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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쌈마이’한테 혼나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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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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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이 뭐라건 영화는 재미다…서세원 제작 <긴급조치 19호> 흥행 예감

사진/ 가수 김장훈씨를 선두로 수많은 현직 가수가 출연해 증수능란한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농담들이 장난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서세원씨는 굉장히 운이 좋아보인다. 지난해 <조폭 마누라>를 내놨을 때, 일사불란한 혹평에 포위당했으나 영화는 대박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한국방송 제2텔레비전 <서세원쇼>가 월드컵 신화의 주역을 농담거리로 비하했다가 네티즌의 격렬한 비난과 함께 ‘6월 최악의 연예오락프로그램’으로 뽑히는 등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러나 <긴급조치 19호>의 첫 시사회가 열린 7월3일, 서씨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서세원쇼>는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뚝 섰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권력에 침을 뱉는 연예인들의 반란

섣부른 예측일지 몰라도 그에게 또 한번의 ‘행운’이 찾아들 조짐이다. 투자에 머물렀던 <조폭 마누라>에 이어 직접 제작에 나선 첫 영화 <긴급조치 19호>(감독 김태규, 7월19일 개봉예정)의 성공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장주들은 배급시사가 끝난 뒤 영화에 대한 평가와 정보를 교환하는 간단한 모임을 갖는다. 한 극장 관계자가 <긴급조치…> 시사회 직후 모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흥행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강남의 한 극장은 자기네 주요 관객층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무척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 선호도는 심하게 나뉘어서 혐오감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개봉한다는 점이 흥행의 변수이긴 하지만, 국내 최초의 판타지 어드벤처 <아 유 레디?>가 재난에 가깝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어서 <긴급조치…>가 올 여름 한국영화의 복병으로 떠오른 셈이다.

흥행 여부를 제쳐두더라도 이 영화의 만만찮은 완성도는 영화계에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조폭 마누라>가 대박을 터뜨리자 영화계 주류 안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회의론에 휩싸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뭐냐”는 아이의 질문에 “짭새”, “씨방새”라고 답하는 막가파식 유머의 영화가 자꾸 성공하면, 이후 기획되는 영화의 흐름에 이상기류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긴급조치…>도 외형상 여전히 막가파식 유머를 취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폴 매카트니가 영국의 총리 후보로 지명되는 등 정치 권력이 가수들에게 넘어가는 사건이 이어지자, 청와대가 긴장한다. 나훈아가 출마하고 핑클이 선거운동에 뛰어드는 상황을 가정하면서 대책회의가 벌어진다. 대통령은 “일개 가수가…” 하며 짐짓 무시하려고 하지만 비서실장, 국정원장, 국방장관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

“아닙니다, 각하.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나훈아의 이 손짓 하나에 아줌마표 천만표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 이 노래에 전국의 잡초 같은 인생 천오백만표가 들고 일어납니다. 각하!”

“이천만 민족의 대이동 차표 한장에 송대관이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 놈이 더 위험합니다. 각하!”

그래서 이들은 긴급조치 19호를 발표한다.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군인들은 가수들을 마구 잡아들인다. 이틈에 실제 가수들을 대거 출연시키는 영특한 상업성을 발휘한다. 주연급으로 나선 가수 김장훈과 홍경민, 동료 가수들을 잡아들이는 앞잡이로 변신한 주영훈, 군대면제인데 왜 잡아가느냐며 항의하는 하리수, 개그맨으로 분류해줄 것을 염원하는 캔, 군인들과 일대 혈전을 벌이는 클릭B와 강타, 비닐하우스에 숨어든 핑클, 뭉둥이찜질과 전기고문에 시달리는 신화 등 일일이 셈하기 벅찰 만큼 많은 가수들이 출연한다.

이들 대부분은 텔레비전의 각종 쇼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입담, 즉 ‘개인기’로 인기를 다져온 이력이 있다. 그래선지 이들의 어색하지 않은 코믹 연기는 화면을 빛낸다. 방송사를 휘두를 만큼의 ‘연예 권력’을 쥔 이들은 때를 만난 듯 자신들을 ‘삼류 양아치’ 취급해온 주류 권력을 맘껏 비웃는다. “저질·선정적인 노랫말로 청소년 정서에 악영향을 끼쳐온, 유해한 한국 가요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정치 권력이야말로 위선적이며 저질이라고. “뽕으로 안 되면 강간으로 해”라며 거짓 사건을 꾸며 가수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대마초로 구속된 가수 싸이를 등장시키는 대목에서 그동안 쌓인 가수들의 ‘울분’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또 가수에게 인질로 잡힌 합참의장이 “군인이라서 군가밖에 모른다”며 우물쭈물하다가 “대령 중령 소령은 호텔 방에서, 대위 중위 소위는 여관방에서, 상사 중사 하사는 여인숙에서, 불쌍하다 육군 쫄병 마룻방에서…”를 부를 때, 허를 찔린 듯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조폭마누라>처럼 두서없진 않다

‘이래도 안 웃을래’라며 마구 달려드는 품새가 <조폭 마누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여성전사를 그럴듯하게 내세웠으나 철저히 남성성에 복종하게 만든 <조폭 마누라>처럼 두서가 없지는 않다. ‘쌈마이’ 전술의 승리라 할 만큼 연출과 연기의 수위 조절이 적절하게 맞아들어간다.

평단의 지적인 시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확신범’의 대표 주자는 김상진 감독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등 김 감독과 잇따라 세 작품을 만들어온 시나리오 작가 박정우씨가 최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쌈마이’라는 비판도 많이 들었을 텐데 어떤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흥행이 덜 되더라도 작품성 있는 걸 쓰자, 그런 생각 안 한다. 배우 김승우씨가 날 보면 농담으로 ‘어이, 깊이 없는 작가’라고 하는데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다. 이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가 세상을 바꾼다.”

삼류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으나 이런 확신범들이 영화계에 조금씩 늘고 있는 건 분명해보인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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