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07월03일 제416호
“성호야! 노∼올자.”
성희와 수영이가 부르는 소리가 우리 집 수문장 ‘지리’(둘째 성호가 붙인 개이름인데 뜻은 아무도 모른다)의 무섭게 짖어대는 소리에 묻혀버린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8살 성호는 “나가 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반색하며 “수영이 누나 같이 가”를 목메게 부른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따라나선다.
수영이가 우리 동네에 살게 된 게 벌써 4년여가 되어가나 보다. 동생 수민이가 돌살배기 아기 때고 수영이가 6살이었는데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고 동생 수민이는 제법 어린아이 티가 난다.
도시에 살던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친할머니집으로 오게 된 두 딸아이가 온 날부터 왠지 눈에 밟혔다. 우리 아이들도 아빠 없이 키우는 처지라 그랬는지, 여자아이들이라 더 그랬는지 오며 가며 예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성폭행에 노출되어 있는 험한 세상에서 여자아이들 키우기란, 그리고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어린이 성폭력 예방의 힘겨움을 아는지라 더욱 애잔한 맘이 일었는지 모르겠다.
이혼율이 40% 이상을 육박하면서 시골마을에는 도시의 손자녀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지난 겨울 고구마를 내오며 마실다니는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로 얻어들은 이야기만도 몇건이 된다. “학산댁도 손자 데려왔다며?”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식들의 이혼과 데려다놓은 손자, 손녀로 옮아간다. 햄버거·피자에 게임까지 도시물 잔뜩 든 아이들이 전혀 생활 터전이 다른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지면서 세대 간 갈등은 골을 넘고 생기발랄했던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할머니 이마엔 주름이 는다. 영화 <집으로…>가 강원도 산골마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무튼 수영이는 요즘 할머니에게 꽤나 심통을 부리나 보다. 저도 컸다고 그간의 맘고생을 보상받고 싶겠지 하는 마음이 일다가도 할미나 손녀나 못할 노릇이다 싶다. 거기다 수영이 할머니댁은 하루 품팔아 먹고살기 빠듯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다. 수영이 친엄마에게서 부쳐오는 학원비마저 가끔 할머니가 써버린 뒤 지금은 학원장 통장으로 학원비를 입금시켜버려 ‘삥땅’도 어렵게 되었다며 할머니는 짠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새살림난 수영이 아빠는 어쩌다 전화로 애비노릇 때우고 부산서 돈벌이한다는 친엄마에게서 부쳐오는 학원비며 옷가지, 장난감이 두 딸아이와 모녀를 이어주는 애정의 끈이다. 요즘 수영이가 저보다 상급생 언니인 지혜와 함께 둘째놈 성호를 왕따시킨다는 첩보를 듣고 이유를 물었더니 “이빨이 다 썩었다”는 거였다. 물론 성호 이빨이 심하게 망가지긴 했지만 “한동네 친구들끼리 편가르는게 제일 나쁜 일이다”는 훈계를 늘어놓고 나서야 제가 당했을 따돌림도 한몫했겠다 싶다. 금방 헤헤거리며 “누나, 성호야”를 부르며 어울리는 아이들을 보며 내 집 앞마당 같이 쓰는 마을회관 공터며, 편견 없이 놀이를 나누는 아이들 세계에서 수영이와 수민이도 행복한 추억으로 신평마을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맘속으로 외쳐본다. “얘들아, 당당한 여성이 되렴….” 이태옥/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이혼율이 40% 이상을 육박하면서 시골마을에는 도시의 손자녀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지난 겨울 고구마를 내오며 마실다니는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로 얻어들은 이야기만도 몇건이 된다. “학산댁도 손자 데려왔다며?”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식들의 이혼과 데려다놓은 손자, 손녀로 옮아간다. 햄버거·피자에 게임까지 도시물 잔뜩 든 아이들이 전혀 생활 터전이 다른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지면서 세대 간 갈등은 골을 넘고 생기발랄했던 아이들의 얼굴엔 그늘이, 할머니 이마엔 주름이 는다. 영화 <집으로…>가 강원도 산골마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무튼 수영이는 요즘 할머니에게 꽤나 심통을 부리나 보다. 저도 컸다고 그간의 맘고생을 보상받고 싶겠지 하는 마음이 일다가도 할미나 손녀나 못할 노릇이다 싶다. 거기다 수영이 할머니댁은 하루 품팔아 먹고살기 빠듯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다. 수영이 친엄마에게서 부쳐오는 학원비마저 가끔 할머니가 써버린 뒤 지금은 학원장 통장으로 학원비를 입금시켜버려 ‘삥땅’도 어렵게 되었다며 할머니는 짠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새살림난 수영이 아빠는 어쩌다 전화로 애비노릇 때우고 부산서 돈벌이한다는 친엄마에게서 부쳐오는 학원비며 옷가지, 장난감이 두 딸아이와 모녀를 이어주는 애정의 끈이다. 요즘 수영이가 저보다 상급생 언니인 지혜와 함께 둘째놈 성호를 왕따시킨다는 첩보를 듣고 이유를 물었더니 “이빨이 다 썩었다”는 거였다. 물론 성호 이빨이 심하게 망가지긴 했지만 “한동네 친구들끼리 편가르는게 제일 나쁜 일이다”는 훈계를 늘어놓고 나서야 제가 당했을 따돌림도 한몫했겠다 싶다. 금방 헤헤거리며 “누나, 성호야”를 부르며 어울리는 아이들을 보며 내 집 앞마당 같이 쓰는 마을회관 공터며, 편견 없이 놀이를 나누는 아이들 세계에서 수영이와 수민이도 행복한 추억으로 신평마을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맘속으로 외쳐본다. “얘들아, 당당한 여성이 되렴….” 이태옥/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