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여행
등록 : 2002-07-16 00:00 수정 :
지갑을 잊고 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니 8시를 넘어선다. 아침부터 가쁜 숨 몰아쉬며 약속장소로 냅다 뛰니 고창으로 머리를 돌리던 관광버스가 멈칫 기다려준다. 행사 때면 으레 코리안 타임 30분 적용이 자연스럽던 기억에 안이했던 맘 고쳐먹고 겨우 차 안에 올라보니 그제서야 먼저 오신 분들께 죄송스럽다.
영광성당에서는 지난해부터 미국 독립기념일이자 7·4 공동선언일에 맞춰 용산 미군기지 앞 반미 시위 여행을 떠난다. 지난해엔 아마도 격렬한 몸싸움으로 부상자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 반대’가 생소한 촌동네에서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열린 ‘반미 교육’과 월드컵 기간 중 터진 전동록씨 사망,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등 끔찍한 주한미군 관련사건이 터진 뒤의 ‘반미 시위’인지라 영광지역 사회단체도 함께 참여하기로 해서 따라나선 길이다. 시골에서 하루 일품 놓은 농민, 직장 휴가내고 떠나는 길인 만큼 의미 있는 반미 시위 여행길이 되어야 할 텐데, 주최자도 아닌데 괜히 진행에까지 신경이 쓰인다.
쭉 뻗은 서해안고속도를 타고 서해대교를 지나 서울로 접어드니 눈에 선 풍경들이 들어온다. 우리를 내려준 곳은 바로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의 등교길이던 육군본부 앞이었다. 반미 시위의 목적도 잊은 채 그만 잠시 감상에 잠기고 만다. 버스에서 내려 친구들과 조잘대며 걷던 그 길을 2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오늘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 심미순 학생’의 영정을 들고 대열 속을 걷는다.
라일락 향내 가득한 거리엔 전쟁기념관이 들어서고 육중한 국방부 건물, 육군본부가 미군 기지를 보호라도 하듯 둘러쳐 있다. 용산 미군기지 앞은 올 초 노인들로 구성된 모 단체가 365일 집회 허가 신청을 내놓은 상태라 접근도 못해보고 전쟁기념관과 미군부대 제5통로 앞에서 철통 같은 경계를 펴는 우리 경찰과 마주 선 채 대회를 치른다. 도착하기까지 연대집회로 생각했는데 영광사람들이 주최하는 단독 시위란다.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오후 4시로 예정된 의정부 미군기지 앞 여중생 사망사건 규탄대회에 참가하느라 연대해줄 단체들은 모두 그리로 가고, 멀리 전라도 땅에서 올라온 영광사람들을 맞으러 문정현 신부님과 반미 단체 어르신, 학생 약간명, 자통협 전북지부의 여성활동가가 우리를 반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귀동냥은 했지만 심미순·신효순·전동록씨 이야기를 들으며 영광의 아줌마들은 내 새끼, 내 아비 일마냥 억울함에 눈가를 훔친다.
아스팔트 지열에 고추밭에서 맞는 한 줄기 바람이 간절하다. 회색건물 외엔 달리 눈줄 곳 없어 버스 안의 도시 사람들을 향해 촌사람들은 열심히 구호를 따라 외친다.
돌아오는 길, “신부님하고 수녀님이 가자고 한께 왔는디 듣고 봉께 미국놈들 너무하요. 우리 아그덜 죄 없이 죽었는디 오늘 좋은 야그 많이 들었고 좋은 공부했소. 우리도 영광 가믄 열심히 알립시다”며 다짐과 소감을 벼르던 영광 아줌니, 아자씨들 술트고 음악 틀며 막바지 반미 여행의 여독을 나눈다.
반미 강좌 때 자울자울 졸음을 못 이기던 어르신과 “이런 야그 난 백번 들어봐야 소용없제, 곁의 사람께다 욍겨야 한디 듣고 나면 잊어버려”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사를 머쓱하게 한 할머니의 잠투정도, 남편을 북한 경수로 일꾼으로 보내놓은 새댁의 근심어린 얼굴까지 함께 담은 버스는 영광으로 내닫는다. 미군의 땅이 되어버린 용산을 기억 속에 저장하며….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