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
등록 : 2002-07-15 00:00 수정 :
오랜만에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한동네 살 때부터 맘이 쓰이던 여자였다.
경상도 어디메에서 시집 와 젊은 나이에 벌써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남편과 시어머니랑 살면서 언어의 차이, 지역감정, 동네 어른들의 시집살이까지 한몫해도 바보 같은 웃음지으며 고된 품일도 마다않고 다녔던 씩씩한 여자였다. 고창 대산에 수박작업 갔다오는 날이면 한두 덩이 힘들게 이고 온 수박을 가끔 우리집 마당에 내려놓고 급히 밥 지으러 가야 한다며 발길을 돌려놓던 동갑내기 여자였다.
의지하던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맘 맞지 않는 시어머니로부터 분가하던 날 작은 오두막도 마다하지 않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날 동네사람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선 마이크를 독점하며 올라가지도 않는 고음까지 쏟아내던 그녀는 아직까지도 지지리 복도 없게 산다.
술을 입에 안 댈 때는 눈 맞추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던 그녀의 남편은 서너달 꼬박 잘 참다가 한번 시작하면 잠도 안 잘 정도로 마신 술기운에 의지해 그동안 섭섭했던 것 싸잡아 동네사람들과 시비하고 딸 셋과 아들 하나, 그리고 고생덩어리 아내를 동네로 내몰아 한밤을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한뎃잠을 자게 했다.
술먹는 동안 밥이라고는 한톨도 안 넘기고 오직 쓴 소주만을 밀어넣다 보니 기력이 다해진 막바지에 이르면 환청까지 들려 “누가 나를 부른다”며 온산을 헤집고 “우리집을 불살라야 한다”, “집을 쓸어버려야 한다”며 집안팎을 휘발유로 둘러친다든지, 톱으로 집 기둥을 썰어버려서 온 식구가 기겁을 하고 도망나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 아들은 있어야 한다며 내리 딸을 셋 낳은 다음 얻은 귀한 아들은 언청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그나마 치료 가능한 장애라고 위로하며 광주병원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했는데 아직도 아이가 성치 않은 모양인가 보다.
요즘 그녀의 남편은 칼까지 휘두르며 극한 폭력으로 치닫고 있단다. 몇년 전 기계영농법인 바람이 불 때 젊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사업이 망하면서 동네사람들은 빚더미에 올랐고 연대보증으로 여러 가정이 파산과 해체를 겪었는데 그녀의 집도 이 풍파에서 비껴나질 못했다. 그 뒤 그녀 남편의 술타령은 더욱 심해만 갔다. 까만 눈에 표정이란 도통 찾아보기 어려운 얼굴로 즈이 엄마와 동생들과 이리저리 피해다니던 말수 적은 큰딸아이는 학교도 잘 안 가고 중학생 되더니 ‘뻗나가는 것’ 같다며 걱정을 전해준다.
가진 땅뙈기도 적고 남편이 일을 놓아버리니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 요즘 그녀는 식당에 나간단다. 네 아이와 알코올 중독자 남편, 그리고 간간이 벌어지는 남편과의 혈투를 감당해야 하는 몸짓 작은 그녀의 세상살이가 요 며칠 내 마음을 내리누른다.
지난해 9월엔가 <전국노래자랑> 구경하고 웃음이 채 거두어지기 전에 만난 그녀는 경상도도 전라도 사투리도 아닌 어정쩡한 음색으로 “승혁이 엄마, 잘살제?”, “응, 나도 잘살아”라며 반가운 웃음을 보여주었는데….
초여름 호박부침개와 한겨울 고구마를 나누던 동네 젊은 여자들이 이렇게 하나둘 농촌을 떠나가는 건 아닌지…. 들녘엔 역시 주름선 굵은 노인들의 힘겨운 노동이 있을 뿐 젊은 여성들을 잡아놓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이태옥/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