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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약 주고 병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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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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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리기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미국의 한 병원에서 근무할 때 한 환자에 대한 경험이다. 그는 몇년 전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치료에 차도가 없자 동양에서 들어온 ‘신비’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복용한 약은 일반 가게에서 ‘건강식품’으로 판매되는 전통약품이었다. 그런데 2년여가 지난 뒤부터 새로운 통증이 생기고 몸이 비대해져 하루하루를 견디기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미 당뇨병과 고혈압도 생겨 있었다. 정밀검사 결과 이 환자는 이른바 ‘쿠싱 증후군’(Cushing’s syndrome)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복용한 건강식품에는 부신피질 호르몬인 스테로이드 제재가 많이 들어 있었다. 비양심적인 상인이 몰래 스테로이드 제재를 섞어 넣은 것이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인체에서 다양한 작용을 한다. 체내에 당을 생성시키고, 지방을 팔과 다리에서는 분해하고 얼굴과 몸통에서는 생성시키는 구실을 한다. 몸에 수분을 저장하고 염증을 억제하는 것도 스테로이드 성분의 작용이다. 그러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제재를 사용하면 우선은 염증이 가라앉으므로 염증성 통증이 감소하는 것이다. 당과 지방이 생성되는 까닭에 식욕이 생기고 살이 포동포동 찌면서 사람들에게서 “보기 좋다”라는 말도 듣게 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제재를 오랫동안 쓰면 많은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일단 당이 지나치게 많아져 당뇨병을 일으키고, 체내에 수분이 많이 축적되어 몸이 붓고 혈압이 높아진다. 팔다리는 지방질이 빠져 비쩍 마르면서 가늘어지는 데 반해 얼굴과 몸통은 살이 쪄 ‘뚱보’로 변한다. 일부에서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되기 때문에 ‘달덩이 얼굴’(Moon face)이라고도 부른다. 피부는 위축되어 거칠어지며 시퍼렇게 멍이 잘 들기도 하며 배에는 주름이 많이 생기기도 한다. 위궤양이 새로 생기거나 악화되기도 하고,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는다. 심지어 우울증이 생기고 성욕 감퇴나 발기부전증 등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뼈의 칼슘분이 많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이 흔히 생긴다.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스테로이드 제재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의사들도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조심스럽게 ‘잠깐 동안 살짝’ 사용해보는 정도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상인들이 이 독약(?)을 무턱대고 마구 섞어 파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증상이 일시 호전된다고 전문의의 지시 없이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환자들의 행태도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어떤 약을 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약을 주는 사람’의 지혜요, ‘약 주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약 먹는 사람’의 지혜이

다.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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