 제품은 과학적으로 효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박승화 기자)
레오나르드 헤이플릭은 30여년 전에 인간의 세포분열 횟수가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체시계가 벽걸이시계처럼 영구히 작동하지 않고 일정한 수명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해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노화 과정과 그 이유>(How and Why We Age)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세포가 분열하고 재생하는 능력이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telomere)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라는 효소를 공급하면 인간의 세포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렇듯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인간의 생물학적 운명을 바꾸는 데 매달렸다. 그런 그가 최근 시카고대학 노화방지연구센터 일반의학 교수 제이 올젠스키 등 저명한 노화 연구자 51명과 함께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젊음의 샘’은 없다”며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노화방지제의 ‘사기행각’에 놀아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여성 호르몬 부작용은 빙산의 일각

사실 노화 극복과 생명 연장은 인간의 오래된 화두이다. 현재 노화 연구는 비즈니스적 기대와 맞물려 거대한 회춘산업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한겨레21> 413호 특집 ‘노화를 즐겨라!’ 참조). 노화 방지제 시장에 뛰어든 제품들은 모두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시판하고 있는 모든 노화 방지제는 의사(擬似) 상품으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심지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공동성명을 내게 됐다. 실제로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폐경기 여성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치료법으로 오래 전부터 이용한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복합호르몬 요법에 치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젊음과 건강을 보장하는 여성호르몬이 유방암(24% 증가), 뇌졸중(41%), 심장발작(29%) 등의 발병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화에 관한 진실을 추적한 연구자들의 중간 보고서는 생명 연장의 꿈이 희망사항임을 입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화 속도를 조절하는 효과가 입증된 노화 방지제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화와 죽음에 관한 유전적 프로그램도 명확하지 않다. 노화에 따라 생리적 쇠퇴를 일으키도록 특별히 설계된 유전인자가 없다는 것은 노화를 질병처럼 손쉽게 다스리기 힘들다는 말이다. 당연히 인간처럼 복잡한 유기체에서 소수의 유전자가 개입해서 복잡한 유전자 배열을 조작하거나 생명의 소멸 시기를 조절하는 게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물론 건강한 삶의 기간을 연장한다면 노화 때문에 발생하는 심장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각종 암 등의 발병 시기를 늦추는 것은 부분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화에 따른 질병을 다스려도 손상된 신체조직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노화를 조절해 생명 연장에 이르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필자들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노화 방지제가 시장에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화 연구자들은 노령화 사회의 무분별한 욕망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사실 생물학적 젊음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노화 방지제의 효과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별로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노화 방지제를 찾는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효능 및 안전성에 관한 검사를 통과한 노화 방지 의약품은 없다. 시판하고 있는 노화 방지제는 특별한 검사를 거치지 않은 ‘보조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위생과 효능을 보장받지 못했고, 복용 안내지침이나 부작용에 관한 주의사항도 표기하지 않은 채 시장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보조식품들이 내세우는 생물학적 변화 수치도 검증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의적 잣대를 내세워 일부 수치를 과대 포장하기 일쑤다.

최근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호르몬 대체법만 해도 문제투성이다. 호르몬에 의한 생명 연장은 20세기 초부터 보급됐다. 당시 나이든 남자들은 염소나 원숭이의 고환을 적출해 이식하곤 했다. 그것이 요즘 정제호르몬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멜라토닌이나 성장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디에이치이에이(DHEA) 등은 노화를 늦추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노화에 따라 근육과 피부가 늘어지는 현상을 막아주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쥐의 경우 멜라토닌 투여로 종양 발달 위험이 높아졌고, 성장호르몬은 심장 질환이나 심장 조기 발달, 폐기능 정지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사람은 선단 거대증이나 골격의 비정상적 성장, 수근골 골다공증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호르몬이 노화와 관련된 일부 질병에 효과를 발휘하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보다 더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노화 방지 효능이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항산화제도 믿을 만한 치료법은 아니다. 인체나 과일, 채소 등에서 만들어지는 항산화제는 인체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중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항산화제 유발 식품을 섭취하면 활성산소를 흡수해 노화 과정을 늦추거나 멈추게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해도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활성산소가 인체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죽음에 이른다. 인체에 활성산소가 없으면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산화방지용 비타민 E와 C를 함유한 음식이 암을 예방하거나 기미·주근깨를 없애준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비타민 보조식품이 인체 내의 산화로 인한 손상을 억제하거나 노화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은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타민제를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게 올바른 처방인지 단정하기 힘들다는 게 노화 연구자들의 판단이다.

체중조절·운동은 효과적… 적게 먹어야

그렇다면 부작용을 염려하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공동성명을 낸 노화 연구자들도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체중조절과 운동이라는 일반적인 처방에 기대를 걸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이야말로 여러 질병의 발병 위험을 줄이고 생명을 연장할 현존하는 최상의 처방이라는 것이다. 식이요법이나 운동이 직접적으로 노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성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노화 연구자들은 식이요법과 관련해 ‘칼로리 제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 등의 실험에 성인기 초반 동물에 대한 칼로리 섭취제한 연구에서 예상 수명이 30∼40%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칼로리 제한이 사람에게 적용됐을 경우 인체 메커니즘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상태다. 칼로리를 제한했을 때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노화 연구에 관한 입장을 성명서로 발표한 51명의 연구자들. 이들 가운데는 언젠가는 노화 진행 속도를 늦추고 손상된 조직이 복구될 것으로 믿는 사람도 있다. 일부는 노화의 복잡성으로 인해 노화 방지제 개발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장수 클리닉을 비롯해 도처에서 노화 방지제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사기행각’일 뿐이라는 데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의 기대수명이 80여살에 다가선 지금, 노화 방지제는 온갖 현혹스런 문구로 대중을 유혹할 것임에 틀림없다. 노화 연구에 짧게는 몇해, 길게는 수십해를 매달려온 노화 연구자들. 그들이 과학적 의문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은 아직까지 영원한 젊음의 샘은 지구촌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화 연구자들의 성명서 ‘인간의 노화에 관한 진실’ 전문은 http://www.sciam.com/article.cfm?articleID=0004F171-FE1E-1CDF-B4A8809EC588EEDF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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